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써 내려 간 '나의 미술사' ep. 2
혹자는 미술 혹은 미술관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따분하고, 이해하기 어렵고, 다리 아프고, 누구나 할 법 한 낙서를 휘갈기고 싸인 한 뒤 예술작품이라 부른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있어 미술관, 정확히 말해 '미술'은 긴장은 누그러뜨려주고, 맘 편히 '감상' 자체를 즐기는 경험을 선사해준 최초의 예술 분야였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연주했던 내게, 음악과 관련된 경험들은 감상의 즐거움을 느끼기보다는 ‘긴장’과 ‘경쟁’이라는 단어에 더 가까운 것들이었다.
‘음악’이라는 예술 자체가 주는 특별한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채 알기도 전에 입시라는 경쟁구도 속에서 하루하루 경주 race를 하며 보내던 나날들. 쟁쟁한 연주자들과의 실력 겨루기를 멈추는 것은 내가 이 계를 떠나야만 비로소 가능해 보였다.
나, 드디어 음악이랑 미술의 가장 큰 차이점을 발견했어.
뭔데?
미술은 보고 싶지 않으면 눈을 감으면 되지만,
음악은 귀를 막을 두 손이 없으면 그것을 듣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지.
음악 전공생에게 있어 ‘가장 듣고 싶지 않은 음악'이 있다면 어떤 것을 떠올릴 수 있을까. 소음에 가까운 연주?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오디션 장 대기실에서 내 바로 앞의 연주자의 연주이자, 그리고 그 누가 봐도 나보다 명백히 뛰어난 실력을 갖춘 연주자의 연주라고 말할 것이다.
(심지어 그 소리는 두 손으로 양 귀를 틀어막아도 잘 들린다. 그리고 이내 곧 터질 듯 쿵쾅대는 내 심장 소리는 그 사람의 연주에서 드럼 세션으로 맹활약하기도 한다)
GERRIT VAN HONTHORSTUTRECHT, A MERRY GROUP BEHIND A BALUSTRADE WITH A VIOLIN AND A LUTE PLAYER, www.nordonart.wordpress.com
사실 내 실력은 그닥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니 숨 쉬는 모든 순간 속에서 계속되는 음악계의 경쟁의 날은 언제나 나를 겨누곤 했고, 나는 늘 베이고 찢기는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나는 지쳐갔다.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마음 편히 다른 사람의 연주를 ‘감상’을 할 수 없었던 내 심리적 압박으로 인해 음악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비록 완벽한 연주는 아니더라도 연주자 자체가 갖는 고유한 반짝임을 알아차리며 연주를 감상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저 ‘듣는 행위’ 자체를 고요한 마음으로, 날이 서지 않은 마음으로 편안하게 할 수 있게 되자, 감상과 아름다움을 용인하는 범위는 훨씬 더 자애롭고 인자해졌다.
‘순간’을 예술로 빚어내는 공연예술은 스테이지뿐만 아니라 관람자의 순간 또한 컨트롤할 수 있는 특권을 갖는다.
공연 시작 시간에 맞추어 공연장에 도착해야 하는 긴장감 그리고 일단 공연이 시작되면 중간 입장조차 어려워지는 경우를 생각할 때 공연예술의 관람과 감상에는 늘 많은 제약이 따르는 편.
하지만 미술은 달랐다. 미술은 시간을 재촉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감상자를 기다려준다. 그리고 미술관의 고요함은 나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특히 야간 전시 관람을 할 때만 느낄 수 있는 미술관 특유의 고요함과 운치 있는 전시장 풍경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 중 하나이다.)
전시실을 마음껏 돌아다니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 어떤 작품 만나게 되면, 전시를 다 돌아본 뒤 다시 그 작품 앞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리고 작품 앞에 서서 하염없이, 마음껏 그 작품을 바라보고 감상할 수 있다. 마치 다시 돌아올 나를 위해, 같은 자리에서 기다려주었다는 생각이드는 것같기도 하다. 어디론가 가 버리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그곳에 오래오래 있어 줄 것 만 같은 기분이 들어 안심이 든다.
본격적으로 전시 관람을 하기 시작했던 20대 초, 화이트 큐브 벽에 걸려있는 회화 작품은 그저 정지화면과 같은 상태로 고요히 벽에 걸려 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점차 전시 관람의 경험이 늘어나고 한 작품을 자세히 그 이미지에 집중하려 노력하는 순간, 작품과 나 사이에는 우리만의 시간과 공간이 펼쳐지는 듯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첫 ‘감상’이 시작되었다.
그 어떤 것도 나와 어떤 작품이 만들어 낸 우리만의 순간과 공간을 통제하지 않는다. 작품은 서서히 나의 모든 감각을 깨우기 시작한다. 2차원의 평면 회화 이미지는 점차 3차원으로 더 깊어지며, 어느 새인가 나를 작품 안으로 불러들인다. 작품과 내가 만들어간 가상의 공간 속에서 나는 나의 기억과 경험을 회상하고 작품 이미지에 투사되게 시작하고, 그렇게 감상은 깊어지고, 또 생생해진다.
그렇게 미술관이라는 공공의 장소에서 나와 작품이 만나 만들어내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관람’은 그렇게 ‘감상’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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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조금 달라졌어.
미술은 보고 싶지 않으면 눈을 감으면 되지만,
음악은 귀를 막을 두 손이 없으면 그것을 듣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그렇게 말했었지.
그런데 말이야,
이젠 눈을 감으면 더 선명해지는 걸 느껴.
내 마음 속으로
그 이미지가 들어왔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