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써 내려간 '나의 미술사' ep. 7
“la pluie!”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하던 파리의 이른 아침. 숙소 근처 메트로 역으로 가는 길, 내 콧등 위로 빗방울이 툭 하고 떨어졌다. 바로 얼마 전, 기초 프랑스어 수업시간에 배운 ‘비’라는 단어 ‘쁠뤼 pluie’라는 어감이 잘 어울리는 비 내리는 파리의 아침이다.
이른 아침 도시 번화가 풍경은 특유의 '신비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번화가 고유의 세련미와 번듯함, 그리고 웅장함은 그대로이지만 아직 빛과 인적이 드물어 적막에 가까운 고요함이 극대화되면서, 마치 고급 호텔 로비에 와 있는 듯 특유의 쾌적함과 말끔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어 참 좋다.
울룩불룩한 굴곡이 유난히 잘 보이는 묵직한 구름 아래로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는 이른 아침, 골목골목 아기자기한 자태로 자리 잡은 파리의 상점들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기 전.
'치즈 샵', '고급 모자 샵', '중국 도자기 샵', 귀걸이, 팔찌 등을 취급하는 '금속공예품 샵', 화장품은 물론 온갖 종류의 생필품까지, 없는 게 없는 '대형 약국' 등 아직 불이 켜 지지 않은 상점 안을 들여다보니, 마치 미술관의 유물을 관람하는 듯, 정적이고 시간이 멈춰버린 듯하다.
하늘 높이 솟은 빌딩 숲 아래 다국적 브랜드의 플래그쉽 스토어가 즐비한 강남역의 아침과는 전혀 다른, 파리라는 도시 특유의 작지만 아기자기하고 곳곳에 낭만이 깃든 모습이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선 여행자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불이 꺼진 상점 쇼윈도에 비친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 정도 되면 나도 파리지앵 같이 보이려나?' 하며 유리창에 비친 오늘의 내 모습을 살펴본다.
아직 고요한 거리 풍경에서 유일하게 붐비는 곳은 다름 아닌 파리지앵들의 아침 허기를 고소한 맛과 향기로 달래 줄 불랑제리 boulangerie (빵집)과 파리지앵 아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카페오레 cafe au lait'를 마실 수 있는 카페들이다. 메트로를 향해 가던 길에 우연히 지나친 한 불랑제리는 이 동네에서 맛있기로 유명한 집인지, 크루아상과 바게트를 사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줄이 족히 10m는 되어 보인다. 주인과 함께 자기 차례를 얌전히 줄 서서 기다리는 강아지들도 드문드문 보이는 파리의 아침 풍경은 사랑스럽다.
비에 젖은 여행자를 달래 준 따뜻한 카페오레와 갓 구운 빵 오 쇼콜라
출근하는 파리지앵으로 가득 찬 메트로 12 호선을 타고, 나는 오르세 미술관이 있는 솔페리노 Solférino 역에 내렸다. 오전 8시 50분. 박물관 오픈 시간까지 40분이나 남은 상황에, 아까 전 까지만 해도 한 두 방울 정도 떨어지던 비는 메트로 출구 밖으로 나가자 이내 곧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일단 비를 피할 수 있으면, 그리고 따뜻한 커피와 고소한 버터향이 감도는 갓 구운 크루아상 하나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으로 오르세 미술관 뒷길을 빠른 걸음으로 걸으며 길가 어귀의 적당한 카페를 찾았다. 빗방울이 점점 거세지자, 비를 피할 천막을 찾던 와중에 클래식한 블랙 컬러의 블랑제리가 눈에 들어온다.
“Eric Kayer 에릭 케제르”
나는 비를 피해 불랑제 리 안으로 들어갔다. 머릿속으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과 크로와상을 간절히 바라며 카페로 들어왔지만, 막상 주문할 때 내 입에서 나온 메뉴들은 조금 다른 것들이었다.
“un café au lait, et pain au chocolat, s'il vous plait!”
나는 차근차근 기초 불어 수업시간에 배운 주문 다이얼로그를 떠올리며 프랑스어로 따뜻한 카페오레와 반짝이는 표면과 속은 버터로 촉촉해진 페스츄리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발로나 초코칩의 달달함을 맛볼 수 있는 ‘뺑 오 쇼콜라 pain au chocolat’를 주문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집중해서 내가 전시를 보기 위해서 그전에 든든히 먹어 두겠다는 다짐을 하며.
카페 창가 근처에 자리를 잡아 비 내리는 오르세 미술관 근처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따뜻한 카페오레와 달콤한 빵 오 쇼콜라를 한입 가득 베어 물며 맛있게 먹었다. 우유와 초코칩이 더해진 달달하고 고소한 아침식사로, 허기와 한기가 돌던 몸이 녹았다. 몽롱하고 정신없던 나는 드디어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 오르세를 방문할 준비를 마치게 되었다.
내 유년기의 기차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설렘'이었다. 친가 외가 모두 내가 나고 자란 곳에서 기차를 타고 4시간은 가야 도착하는 타지였고, 도시를 떠나 가족들과 함께 사랑하는 조부모님이 계신 '사랑의 전원'으로 향한다는 기대감에 기차 여행은 내게 있어 언제나 행복한 경험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가족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기차 밖의 풍경들(광야 위로 드넓게 펼쳐진 하늘 위 흰구름 모양에 대한 묘사)을 감상하고, 또 언제 올지 모르는 스낵카를 기다리던 (기차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계란, 귤, 호두과자와 같은 맛있는 간식들을 맛볼 생각에 신난) 기차여행 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웠던 추억들은 나로 하여금 세상 그 모든 교통수단 중에서 여전히 '기차'를 가장 선호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본디 기차역이었던 건축물을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오르세 미술관을 생각해볼 때, 기차역이라는 공간에 19세기 서양미술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아티스트들의 혁신적인 시대정신은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기차역을 우리가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수많은 물리적, 심리적 변화의 순간들이 집약적으로 모여있는 공간이 기차역이라고 가정한다면, 기차역은 '새로움', '변화'의 기로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심리적 양상과 익숙함을 탈피해 어디론가 떠나는 '탐험'이 발생하는 곳이 된다.
데생 교육을 기반으로 엄격한 법칙과 비례미, 신화와 역사와 같은 고전적인 주제화 제작에 가치를 두고 있었던 기존의 보수적 아카데미의 미술 전통을 넘어, 인상주의, 사실주의, 상징주의, 회화주의 등 새로운 미술세계와 새로운 미술에 대한 정의로 한 걸음 나아간, 19세기 실험 미술의 플랫폼이 된 오르세 기차역.
1900 년 만국박람회 당시 건축가 빅토르 랄루(Victor Laloux)의 설계로 기차역 내부에 건립된 오르세 미술관은, 1848 년부터 1914 년까지의 서양 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사실주의, 인상주의, 상징주의를 비롯해 분리주의(Sécession)와 회화주의(pictorialisme) 등 시대를 대표하는 조각, 장식, 사진, 데생, 회화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들을 전시 중이다.
프랑스 아카데미의 가치와는 다른, 새로운 미술사조를 개척해갔던 인상주의 화가 마네(Manet), 모네(Monet), 르누아르(Renoir), 드가(Degas), 입체주의 세잔(Cézanne), 후기 인상주의 화가 고갱(Gauguin), 반 고흐(Van Gogh), 신인상주의 점묘 화가 쇠라, 시냐크, 사실주의 화가 도미에(Daumier), 밀레(Millet), 쿠르베(Courbet)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오르세는 19세기 아티스트들의 모험과 실험, 탐험가적 정신을 살펴보기 에 가장 적합한 미술관이 아닐까.
미술이론과 수업 도중에 학과 교수님께 들었던 말이다. 어떤 아티스트와 그의 작품에 대한 수많은 논문을 읽고, 이미지를 찾아보고, 분석을 하고 비평하는 글을 쓰더라도, 결국 그 작품을 실제로 본 사람이 경험한 것을 이상의 미술적 경험을 하기란 어렵다는 뜻이다.
아직 세계 각국의 미술관과 갤러리 탐험을 하기 전이었던 나는 처음 이 이야기 들었을 때 “과연 그럴까?”, 그리고 만약 그러하다면 “왜 그럴까?”라는 의문을 품었더랬다.
이러한 나의 의문에 대한 답변이 되었던 것은 바로 오르세 미술관에서 본 구스타프 쿠르베 Gustave Courbet의 “오르낭의 매장 A Burial At Ornans (Un enterrement a Ornans), 1849? 50” 작품을 실제로 관람한 경험이다.
왜 직접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이 작품을 보자마자 들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미술사 책에서 혹은 수업시간에 PPT를 통해서 봤던 이미지가 주는 인상과 전혀 다른 인상을 주는, ‘압도적인 크기’ 때문이었다.
19세기 미술사 수업을 통해 쿠르베의 ‘오르낭의 매장’이 ‘초대형 작품’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이 작품을 실제로 접하기 전까지, (아니, 수많은 유명 미술 작품을 실제로 관람하기 전까지) 미술사 수업이나 책을 통해서 내가 접해 왔던 작품의 ‘크기’는 그저 아티스트 이름과 제목, 작품 제작연도와 같은 표면적인 정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작품 크기에 관한 이슈보다는 아티스트가 특정 작품을 제작하게 된 배경이나, 제작 시기에 얽힌 당대 사회적 상황, 그리고 작품에 대한 당대의 평판과 현재의 평판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관한 사실에 나의 관심이 치우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미술사적으로 보았을 때, 어떠한 새로운 시도를 성공적으로 해 냈으며, 그리고 현재 어떤 곳에 소장되어 있는지, 그리고 어떤 연구자가 해당 작가를 집중 연구했는지, 그 성과는 어떠한지 등에 대한 분석이 실제로 내가 미술이론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오르세 미술관에서 ‘오르낭의 매장’을 처음 본 순간, 작품에 관한 나의 배경 지식은 모두 사라지고 ‘압도적인 인상’만 남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특히 작품이 주는 ‘압도적인 인상’은 315 cm × 660 cm라는 엄청난 크기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무려 서울 시내버스의 절반 정도의 크기이다) 너무나도 거대한 이 작품을 한눈에 다 담기 위해서 작품을 바라보며 한참을 뒷걸음질 쳐야 했다. 그렇게 해야 겨우 내 시야 안에 다 들어오는, 엄청난 크기였다.
뒷걸음치는 나의 시야 속에서 과거 기차가 드나들던 ‘오르세 역’의 높은 천장과 드넓은 공간은 더 이상 광활한 느낌을 주지 않았다. ‘오르낭의 매장’ 작품 이미지 자체가 갖는 웅장하고 장엄한 분위기는 공간을 가득 채워버릴 것만 같은 특별한 에너지를 뿜어내며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쿠르베가 <오르낭의 매장>을 완성했던 1849-50년은 여전히 엄격한 미술 기법, 양식과 주제를 주창하던 아카데미즘 academism에 입각한 미술 작품이 평단의 인정을 받던 시기였다. 주로 신화, 종교, 역사, 정치, 영웅적 인물 와 같은 고전적 주제를 전통적 화법에 따라 기품 있게 표현하는 그런 작품들이 주류 미술계의 인정을 받았고, 이런 아카데미즘에 입각한 작품을 제작하여 아카데미가 주최하는 살롱전과 같은 공식 전시를 통해 인정을 받는 행위는 곧 작가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명예가 보장된 미래(아카데미 입회)를 그려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던 시절이다.
다비드의 신고전주의 작품은 주로 역사, 신화, 정치적 사건을 성당이나 궁전의 벽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대형으로 제작되었는데, 그 대표 작품의 예시로는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중인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Consecration of the Emperor Napoleon I and Coronation of the Empress Josephine in the Cathedral of Notre-Dame de Paris on 2 December 1804, Notre Dame Cathedral, Paris) 그리고 역시 루브르 미술관 소장품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가 형제들의 맹세 (fr. Le Serment des Horaces /en. Oath of the Horatii, 1784,329.8 cm X 424.8cm Musee du Louvre)와 같은 작품이다.
신고전주의 작품들은 역사적, 정치적으로 중요 인물들의 일생일대의 중요한 순간이나 상황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그들의 위엄과 존엄성을 더 많은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장치로써 대형 작품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공공장소 전시되어 일종의 ‘프로파간다 propaganda’ 미술로 그 역할을 했다고 해석 할 수 있다.
"Painting is an essentially concrete art and can only consist of the representation of real and existing things.”
- Gustave Courbet
19세기 프랑스 사회를 생각할 때, 쿠르베의 <오르낭의 매장>은 기존 기득권, 권력자에 대한 대항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만큼 센세이셔널한 것이었다. 특히 이 작품은 역사나 신화, 종교가 아닌 쿠르베 개인이 실제 겪은 사건, 즉 역사적 사실이 아닌 '일상적 실제 사건’에 기반한 기록화이며, 작품의 주인공이 된 인물은 권력자나 역사적으로 주목해야 할 위인이 아닌 실제로 쿠르베가 태어난 오르낭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행해진 화가 자신의 증조부의 장례 상황을 주로 전통적 신념이나 가치, 혹은 영웅의 업적을 드 높이기고 널리 알리고자 제작되었던 작품과 같이 '초대형'으로 제작되었 제작된 회화 작품이었다는 사실은 충분히 파격적인 시도라 볼 수 있다.
쿠르베는 유명하지 않은, 평범한 지방 도시의 한 인물의 장례식 분위기를 마치 대단한 위인의 장례식과도 같이 장엄하고도 경건하게 연출, 묘사했다.
쿠르베의 <오르낭의 매장>은 상황을 묘사한 이미지 자체가 풍기는 장엄하고 엄숙한 분위기, 그리고 작품 엄청난 크기가 주는 압도적인 인상을 결합된, 북 디자인 레이아웃에 맞춰 재단된 '이미지 정보 전달용'이 아닌, 실제 작품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작품에 대한 감상과 인상, 그리고 깊이 있는 이해에 얼마나 차원이 다른 경험을 선사해주는지 깨닫게 해 준 소중한 미술적 경험이 된 작품이다.
‘아우라 aura’. 우리가 흔히 어떤 인물이나 사물에 대한 인상을 표현할 때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라는 말을 종종 사용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그 인물/사물의 크기 너머의 영역으로 확장되어 그 에너지가 나에게 다가와서 위력을 행사할 때, 우리는 바로 아우라라는 것에 대해서 비로소 인지하게 된다.
또한 작품의 여러 미술적인 조건과 요소뿐만 아니라 크기와 작품이 전시된 공간에서의 작품의 이미지가 극대화되는 측면을 볼 때, 공간적인 측면에서 전시에 적합하고, 또 그 공간에 잘 맞아떨어지는 작품을 감상하는, 즉 인쇄물의 디자인과 레이아웃에 맞춰 잘린 이미지가 아닌, 공간 속에서 완전한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은 ‘실제로 작품을 보는 경험’의 가치를 이끌어 올려준다.
실제로 루브르 박물관 1층 드농 윙 Denon wing에 전시되어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Leonardo Da Vinci (1452 - 1519, Italy)의 명작이자 수수께끼와도 같은 배경을 가진 <모나리자 mona LisaPortrait of Lisa Gherardini, wife of Francesco del Giocondo, known as the Mona Lisa>의 작품 크기는 77cm X 53cm에 불과하다.
모나리자의 역사적 명성과 그 명성이 쌓아 올린 작품에 대한 판타지는 모나리자 작품을 고층 건물의 벽면을 다 뒤덮을 수 있을 크기여야 마땅할 것 같았지만, 실제로 내가 마주한 모나리자의 모습은 내가 사용하는 모니터 정도의 작은 크기의 캔버스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내며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모나리자.
이미 크기가 작은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작품의 신화적 판타지가 이미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확장된 상태에서 수많은 루브르 박물관 관람객 틈 사이로 실제로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뭔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모나리자의 표정도, 나의 기분도 복잡미묘해졌던 것이다.
실제로 작품을 관람했을 때 그 작품의 물리적인 조건들 즉, 작품 이미지나 컬러(실제와 인쇄물, 디지털 매체로 보는 이미지의 컬러와의 차이), 그리고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전달받은 작품의 인상과 작품이 풍기는 특유의 에너지를 경험한 후에 차오르던 작품 감상의 경험이 인쇄물로 접할 때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깨달은 순간, 나는 세상 모든 미술 작품을 최대한 많이 직접 가서 감상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Lana Turner And Venus, American actress Lana Turner (1921 - 1995) views the ancient Greek statue 'Venus de Milo' during a visit to the Louvre in Paris, France, 1953. (Photo by Rene Jarland/Graphic House/Archive Photos/Getty Images)
실제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경험을 통해 무엇보다도 이미지가 갖는 크기에 따라 어떤 인상과 이미지의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는 지를 경험할 수 있고 작품 특유의 아우라가 기억 속 미술사 책 지면 속을 벗어나 생생한 감상'이라는 입체적인 경험으로 발전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미술 작품을 (특히 좋아하는 작품은 더욱) 직접 보는 행위는 결코 멈출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면에 프린트 된 작품 이미지가 주는 인상과 실제로 경험한 작품은 과연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는지 비교해서 생각하고, 작품에 대한 정보가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그래서 그 작품이 우리에게 어떤 말들을 걸어오는지 경험하는 순간, 진짜 '감상'이 시작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