[바스키아를 따라서] ep. 03

캔버스로 옮겨간 바스키아의 스트릿

by ARTSYKOO





전시장 안은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바스키아의 작품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




바스키아의 작품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 전시장 안의 커다란 벤치 한쪽에 걸터 앉아 그의 인생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은 나는 바스키아 작품을 보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놓치기 전에 빠르게 기록으로 남겼다.





나는 뮤지엄 벤치에 앉아 곰곰히 그래피티 아트의 특징을 생각해 본다.


image_8814769211533886146785.jpg?type=w580 www.pexels.com




(불확실한) 시간적 제약
의뢰를 받고 작업하지 않는 이상, 허가 받지 않은 벽에 자신의 그래피티를 남길 때는 보통 신고가 들어오기 마련이고, 결국 그래피티 작업을 하는데 있어 허락되 시간은 추상적으로나마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기 전"이 라는 예측하기 어려운 시간적 제약이 있을 것이다.

메세지 전달
의도 혹은 의미의 유무를 떠나 (혹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으로 든) 공공의 장소에 자신의 메세지를 남겨서 노출시킨다.




공공 장소에 시각적 상징 이미지를 표현함으로써 대중에 특정 메세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허락 된 시간 안에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하고 떠나야 한다라...




그래피티의 조건을 생각하다 보니, 문득 르네상스시대의 종교 벽화를 그릴 때 주로 사용되었던 프레스코(fresco) 기법이 떠올랐다.




art-school-of-athens-raphael-italian-painter-fresco-159862.jpeg?type=w580 대표적인 프레스코화의 예시, 라파엘(Raffaello)의 <아테네 학당, The School of Athens, Scuola di Atene(1509-11)>



프레스코 fresco
벽화*를 그릴 때 쓰는 화법. 이탈리아어로 ‘신선하다’라는 뜻. 마르지 않은 회반죽 바탕에 물에 갠 안료로 채색한 벽화. 그림물감이 표면으로 배어들어 벽이 마르면 그림은 완전히 벽의 일부가 되어 물에 용해되지 않으며, 따라서 수명도 벽의 수명만큼 지속된다.
프레스코는 석고가 마르기 전에 재빨리 그림을 그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며, 그림의 수정도 거의 불가능해 정확하고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프레스코는 기념 건조물의 벽화를 그리기에 가장 적합하다. 다만 습기가 차면 석고가 부서지므로 그림도 함께 떨어져 나가는 단점이 있다.

(출처: 월간미술, 프레스코 http://monthlyart.com/encyclopedia/%ED%94%84%EB%A0%88%EC%8A%A4%EC%BD%94/)










르네상스 시대의 종교 회화를 통해 다시 보는 바스키아

프레스코화의 제작 기법을 살펴보면, 벽면에 회반죽을 발라 그것이 프레시(fresco는 fresh와 같은 의미의 이탈리아어 이다)한 상태일 때, 즉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한두시간 내에 빠르게 채색을 마무리해야 하는 점에서 제작과정에 시간이 제한된다.

또한 프레스코 화는 유럽 기독교 역사에 걸쳐 신에 대한 경외심을 고조시키거나 혹은 신의 메세지를 담은 성서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종교 벽화의 기법으로 자주 사용된 기법으로, 성당, 예배당 등 종교 건축물 벽면에 그려 더 많은 신자들에게 성서의 내용을 알기 쉽게 설파함으로써 신에 대한 경외심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pexels-photo-705778.jpeg 성서 내용을 그린 벽화에 둘러 쌓인 성당 내부 이미지 www.pexels.com





프레스코화의 형태적 특징과 목적 그리고 그 기능을 그래피티와 비교해서 볼 때, 그래피티 아티스트의 메세지 혹은 그가 갖는 표현의 자유 권리가 곧 종교의 신념과 같이 더 많은 대중에게 설파하기 위한 것이라 가정하고,

낙서라는 형태를 통해 그들이 가진 (신념의) 메세지를 스트릿street이라는 공공 장소에 노출될 때, 그 길을 지나는 대중 누구에게나 자신의 메세지를 전달 할 수있다는 점에서 프레스코화의 성격과 일맥상통한다.




삼면화와 캔버스 위의 그래피티

또한 기독교 성서 내용 혹은 성자의 초상을 그린 성화(icons)는 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면서 "삼면화(triptych, 3개의 패널에 각 이미지의 부분을 그리고 경첩으로 연결하여 이동가능하며 필요에 따라 접고 펼칠 수 있는 회화 형식)” 형태로 종종 제작되었는데,





image_7901885331533892023667.jpg 수태고지 장면을 그린 삼면화 예시 "Merode Altarpiece" (photograph by Ad Meskens)




이는 종교 건축물의 벽면을 벗어나 개인의 공간, 혹은 속세의 공간까지 성화의 이동 범위가 확장되는 결과는 낳게된다.



쉽게 말해, 삼면화로 만든 성화를 펼치는 순간, 그 어떤 공간이 든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종교적 공간, 성스러운 영역으로 전환된다는 것.




바스키아는 스트릿의 벽에 남겼던 그의 메세지를 새하얀 캔버스 위에 옮겨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그의 그래피티가 있던 벽은 비단 그 스트릿을 지나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을 넘어 어디든 갈 수 있는 노마딕 nomadic 한 것이 되고, 바스키아의 캔버스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그의 자유분방한 스피릿과 일탈이 스며든 스트릿과와 벽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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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삼면화는 종교적 공간을 떠나 신자의 집, 혹은 상업적인 공간에서까지 '가상의 예배당'으로 만들수 있고,


마찬가지로 바스키아가 스트릿 '벽면에 고정된' 그래피티를 '노마딕한' 캔버스 위에 그림으로써 그 작품이있는 어떤 곳이든 그의 스트릿로 만들어 바스키아의 메세지를 전달 할 수 있게 된다.




바스키아가 이뤄 낸 <스트릿아트-전통적 캔버스 회화> 간의 크로스오버는 특정 영역에 고정되어, 한정적인 대중에만 노출되었던 그래피티의 영역을 확장시켰고, 공간을 초월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될 수 있었다.

그 결과, 바스키아의 메시지는 순수미술에서 가장 동떨어져 있었던 야외의 '스트릿'에서 시작되어 실내 공간의 화이트큐브, 즉 제도권 미술의 심장부까지 파고들게 된 것이다.





그래피티가 바스키아에게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주어
그의 예술 세계를 해방시켰다면,


바스키아는 그래피티에게 벽을 벗어나
세상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해 준 것일지도..












브루클린의 거리를 다시 바라보며


여운이 진한 전시를 뒤로하고 나는 뮤지엄 밖으로 나왔다. 코끝에는 눈송이가 내려앉았다.



나는 눈 내리는 브루클린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한다.

어린 바스키아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곳 브루클린 뮤지엄에 전시를 보러 왔던 날도 이렇게 눈이 내렸을까.




브루클린에서 나고 자란 바스키아에게 이곳의 일상 풍경은 그에게 어떻게 비추어 졌을까. 나는 뮤지엄 근처를 거닐며 브루클린의 길 풍경을 좀 더 살펴보기로 한다.



발 닿는 데로 가다 보니 내가 도착한 곳은 공터.

공터의 벽을 마주보고 서 있는 그래피티 아티스트는 컬러 스프레이를 휘갈기며 분주하게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분사되는 스프레이의 '취이익' 하는 소리 사이로, 미미하게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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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빨리 작업을 마무리하고 도망치듯 떠난 그의 모습 뒤로

공터 바닥에는 온갖 컬러의 빈 스프레이 깡통이 나뒹굴고 있었고,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어린 바스키아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