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써 내려간 '나의 미술사' ep.3
여행지에서 써 내려간 '나의 미술사' ep.3
낯선 여행지를 탐험하는 매 순간,
우리는 어쩌면 자신에게 익숙한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애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낯선 여행지에서 길을 걸으며 흔히 볼 수 있는 신호등, 횡단보도, 도로 표지판, 우체통, 쓰레기통과 같은 흔하디 흔한 물건들을 바라보며 내가 살고 있는 나라와는 어떻게 다른지 비교한다.
아마도 그곳의 낯선 사회 시스템과 정서 계속적으로 마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익숙한 것을 계속적으로 떠올리며 편안한 정서를 갈망했던 것 일지도.
여행 중 방문한 미술관에서, 우리는 때때로 미술관 밖의 풍경보다 편안함과 익숙한 정서를 느낄 때가 있다. 수업시간에 봤던 작품이거나, 책, TV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한 유명한 아티스트의 대표 작품을 만날 때 보통 그러하다.
여행지에서 찾아간 미술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삶의 묘미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낯선 나라의 낯선 미술관에서 만나는 ‘익숙한 미술작품’이라니. 일상보다 미술이 더 가까워지는 특별한 순간이 바로 여행지에서 만난 미술일 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오묘하면서도 매혹적이다.
어찌 보면 여행지에서 만난 미술작품은 흰 바람벽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익숙한 곳에서 멀리 떠나와 도착한 여행지의 한 미술관에서 만난 작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면, 어느샌가 작품은 흰 바람벽이 되어 우리의 경험이, 추억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 벽을 향해 우리의 삶과 사적인 이야기와 소소한 추억을 빔으로 연신 쏘아대는 프로젝터가 된다.
그리고 '일상의 나'일 때 보다 '여행지에서의 나'일 때 쏘아대는 추억의 빔은 평소보다 더 진하고 선명한 출력을 자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에서 만난 미술이야말로 삶의 수많은 장면 중에서도 유독 진하고 선명하게 기억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통해 멀어졌던 자신에게로 되돌아가게 되고, 낯선 여행지에서 방문한 미술관에서 마주한 작품에서 '의외의 친숙함’을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작품 속에 투영된 우리의 이야기에 더 쉽게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이 글 "여행지에서 써 내려간 '나의 미술사'"를 집필하는 동안, 그간 120개가 넘는 계절을 살아왔기에 참으로 많은 일을 겪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수많은 계절을 살아오며 만났던 꽃잎과, 단풍과, 향기와 그 모든 찬란한 순간의 빛은 아주 납작해진 채 '삶'이라는 책장 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지 않고 그 자리에 곤히 잠들어 있는 내 소중한 추억을 바라보고 있자니 '살아보길 참 잘했다'하는 생각이 든다.
혼자 외롭게 여기까지 걸어왔다고 생각하면서, 내 곁에 이젠 아무도 없다며 암흑 속에 갇혀버린 건 아닌가 하고 좌절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집필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아무도 없어'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들이 거기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존재를 그저 눈으로만 확인하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깜깜한 현실 속에서 앞이 잘 보이지는 않았어도, 내가 손을 뻗었을 때 언제나 누군가가 곁에 있어줬다. 감사한 인생이구나.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지금 여기까지 왔구나. 나를 거쳐간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심지어 미운 추억을 주고 떠나 간 사람에게 까지 말이다.)
내가 빛을 제대로 보며 곧게 뻗어 나갈 수 있도록 지지대가 되어주고,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으로 얼굴을 들이밀라 알려주었다. 말없이 물길을 터 주며 쩍쩍 갈라진 내 영혼의 밭에 물을 대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 덕분에 나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올 수 있었다.
집필을 하며 촘촘히 내 지난날을 회고해 보았다.
그 결과,
인생은 언제나 완벽하지 않았고,
외려 상당히 실수투성이였으며,
생각했던 것보다
'우연의 연속'으로 이어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이젠 정말 끝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순간 조차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으며,
‘행복한’ 은 ‘시절’이 아닌,
‘순간’라는 단어와 만나는 것이 더 와 닿는다는 사실.
그런 것을 깨달았더랬다.
그리고,
삶이 또다시 난제가 되었을 때
찬란했던 시절을 꺼내어 보며 현답을 구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여행지에서 써 내려간 '나의 미술사'"는 잠시 일상을 떠나 아주 사적인 시각에서 써 내려간 '나의 미술사'이자, 내가 만나 본 ‘세상에 대한 보고’라고 소개하고 싶다. 그리하여 이 글 또한 세상 모든 이의 글처럼 자전적인 이야기를 오롯이 담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 텍스트로 나마
'나'라는 사람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모든 미술과 여행 이야기에 진심을 담아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다.
한 번쯤 여행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거나
길을 떠나 만난 미술 작품을 통해 특별한 순간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혹은 아직 그럴 기회가 오지 않은 사람이라면
"여행에서 써 내려간 '나의 미술사'" 속 나의 이야기를 통해
어제를 추억하고 내일을 그려볼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2019년 7월 22일
무더운 여름날 역삼동 양추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