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써 내려간 '나의 미술사' ep. 6
16살. 무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앞까지 가서 '모나리자'를 비롯한 미술 작품 관람을 거절했던 내가, 루브르 박물관에 흥미를 갖게 된 이유는 파리에 다녀온 얼마되지 않아 읽은 한 추리 소설책을 통해서 이다.
치열한 교과목 시험과 실기시험이 끝나는 학기말이 되면 나는 잠시나마 그간 바쁘고 스트레스 가득했던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집에 틀어 박혀 앉아 소설책, 특히 추리 소설책에 빠져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 우연히 댄 브라운의 대표작 *'다빈치 코드'를 읽으며, 지난여름 방학 더위와 미술에 대한 무관심으로 그냥 지나쳐왔던 루브르 박물관에 대한 새로운 흥미를 찾을 수 있었다. 소설 '다빈치 코드'가 배경으로 하는 곳이 바로 '루브르 박물관'이었기 때문.
불과 3달 전 고등학교에서 맞이한 첫여름방학에 다녀온 '파리'라는 도시, 그리고 그곳의 루브르 박물관이라는 장소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인지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다빈치 코드'를 읽는 내내 내 기억 속 파리의 풍경은 더욱 생생해졌다. (덥고 미술에는 관심 없다는 이유로 루브르 박물관 전시 관람을 거절한 부분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후회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다빈치 코드. 하버드대 교수이자 저명 기호학자 랭던은 세미나 참석을 위해 파리에 방문했다가 이 루브르 박물관 큐레이터에게 일어난 기괴한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용의자로 지목받게 되고, 피해자의 손녀인 소피 느뵈와 함께 해당 살인 사건에 대한 배후를 파 해치면서 흥미진진한 추리 스릴러 이야기가 전개된다.
베르사유 궁전의 탄생은 '루브르 궁'이 '루브르 박물관'이라는 전시 공간으로 전환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왕과 궁정인에게만 허락되었던 폐쇄적인 공간은 프랑스 아카데미 화단의 상주를 거쳐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되면서 더 많은 대중에게 문화적 경험을 선사해줄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루이 14세를 비롯한 궁정인들이 베르사유로 모두 이주한 뒤 왕이 살던 루브르 궁에는 '왕립 아카데미'가 들어섰고, 주기적으로 아카데미 위원회가 주최하는 '살롱 salon'전이 개최되면서 프랑스 아카데미 화단은 조직적으로 성장하고 상류 사회와 문화예술계, 그리고 정치계에 까지 다방면으로 그 영향력을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방문했던 파리에 다시 가게 된 건 그 후로 정확히 9년 뒤 여름이었다. 그리고 지난날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파리에 머무는 동안 나는 거의 매일같이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
루브르 박물관에 대한 애착이 생긴 것은 비단 '다빈치 코드' 때문만은 아니었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만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18-19세기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Neo-Classism와 사실주의 Realism 작품을 마음껏 감상하고 싶었기 때문.
프랑스혁명 전후를 기점으로 자크 루이 다비드를 중심으로 이끌어갔던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미술 양식은 다비드 특유의 화풍으로 발전해 나갔을 뿐만 아니라, 나폴레옹 1세의 초상화가로 유명한 그로 Antoine-Jean Gros, 초상화로 유명한 앵그르 Jean Auguste Dominique Ingres와 같은 훌륭한 제자들을 양성하면서 프랑스 아카데미 화단의 '신고전주의 화파'의 영향력을 뻗어 나갔다.
정리정돈이 안되고 머릿속은 언제나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 찬 '나'여서 그런지, 미술 작품이든 어떤 도시이든 말끔하고 가지런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안정감과 산뜻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일까. 그간 다양한 시대별 수많은 미술 작품을 봐 왔음에도 자크 루이 다비드,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가 그린 역사화나 초상화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수많은 신고전주의 걸작 컬렉션을 보유한 루브르 박물관은 이렇듯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풍스러운 프랑스 궁정 양식을 경험할 수 있는 루브르 궁의 전시실에 서서 다비드와 앵그르의 작품 속의 안정된 구도와 말끔하게 처리된 인물의 피부 표현, 기품있는 우아한 여성이 입은 고급 소재의 푸른 드레스가 영롱하게 빛나는 순간을 묘사해 놓은 신고전주의 작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면, 마치 아무렇게나 쌓아 두어 모서리 끝이 삐뚤삐뚤하게 어긋난 책 더미의 가장자리 끝을 가지런하게 맞추는 듯한 차분하고 기분 좋은 서늘한 기분이 들어 참 좋다.
루브르 박물관 갈 때마다 반드시, 반복적으로 감상하는 작품들이 있다. 앵그르의 인물 초상 작품들과 앵그르의 스승인 자크 루이 다비드의 대표작 <호라티우스가 형제의 맹세>, 그리고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그의 스승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이 바로 그것이다.
낭만주의 Romanticism, 사실주의 Realism 등 19세기 프랑스 미술사의 흐름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아티스트와 작품이 있다면 단연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 일 것이다. 내가 테오도르 제리코 Theodore Gericault의 <메두사호의 뗏목 The Raft of The Medusa, 1818-19, 루브르 박물관 소장>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된 것 19세기 서양 미술사 수업을 통해서이다.
제리코가 1819년 살롱 전시에 출품했던 작품 <메두사호의 뗏목>을 최초로 구상하고 완성하기까지 그가 감행한 일련의 다큐멘테이션 과정은 결코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승객 400여 명을 태운 채 프랑스에서 식민지 세네갈로 향하던 메두사호는 아프리카 해협에서 암초에 걸려 좌초했다. 하지만 준비되어 있던 구명보트의 개수는 겨우 탑승 인원의 절반 정도를 태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승객을 우선적으로 탑승시키고 나머지 승무원과 병사들은 급조된 뗏목에 타게 되었는데, 얼마 남지 않은 식량과 물로 잦은 다툼과 급기야 살인과 자살, 병사 등의 과정으로 150명 명의 사람들이 뗏목 위에서 죽어나갔고, 2주가 지나는 시점에서 생존자는 뗏목 탑승객의 1/10밖에 되지 않은 15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구조된 생존자들조차 굶주림에 지쳐서 거의 빈사 상태였다고 하니 몇 주 동안 뗏목 위에서 인간으로 겪을 수 있는 가장 참혹한 광경들이 연이어 일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제리코는 이 작품을 묘사하기 위해 생존한 선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고, 실제 뗏목을 재현하기도 하고 뗏목 상황을 보다 사실적으로 묘사하고자 밀랍으로 인체 본을 떠서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실감 나게 묘사하고자 했다. 또한 병원에서 시체 구해 그의 작업실로 가져와 시체 상태의 인체가 굳은 정도를 파악하여 뗏목 위의 시체 묘사하는데 참고했으며, 그의 후배 작가이자 훗날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에 큰 영향을 프랑스 낭만주의 대표 작가 들라크루아가 제리코를 위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모델이 되어 포즈를 취해주기도 했다.
제리코가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한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 나는 진정 ‘집념의 아티스트’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광기에 가까운 그의 노력은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게 해 주었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던 7월 초 어느 날 오후, 나는 혼자 루브르 박물관을 향했다. 평일 오후라 조금은 한산한 전시실 풍경. 나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조용한 전시 관람 환경에서 마음껏 감상하고자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이 전시되어 있는 드농 윙 1층 프랑스 회화 전시실로 향했다.
491 X716cm라는 엄청난 크기의 대작인 이 작품을 구석구석 자세히 살펴보며, 나는 지난 학기 서양 미술사 수업시간에 들었던 작품에 관한 내용을 하나하나 상기하면서 작품 감상에 푹 빠져 있었다. 그때였다.
“이 그림이 어느 화가의 작품인지 알고 있니?”
누군가 나에게 갑작스러운 미술사 퀴즈를 낸다. 내 옆에 서 있던 50대 중반의 프랑스 아저씨였다.
나는 '당연히 알죠!' 하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테오도르 제리코요” 하고 대답했다.
아저씨의 얼굴을 보아하니, 정답을 맞힐 것이라는 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표정이다. 아마도 이 아저씨는 어린 아시아 여자 아이가 이 작품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이상의 내용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눈치다.
아시아의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서양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을 만난 것이 퍽이나 신기했는지 아저씨는 내가 하고 있는 공부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우리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내 이름은 프랑크 야. 파리와 아부다비를 오가며 무역업을 하고 있지. 나는 6살 때부터 루브르 미술관에 매주 왔단다. 5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거의 매주 오는 편이야. 혹시 네가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을 좋아하면 너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작품이 있단다.”
프랑크를 따라 나는 <메두사호의 뗏목>을 뒤로하고, 드농윙을 가로질러 수많은 크고 작은 전시실을 지났다.
다비드의 걸작 중 하나인 <나폴레옹 1세 대관식>과 앵그르의 <대 오달리스크>를 지나 프랑크가 나를 이끌고 간 곳은 어린 시절 우리 집 실내 인테리어를 떠올리게 하는 어두운 톤의 우드 패널로 실내 벽이 장식된 아담한 크기의 전시실이었다.
"Voila!"
프랑크는 창 측 벽면에 전시된 크기가 아주 작은(불과 20X30cm 정도밖에 되지 않아 보이는) 한 작품을 가리켰다. 언뜻 봐도 한눈에 그 작품이 <메두사호의 뗏목>을 그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동일한 작품의 습작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절대 흔한 기회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완성작으로 가기 위한 단계에서 탄생한 이 작은 '습작'을 보고 감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 작은 그림을 통해, 제리코가 <메두사호의 뗏목>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쏟아부은 그의 열정과 노력에 대한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스쳤고, 열과 성을 다한 작업 과정의 흔적을 이렇게나마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어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언뜻 보면 별일 아닌 듯 생각할 수 있지만, 시간이 흘러도 기나긴 여운이 남는 당시 상황을 생각할 때, 살면서 경험한 작품 감상 중 인상적인 순간이었음이 분명하다.
어느덧 루브르 박물관의 폐장이 불과 15분도 채 남지 않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루브르 박물관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미술은 물론, 음악, 무용, 연극, 문학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는 박학다식한 아트 러버 프랑크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은 상상 이상의 수준이었다. 심지어 대중문화에도 관심이 많아 최근에는 K-POP도 듣는다고 말했다. (프랑크를 만났던 당시 열렸던 소녀시대 파리 콘서트 소식까지 알고 정도였으니 꽤 깊이 있게 알고 있었다)
나는 프랑크가 대체 어떻게 K-POP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사실 나한테는 한국에서 유명한 뮤지션 친구가 있어. 그녀와는 박물관에서 우연히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알게 되었지. 하지만 딱하게도 그 친구에게는 슬픈 사연이 있었어. 가족같이 믿었던 자기의 매니저에게 사기를 당해서 전 재산을 잃게 되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상태라고 하더구나. 정말이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 지 30분도 되지 않으면서 나에게 울면서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았어.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 타국 땅에서 만난 낯선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하는 생각에 너무 안타까웠어. 그녀가 파리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동안 꾸준히 나와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소식을 알리 곤 했지. 솔직히 나는 그때까지 그녀가 한국에서 그렇게 크게 인기 있는 가수인 줄 전혀 몰랐어.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자신의 콘서트 영상을 보내 줬고, 콘서트에서 그녀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수많은 팬들을 보게 된 이후 그녀가 얼마나 인기 있는 가수인지 알게 되었지.”
내가 어린 시절부터 참 좋아하고 지금도 종종 듣곤 하는 유명 가수에 이야기를 이곳 루브르 박물관에서 우연히 만난 프랑스 아저씨에게 듣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나도 그 가수의 팬이라고, 모든 노래를 다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 가수라고 말하니 놀라워했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가수에게 그런 슬픈 일이 일어났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나와 프랑크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나와 퐁피두센터까지 거닐며 미술, 음악, 무용에 관한 폭넓은 주제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는 퐁피두 센터 쪽으로 함께 걸으면서 파리 시내 곳곳에 숨겨진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어느덧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 되었다.
“파리에서는 언제나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돼. 메트로를 기다리거나 탈 때는 언제나 벽에 등을 붙이고 서 있는 게 안전하단다, 알겠지?”
'예술'분야에서 활동하지 않아도, 그저 문화와 예술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도 이렇게 넓고 깊게 알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프랑크'.
그렇게 프랑크와의 우연한 만남은 지금까지 내가 여행에사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박학다식한 아트 러버와의 만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