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를 거절했던 철부지 소녀의 파리paris여행

여행지에서 써 내려 간 '나의 미술사' ep. 4

by ARTSYKOO


첫 해외. 파리. 음악. 초상화. 미술관. 모나리자를 거절했던 '나'







내 생애 첫 버스킹을 떠올리며



해가 뉘엿 뉘엿 지고 있던 어느 여름날 오후, 나는 해운대 바닷가를 걷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백사장 끝자락으로, 해변가에 마련된 작은 스테이지 위로 거리의 뮤지션, '버스커'들이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여름 바다 특유의 짠내가 내 코끝을 스치고, 귓가엔 버스커들의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공연을 보고 있던 관객들의 박수소리, 환호 소리는 여름 밤바다의 낭만을 더해갔다.



한여름 밤바다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불현듯 "내 생애 첫 버스킹"을 했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 오후가 떠올랐다. 16살. 이제 갓 고등학교 첫 학기를 마무리한 나는 40도가 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여름날 오후, 파리의 몽마르트르에서 '거리의 악사'로 데뷔했다.









파리로 떠난 음악 소녀,

‘올림픽 선수’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다시 태어나다



고등학교에서 맞이한 첫여름 방학이 시작되던 날, 나는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생애 첫 해외여행이자, 프랑스인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단기 레슨을 받기 위해 세상 모든 여행자들이 꿈꾸는 도시, '파리'로 떠나게 된 것이다.

파리 행 비행기에 올라탄 나와 나의 바이올린 선생님 그리고 함께 레슨 받는 친구 둘은 한일월드컵이 끝난 다음 날, 파리의 샤를 드 골 공항에 도착했다. 생애 첫 해외여행인 데다, 그 전날 일본 오사카에서 환승까지 했던 터라 피곤함이 몰려왔었는지, 뱅글뱅글 돌아서 나가는 샤를 드 골 공항 주차장 출차 길에서 골아떨어진 나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잠이 깼다.




“얘들아, 어서 일어나 봐, 여기가 파리 시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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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까지도 처음 프랑스식 건축물을 처음 보고 감동받았던 그 순간의 감동을 생생히 기억한다. 택시 안에서 단잠에 빠져있던 나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비몽사몽의 눈으로 파리의 풍경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택시 차창에 비친 파리의 모습은 늦은 오후의 태양 아래 노르스름하게 빛나고 있던, 석조 외관이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이었다. 그것이 내가 처음 본 파리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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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마음에 나는 차창으로 얼굴을 더 가까이 갖다 대고선 마치 아름다운 조각 작품을 감상하듯, 수려한 외관의 파리의 건축물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평소 좋아하던 장 자끄 상페의 삽화에서 자주 봐 왔던, 프랑스인들에게 상징적인 공간인 ‘테라스’에서 일상을 보내는 파리지앵의 모습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다는 생각에 주체할 수 없는 들뜬 기분이 들었다. 겨우 16살이었던의 내 눈에 비친 파리는 책에서, 그리고 영화에서 봐왔던 모습보다 그리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기품 있고 멋진 모습이었다.



우리가 파리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에펠탑이었다. 초대형 엘리베이터를 타고 에펠탑 꼭대기로 올라가자, 아름다운 파리 시내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보이는 관람차와 오래된 건물들의 풍경이 그림과도 같았다. 그리고는 센 강변을 따라 걸으며 이 도시에 내려앉은 낭만적 여름 풍경에 흠뻑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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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가장 놀라게 했던 사실은 파리 여름의 '낮처럼 환한 밤'이었다. 오후 9시가 넘었는데도 낮처럼 환한 유럽의 하늘이 마냥 신기했다. 아름다운 노을이 드리워진 센 강을 보자고 하시던 선생님의 계획에 따라 우리는 오후 9시가 넘어서야 그날의 마지막 센 강 유람선을 탑승할 수 있었다.



핑크빛 노을에 반짝이는 센 강을 바라보던 나는 문득 생각에 잠겼다.



‘같은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지구 어딘가의 여름밤은 이토록 밝고 찬란할 수 있다니! “



나는 놀랍고도 신비로운 기분으로 파리에서의 첫날밤을 보낼 수 있었다.










오. 샹젤리제.

폭신 폭신, 새빨간 카펫이 깔려 있던 고급 펜트하우스로의 초대



파리에 도착한 이튼 날부터 본격적인 바이올린 레슨이 시작되었다. 나와 내 친구들은 파리에 머무는 동안 매일같이 우리들의 선생님이 유학시절 가르침을 받았던 이고르 샤미르 선생님께 바이올린 레슨을 받을 수 있었다.

샤미흐 선생님의 집은 샹젤리제 거리 뒷 편의 고급 주택가에 있었다. 동네 곳곳에 유명 프랑스 명품 브랜드 매장들이 눈에 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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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로 나뉜 매장 입구 중앙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웅장한 목재 게이트를 열고 들어서니 짧은 복도가 나왔다. 약간 어두침침한 복도를 조금 걸어 들어가니 건물 가장 꼭대기 층에 위치한 펜트하우스로 연결되는 레드 컬러의 초소형 엘리베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영국식 전화박스를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이었다.)


고층부에서부터 건물 가장자리를 타고 스파이럴 형태로 뱅글뱅글 돌아서 내려오는 유럽식 계단 구조 중앙의 원통형 공간에 설치된 소형 엘리베이터는 내가 상상도 해 보지 못한 시스템이자 풍경이었다.






펜트하우스의 문이 열리고 공간에 들어서니, 기나긴 복도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복도 바닥에는 새빨간 핏빛 컬러의 새빨간 카펫이 깔려 있었고, 카펫은 저 멀리 창가 쪽까지 이어졌다.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에 닿는 폭신폭신한 카펫의 감촉이 좋았다. 마치 프랑스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빨려 들어온 듯 한 착각이 들만큼 잘 가꾸어진 호화로운 펜트하우스였다.


해외여행도 처음인 내가 영화에나 나올 법한 샹젤리제 고급 맨션 펜트하우스에서 매일같이 레슨을 받게 되었다니. 나는 마치 매 순간 꿈속에 살고 있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난생처음 외국인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이 긴장한 데다, 눈앞의 풍경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들이라 많이 긴장했던지 나는 괜스레 왼쪽 어깨에 걸쳐 맨 내 바이올린 케이스의 끈을 연신 고쳐 메며 긴장되는 마음을 다독이듯 왼쪽 손으로 악기 케이스를 살며시 감싸 안아 본다.


화려한 빨간 카펫이 깔린 복도를 따라 복도 벽으로 유럽식 풍경화가 보였고, 그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복도 끝까지 걸어갔다. 그러자 복도 끝의 방문이 열렸고, 누군가 우리를 향해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Bon jour-




검은색 실크 소재의 기모노 가운을 걸친 백발의 50대 중후반의 프랑스인 남성이 환한 미소와 비쥬(프랑스식 인사, 볼에 입을 맞추는 방식)로 우리를 맞이한다. 앞으로 일주일 간 우리에게 레슨을 해주실 바이올리니스트 이고르 샤미흐 선생님이었다.


샤미흐 선생님을 따라 실내로 들어가니, 유럽 시대극 영화에나 나올법한 고풍스럽고 클래식한 사교 공간인 '살롱'이 나타났다. 풀사이즈의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와 바로크 양식의 소파, 그리고 크리스털로 되어 있는 스피커 등 최고급 사운드 시스템이 갖춰진 정통 유럽식 살롱에서, 내가 일주일 동안 매일같이 바이올린 레슨을 받게 된 것이다!








Working가 아닌 Playing,

악보를 넘어 테라스 밖에서 처음 배웠던 ‘음악’



“예림, 너는 왜 바이올린을 Playing하지 않고 Working 하고 있니?”



이고르 샤미르 선생님과의 첫 번째 레슨 날, 나는 내가 가지고 있었던 예술관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Citius 더 빨리

Altius 더 높이

Fortius 더 힘차게



내게 있어 ‘음악’이란 그저 악보대로 틀리지 않고 연주하는 것에 불과했다. 내 바이올린 연주는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와 같은 올림픽 정신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저 음악은 악보 위에 놓인 수많은 음표들을 올림픽 선수처럼 더 빠르고, 높고, 힘차게 "소리 내면 그만인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샤미르 선생님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가 하는 것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며, 그것을 위해서 감정을 상상하고 그 상상한 감정을 소리로 뽑아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악보의 음표들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하나의 음악이라는 대 서사시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그가 설명하는 ‘음악’이었다.


작곡가가 만든 음악의 멜로디를 심상을 마음에 품고, 상상하는 이미지를 소리로 연주하여 악보의 심상을 최대한 실감 나게 구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파리까지 날아와 경험한 ‘살아있는 음악의 세계’였다.




음악을, 바이올린을 “연주 Playing”하지 않고 “일 Working” 하듯 한다는 샤미르 선생님의 말에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고 바라보자, 이내 곧 내 손을 이끌고는 테라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테라스 아래로 보이는 가로수를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저기 나뭇가지 위에 새 한 마리가 보이니?”



이게 도통 무슨 소리란 말인가.

나는 분명 바이올린 레슨을 받으러 온 것인데 갑자기 테라스에서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새’를 찾아보라니..


나는 순간 어리둥절했다. 그리고는 선생님의 말씀대로 플라타너스 나뭇잎 사이를 한참을 찾아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작은 산비둘기 한 마리를 찾았다. 나는 내가 찾은 새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Voila!(그것 봐!)”



당시 나는 비탈리 Thomaso Antonio Vitali(1655~1745)의 <샤콘느, Chaconne for Violin and Basso Continuo in G mino>라는 곡을 준비해 왔다.


하지만 레슨을 받기 전까지, 연습하는 내내 샤콘느라는 곡의 어려운 테크닉을 해결하려고만 달려들었지, 그 음악 전반에 깔려있는 '정서' 혹은 '심상'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샤미흐 선생님은 테라스에 서서 말씀을 이어갔다.



“저 새가 자기 짝을 잃었다고 생각해봐. 그리고 그 마음이 얼마나 슬플지 생각해보렴. 그 새가 구슬프게 우는 소리를 상상하면서 방금 그 마디를 다시 연주해봐. 바이올린 활을 좀 더 구슬픈 마음을 담아서 긋는 거야. 알겠니?”




나와 선생님은 테라스에서 살롱으로 돌아와 악보 앞에 다시 섰다. 그렇게 나는 샤미르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울음소리가 끊어질 듯 애절하고도 구슬피 우는 새의 마음을 내 바이올린 연주로 전달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는 음악의 하나의 음, 마디, 절을 어떤 기분을 묘사하듯이 연주할지 고민하고 그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이미지와 스토리를 상상해나가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자세로 음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차 기록과 기술에 집중하는 ‘올림픽’이 아닌 한음 한음에 시적 정서와 감성을 입히는 ‘음악’에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거리의 악사'로 데뷔한 어느 여름날 오후,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생애 첫 초상화를 그리다



이른 아침부터 레슨을 받은 뒤 우리는 오후 내내 파리 곳곳을 여행했다. 2층 버스를 타고 노트르담 성당, 퐁피두센터, 오페라 등 파리의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기도 하고, 테라스가 멋진 카페에서 아이스크림과 크로와상을 먹으면서 파리의 일상을 경험했다.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우리는 숙소의 앞마당과 공원에서 바이올린 연습을 하며 하루하루 '파리'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갔다.



파리에서의 체류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아침, 선생님께서는 흥미로운 제안을 하나 하셨다.



“이번 주말 오후에는 몽마르트르 언덕에 가서 길거리 연주해보는 건 어떨까? 너희 셋이서 바이올린 트리오 Trio를 꾸려서 말이야. ”




연습실이 따로 없었던 우리는 우리가 묵고 있던 숙소 마당과 근처 공원에서 악보를 펼쳐두고 갑작스럽게 계획된 거리 연주를 위해 바이올린 트리오 곡을 연습에 돌입했다. 이틀 동안 간단한 소품집 5-6곡을 열심히 연습한 뒤 우리는 토요일 오후 12시,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향했다. 몽마르트르의 성심 성당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한 레스토랑 앞에서 우리는 생애 첫 거리 연주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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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과연 우리 연주를 어떻게 반응할까 관심을 가져줄까? 즐거워할 까? 하는 생각이 들어 너무나도 떨렸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활을 움켜잡고 숨을 깊이 들이쉰다. 두 친구과 나, 이렇게 셋으로 이뤄진 바이올린 트리오는 긴장된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눈짓을 한 뒤, 우리 생애 첫 거리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과는 달리 아시아인 여행객이 그리 흔하지 않았던 2002년 여름, 아시아인 여자 아이 3명으로 구성된 우리 트리오는 주말 오후 몽마르트르 언덕에 올라온 사람들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감사하게도 우리의 연주를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성금을 전달했고, 한 시간 반 정도 연주를 한 뒤 우리는 180유로(한화 약 28만 원)라는 큰돈을 벌 수 있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내 힘으로 벌은 돈이었다.




“이렇게 특별한 의미가 담긴 돈을 아무렇게나 쓰면 의미가 없지 않을 까? 여기 몽마르트르까지 왔으니까 셋이서 돈을 나누어서 거리 초상화가에게 초상화를 그려서 간직하는 건 어때?”




선생님의 제안으로 우리 셋은 사이좋게 돈을 나누어 초상화를 그렸다. 화가들이 걸어둔 샘플 그림을 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초상화를 요청했다.


내가 파리까지 날아와서 몽마르트르에서 길거리 연주도 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프랑스 화가에게 초상화를 그리다니..! 정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꿈만 같은 일이, 낭만적인 이야기가 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다.



40-50분 남짓 같은 자세로 있다 보니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기쁜 마음이 들었다. 완성된 초상화는 내 얼굴과 닮아있으면서 동시에 유럽인의 모습을 띠었다. 아시아인 초상화를 그려 볼 기회가 많이 없었을 터이니 그럴 만 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 초상화가 마음에 쏙 들었다.


그렇게 특별한 추억으로 완성된 소중한 생애 첫 초상화를 원통형 케이스에 돌돌 말아서 한국으로 잘 가지고 돌아왔다. 파리에서의 소중한 추억들을 머금은 나의 초상화를 갖게 된 나는 선생님 덕에 감사히도 평생 잊을 못 할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모나리자'를 거절했던

미래의 아트 러버


사실 어찌 보면 내가 떠난 여행지에서 만난 첫 번째 미술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되었어야 했다. (결국 여행지에서 만난 첫 미술 작품은 모네의 '수련 water lilies'가 되었다.)



“파리에 왔으니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모나리자는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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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말씀하시던 바이올린 선생님.


하지만 아직 철없던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최고 온도 43도까지 치솟은 폭염의 나날들이 계속되던 파리에서 루브르 박물관 앞 광장에 서서 입장을 기다리며 완전히 지쳐버렸던 나와 내 친구들은 “미술에는 관심이 없다”며 손사래를 치며 모나리자 관람을 ‘거절’했다. 대신 루브르 박물관 지하에 신설된 쇼핑몰을 휘저으며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던, 그런 철없던 시절이 있었다.


나의 ‘모나리자 거절’ 사태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특히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내 소개를 하면서 미술 이론을 공부했고 미술계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할 때 종종 상대방이 “저는 미술에 문외한 이라서요” 혹은 “미술에는 큰 관심이 없어요”라는 말을 할 때마다, 이 일화를 그들에게 꺼내 보이며 “내 경험상 당신도 충분히 푹 빠질 수 있어요, 미술에”라고 말하며 그들에게 희망적이고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나만의 미술 사랑 간증의 역사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