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써 내려 간 '나의 미술사' ep. 1
누군가 함께 있을 때, 우리는 그들과 조화를 이루고자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주하곤 한다.
물론 어렵사리 완성한 ‘함께’라는 하모니는 거룩하며, 찬란한 순간을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살아가는(혹자는 ‘살아내는’ 이라고들 한다) 날이 길어짐에 따라, 타인이라는 작은 점들이 점차 ‘면’으로 확장되면서 혹시 진짜 ‘나’로 부터 점차 밀려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누군가의 곁에서 자신이 아닌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평생을 그래 왔을지도.)
혼자 떠난 여행을 통해서 우리는 그간 곁의 ‘누군가’를 의식하느라 잊고 살았던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는 깨닫는다.
자신이 얼마나 덤벙대는 사람이었는지,
그러면서도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인지,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즐길 줄 아는
낭만적인 사람인지,
그리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얼마나 매력적으로 빛나는 사람인지..
저 멀리 밀려난 자신과의 극적인 재회는 그렇게 반갑고 소중할 수가 없다. 그렇게 여행이 끝나갈 무렵, 떠나 온 자리로 무사히 돌아왔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비로소 우리는 ‘참으로 좋은 여행이었다’고 선언할 수 있게 된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바라본다. 그 사이 한 뼘은 자라난 영혼의 키와 살집이 오른 자아가 비칠 때, 비로소 우리는 여행의 의미를 이해하며 또다시 다짐한다.
다시 떠나리라,
너무 늦지 않게.
하고 말이다.
나는 늘 혼자 여행을 떠났다.
누군가는 “혼자 여행을 떠나다니, 정말 멋진 걸?” 하고 말하기도 하지만, 타고난 성격이 내성적이고 소심한 터라, 떠나기 직전까지 여행지에서 겪을 수 있는 온갖 나쁜 상황을 상상하며 출국 직전까지 불안에 시달리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래도 여전히 홀로 길을 떠난다.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면 그 누구보다도 용감하고 대범해지고 또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마치 비행기 이륙과 동시에 ‘여행용 단수 초능력’이라도 얻은 것처럼 말이다.
하루하루 여행을 이어가다 보면 좋든 싫든 모험을 할 수밖에 없다. 매일 같이 크고 작은 모험이 반복하다 보면 ‘노심초사’로 콩알만 해진 심장도 어느덧 ‘인생사 새옹지마’를 흥얼거리며 여유를 찾아가기 마련이다.
오롯이 스스로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가야 하는 매순간 속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최고의 리더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혼자 떠난 여행은 그간 잊고 있었던 자신의 강인함과 책임감을 재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떤 어려움과 돌발적인 상황이 닥치더라도 이 ‘여행’이라는 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어나감으로써 자신의 성취감을 고취시킬 수 있다.
낯선 순간들의 연속에도 스스로 놓치지 않고 침착하게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는, 마치 셀프 리더십 트레이닝 역할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혼자 떠나는 여행’의 숨겨진 진짜 역할이 아닐까.
낯선 문화권을 여행하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예의바름의 세계’를 접하는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간 세상의 중심이라 믿어 의심치 않아왔던 우리의 기준들이 타인들의 시선에서 얼마나 주변부의 것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다.
체계와 인식의 차이, 혹은 ‘컬처 쇼크 culture shock’를 경험하고 타인을, 타 문화를 알아가는 과정은 사실 언제나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처음에 당혹감을 느꼈을지언정, 직접 가서 겪어보지 못했다면 영원히 몰랐을 새로운 세계와 그들의 체계에 대한 경험은 그만의 고유한 의미와 가치로 우리에게 남는다. 마치 '낯섦' 혹은 '다름'을 마주했을 때 우리가 그것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와 같은 것으로 말이다.
'판단'이라는 줄자를 꺼내어 재단하려 들기보다 '낯섦'이라는 새로운 조각보를 스커트 끝에 꿰어 더 화려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것.
그렇게 여행의 유산을
한 조각 한 조각씩 이어나가는 것은 어떨까.
길도, 돈도 잃어 정신없던 내게 따뜻한 카페오레와 크루아상, 시원한 수박까지 내어주시며 그냥 편히 앉아서 먹고 가라며 나를 위로 해준 방콕의 한 카페 사장님. 그분의 호의로, 정녕 절망의 시작인가 하며 의심했던 방콕 여행의 시작은 친절과 따뜻함으로, 그리고 위로로 바뀌었다. 저 벤치에 앉아 맛있게 먹고 마시며 낯선 모자이크 이미지와 사당을 보던 나. 처음엔 너무나도 낯설었던 태국의 문화와 방콕이라는 도시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고 싶다는 생각을 그렇게 했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