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행지'에서 만나는 '낯익은 미술', 그 반가움

여행지에서 써 내려간 '나의 미술사' ep.3

by ARTSYKOO


여행지에서 써 내려간 '나의 미술사' ep.3






숨은 익숙한 그림 찾기



낯선 여행지를 탐험하는 매 순간,

우리는 어쩌면 자신에게 익숙한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애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멕시코시티의 풍경. 좌측상단부터 우체통, 도로(택시, 신호등), 지폐(프리다 칼로가 그려진 500페소), 안전벨트 안내 표지판, 가로등에 부착된 포스터





낯선 여행지에서 길을 걸으며 흔히 볼 수 있는 신호등, 횡단보도, 도로 표지판, 우체통, 쓰레기통과 같은 흔하디 흔한 물건들을 바라보며 내가 살고 있는 나라와는 어떻게 다른지 비교한다.


아마도 그곳의 낯선 사회 시스템과 정서 계속적으로 마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익숙한 것을 계속적으로 떠올리며 편안한 정서를 갈망했던 것 일지도.








흰 바람벽이 있어,

낯선 여행지 익숙한 미술



여행 중 방문한 미술관에서, 우리는 때때로 미술관 밖의 풍경보다 편안함과 익숙한 정서를 느낄 때가 있다. 수업시간에 봤던 작품이거나, 책, TV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한 유명한 아티스트의 대표 작품을 만날 때 보통 그러하다.


여행지에서 찾아간 미술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삶의 묘미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낯선 나라의 낯선 미술관에서 만나는 ‘익숙한 미술작품’이라니. 일상보다 미술이 더 가까워지는 특별한 순간이 바로 여행지에서 만난 미술일 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오묘하면서도 매혹적이다.






어찌 보면 여행지에서 만난 미술작품은 흰 바람벽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익숙한 곳에서 멀리 떠나와 도착한 여행지의 한 미술관에서 만난 작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면, 어느샌가 작품은 흰 바람벽이 되어 우리의 경험이, 추억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 벽을 향해 우리의 삶과 사적인 이야기와 소소한 추억을 빔으로 연신 쏘아대는 프로젝터가 된다.


그리고 '일상의 나'일 때 보다 '여행지에서의 나'일 때 쏘아대는 추억의 빔은 평소보다 더 진하고 선명한 출력을 자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에서 만난 미술이야말로 삶의 수많은 장면 중에서도 유독 진하고 선명하게 기억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통해 멀어졌던 자신에게로 되돌아가게 되고, 낯선 여행지에서 방문한 미술관에서 마주한 작품에서 '의외의 친숙함’을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작품 속에 투영된 우리의 이야기에 더 쉽게 몰입할 수 있게 된다.




난생 처음 갔던 시카고라는 도시와 시카고 아트인스시튜트, 그리고 내가 오랜동안 보고파했던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낯선 미술관, 정말 익숙한 미술의 조합.











'모든 글은 자전적 이야기이다’는 말은

과연 사실일까

하는 의문을 품었을 때가 있었다



이 글 "여행지에서 써 내려간 '나의 미술사'"를 집필하는 동안, 그간 120개가 넘는 계절을 살아왔기에 참으로 많은 일을 겪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수많은 계절을 살아오며 만났던 꽃잎과, 단풍과, 향기와 그 모든 찬란한 순간의 빛은 아주 납작해진 채 '삶'이라는 책장 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지 않고 그 자리에 곤히 잠들어 있는 내 소중한 추억을 바라보고 있자니 '살아보길 참 잘했다'하는 생각이 든다.



혼자 외롭게 여기까지 걸어왔다고 생각하면서, 내 곁에 이젠 아무도 없다며 암흑 속에 갇혀버린 건 아닌가 하고 좌절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집필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아무도 없어'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들이 거기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존재를 그저 눈으로만 확인하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깜깜한 현실 속에서 앞이 잘 보이지는 않았어도, 내가 손을 뻗었을 때 언제나 누군가가 곁에 있어줬다. 감사한 인생이구나.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지금 여기까지 왔구나. 나를 거쳐간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심지어 미운 추억을 주고 떠나 간 사람에게 까지 말이다.)



내가 빛을 제대로 보며 곧게 뻗어 나갈 수 있도록 지지대가 되어주고,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으로 얼굴을 들이밀라 알려주었다. 말없이 물길을 터 주며 쩍쩍 갈라진 내 영혼의 밭에 물을 대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 덕분에 나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올 수 있었다.










"이젠 정말 끝"이라 생각했던 순간에도

우리는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집필을 하며 촘촘히 내 지난날을 회고해 보았다.

그 결과,



인생은 언제나 완벽하지 않았고,

외려 상당히 실수투성이였으며,


생각했던 것보다

'우연의 연속'으로 이어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이젠 정말 끝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순간 조차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으며,




‘행복한’ 은 ‘시절’이 아닌,

‘순간’라는 단어와 만나는 것이 더 와 닿는다는 사실.


그런 것을 깨달았더랬다.




그리고,

삶이 또다시 난제가 되었을 때


찬란했던 시절을 꺼내어 보며 현답을 구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120개가 넘는 계절을 거치면서, 이제 겨우 '나'라는 사람의 윤곽 정도를 알게 됐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계절이 지나야 온전한 초상화가 완성되는 걸까.









"여행지에서 써 내려간 '나의 미술사'"는 잠시 일상을 떠나 아주 사적인 시각에서 써 내려간 '나의 미술사'이자, 내가 만나 본 ‘세상에 대한 보고’라고 소개하고 싶다. 그리하여 이 글 또한 세상 모든 이의 글처럼 자전적인 이야기를 오롯이 담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 텍스트로 나마

'나'라는 사람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모든 미술과 여행 이야기에 진심을 담아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다.





한 번쯤 여행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거나

길을 떠나 만난 미술 작품을 통해 특별한 순간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혹은 아직 그럴 기회가 오지 않은 사람이라면



"여행에서 써 내려간 '나의 미술사'" 속 나의 이야기를 통해

어제를 추억하고 내일을 그려볼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2019년 7월 22일

무더운 여름날 역삼동 양추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