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써 내려 간 나의 미술사 ep. 10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 Chicago Art Institute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피카소도 샤갈도 마다한 채, 수많은 전시실을 가로질러 곧장 '미국미술' 섹션의 '갤러리 262'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곳에서 내가 찾아 헤매이 던 밤을 만났다.
시카고에서 찾은 뉴요커들의 깊은 밤, 그 '잠 못 이루던 밤'을 말이다.
1942년, 에드워드 호퍼가 그린 '밤을 지새우던 뉴요커'들은 여전히 필리스 레스토랑의 한켠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그들이 지새우던 기나 긴 밤은 이어지고 또 이어져, 이곳 시카고까지 불 밝힌다.
'밤 풍경'이 주는 정서는 내게 있어 유독 특별하고 또 소중하다. 어린 시절 늦여름 시골 외갓집에 외할아버지의 기일을 기리러 가면 나는 종일 물놀이하고 논밭을 여기저기 뛰놀면서 행복한 아침과 낮 시간을 보내다가 괜스레 피로해진 탓에 예민해져서 언니 오빠들의 장난에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그렇게 내가 세상 서럽게 울고 있노라면 나를 정말 예뻐했던, 그리고 나의 이상형이었던(지금도이다!) 큰 외삼촌은 그 크고 듬직한 등에 자신을 업고서는 제사상에 올리려고 준비해 둔, 외할머니가 직접 따고 껍질을 깎아 정성스럽게 말려 만든 곶감 하나를 몰래 빼서 외가 앞 작은 숲으로 데려가 곶감을 주며 나를 달래주었고, 노래를 불러주면서 엄청난 쇼 show를 보여주곤 했다.
바로 '반딧불이'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도, 온 동네를 쏘다니던 낮 시간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반딧불이 녀석들은 마치 나의 슬픔과 서러움을 달래주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 빛 한점 안 드는 깜깜한 시골 숲에서 수십 마리는 되는 친구들을 불러 모아 환상적인 불빛 쇼를 보여주곤 했다.
아직도 늦여름 밤이 되면 그 숲의 향을 기억하고 그 숲 향이 코끝을 스치기라도 하면, 외삼촌 등에 업힌 아주 자그마한 아이가 되어 반딧불이들의 찬란한 불빛을 추억하곤 한다.
이처럼 내가 추억하는 '밤 풍경'은 눈을 감아도 눈 앞에 생생히 펼쳐지는 그런 환상적인 인상으로, 나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밤 풍경'에 대한 특별한 '낭만'으로 저장되어 있다.
하지만 1940년대 미국 뉴욕에서 살아갔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눈에 그가 본 밤의 풍경은 과연 어떠했을까?
세로로 기다란, 마치 영화관의 '와이드 스크린'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 형태가 인상적인 캔버스 안에 배치된 세 명의 뉴요커와 한 명의 셰프가 밤을 지새우고 있다.
같은 시간과 장소를 공유하고 있는 그들이지만, 그 사이에는 그 어떠한 감정이나, 정서나, 분위기도 이어져 있지 않다. 마치 인물 각각이 '섬'처럼 '외딴'의 형태로 오롯이 홀로 서서 밀려오는 파도를 무심히 바라보는 듯, 시간과 공간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자기만의 섬’에서 은신한 채 그저 우두커니 앞만 응시한 채 앉아 있을 뿐이다.
호퍼가 작품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그렸던 시기는 1942년, 그의 나이 예순 살 무렵이었다. 에드워드 호퍼를 대표하는 작품이자, 수많은 영화감독, 미술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호퍼가 실현하고자 했던 그만의 예술관이 여실히 반영된 수작이다.
작품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펼쳐지는 배경은 늦은 시각까지 운영하는 뉴욕 맨해튼 그리니치 빌리지에 실존했던 간이식당 ‘필리스 Philies’를 배경으로 한다.
필리스 내부의 밝고 환한, 다소 외롭고 공허하게 묘사된 손님들이 있는 실내 풍경과 인적이 없는 거리의 공허한 풍경이 드라마틱한 대조를 이루어 적막하고 공허한 정서의 도시의 밤 풍경을 절묘하게 묘사하는 독특한 분위기의 작품이다.
1940년대 뉴욕, 세계의 절반 이상이 세계대전으로 참혹한 하루하루를 보냈던 그 시절, 비록 전쟁의 참상에서 물리적으로는 멀어져 있었던 미국인들에게 전쟁은 내일 당장 내 가족 혹은 친구가 입대하여 싸워야 할 일상이자, 혹은 총칼을 겨누는 싸움보다도 더 복잡하고 처참한 이념의 논쟁이라는 또 다른 전쟁터에서 그들의 일상을 맞이해야 했을지도 모르는 하루하루가 이어졌던 20세기 중반의 미국, 뉴욕.
‘불확실성’과 ‘암울한’, ‘두려운’ 하루하루를 보내며, 물질적으로는 당시 기준으로 미국의 짧은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물질과 수많은 기회가 팽배했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서적으로는 곤궁하고 공허했고 멍한 상태였던 것만은 확실하다.
많은 사람들은 뉴욕에서 자신의 '화양연화' 시절을 보냈던 수많은 아티스트 중, 실제로 뉴욕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그리 흔치 않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미국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아티스트인 잭슨 폴락(Jackson Pollock, 1912년 와이오밍 주 코디 출생) 60-70년대 뉴욕을(혹은 세계 미술계를) 주름잡았던 앤디 워홀 또한 뉴욕 출신이 아니었고, (Andy Warhol, 1928년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출생), 키스 해링(Keith Haring, 1958년 펜실베이니아 주 리딩 출생) 또한 뉴욕 출신은 아니었다. 이들은 모두 성인이 된 후 뉴욕을 주 무대로 아티스트로 활발히 활동했다.
뉴욕 어퍼 나이 아크 Upper Nyack 출신인 에드워드 호퍼 이외에 뉴욕 출신 아티스트로는 로이 리히텐슈타인(1923년 뉴욕 맨해튼 출생)이 있다. '뉴욕'이라는 도시가 갖는 화려하고 패셔너블한, 즉 '상업적'이고도 '자유분방'하고 변화무쌍한 상태 혹은 현상에 매료되어 작품 활동을 이어갔던 워홀, 리히텐슈타인과 같은 1960-70년대 아티스트들과 달리, 호퍼는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상 풍경, 현상보다는 '삶' 그 자체를 담아내려고 했고, 특히나 이 도시의 '정서적인 측면'을 도시의 풍경과 더불어 이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뉴요커)의 모습을 수십 년간 그만의 화법으로 담담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그가 품었을 '뉴욕'이라는 도시이자 고향, 혹은 뮤즈로써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19세기 말, 1882년 뉴욕주 나약에서 태어난 에드워드 호퍼는 1967년 그의 나이 79살, 눈을 감을 때까지 평생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또 뉴욕 일상 풍경의 일부가 되어 살아갔던 아티스트이자 뉴욕 토박이였다.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에드워드 호퍼의 자화상
Edward Hopper, <Self-Portrait, 1903~1906>,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USA
호퍼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던 시기는 1920년대부터로, 미국의 경제공황, 세계 1차, 그리고 2차 세계대전과 함께 미국 사회는 정서적으로, 또한 이념적인 대립이 본격화되는 불안정한 사회분위기에 휩싸이게 되었던 때였다.
또한 세계대전 참전을 이유로 수많은 미국인들이 타국으로 떠났던 시기였고, 수많은 유럽 이민자들이 자유와 꿈을 찾아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유입되었고 미국 사회는 ‘전쟁’에 대한 공포심과 동시에 전쟁을 통한 경제적 반사이익이 미국 사회로 유입되면서 도시에는 넘쳐나는 소비재와 상업 광고가 만연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화려하면서 동시에 공허하고 고독한 상반되는 모순적인 정서가 공존한 ‘미국적 정서’가 팽배해지기 시작했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에드워드 호퍼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뉴욕의 레스토랑, 카페, 상점, 거리 등 일상적인 풍경을 주로 묘사하며, 호퍼 특유의 생략과 재구성 방식을 사용하여 실제 풍경을 배경으로 하지만 호퍼 작품 특유의 오묘하면서도 텅 빈듯한 ‘공허한 정서’를 절묘하게 표현하면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갔다.
나는 문득 과연 ‘호퍼’의 눈에 ‘뉴욕’이라는 도시는 과연 어떻게 비추어졌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어찌 보면 그에게 ‘뉴욕’이라는 도시는 단순히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 그리고 모든 이가 동경하는 세상의 중심이 아닌, 마치 뉴욕과 그곳을 채우는 공간과 사람들 전체가 하나의 ‘뮤즈’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치 미국 드라마 시리즈 ‘섹스 앤 더 시티 Sex and the City’에서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가 반복적으로 고백했듯, ‘뉴욕 New York’이라는 도시 자체를 대체 불가능한 ‘특별한 대상’으로, 마치 하나의 ‘인격체’인 것과 같이 바라보고 묘사하듯,
에드워드 호퍼 또한 '캐리'와 같은 시각으로 이 도시와 이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미국 전역, 혹은 전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사람들, 그리고 지금은 뉴요커로 살고 있을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 도시의 시시각각, 시시콜콜한 풍경과 이야기들을 그만의 예리한, 뉴요커의 시점으로 바라보고 기록했던 것은 아니었을 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작품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펼쳐지는 배경은 늦은 시각까지 운영하는 뉴욕 맨해튼 그리니치 빌리지에 실존했던 간이식당 ‘필리스 Phillies’를 배경으로 한다.
과도한 소비문화 조장과 넘쳐나는 상업 광고와 이미지들, 동시에 전쟁과 경제 위기에 대한 불안감과 공허함이 팽배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뉴욕 맨해튼의 로어 웨스트 지역의 ‘그리니치 빌리지 Greenwich village’는 무언가 새로움을 갈망하고 변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행동하는 젊은이들이 꿈틀대던 ‘예술과 문화’의 요람과도 같은 역할을 톡톡히 했다.
1942년, 뉴욕 맨해튼의 로어 웨스트사이드에 위치한 그리니치 지역은, 지금의 서울로 치면 성수동이나 이태원 정도의 힙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던, 아티스틱한 동네였다고 한다. 뉴욕대학교가 이 그리니치 빌리지에 위치했고, 실제로 이 작품을 그린 호퍼가 그리니치 지역에서 거주하기도 했으니, 뉴욕이라는 도시에서도 가장 예술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지역이었을 것으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리니치 빌리지는 역사적으로 20 세기 초와 중반에 미국 보헤미안 문화지도에서 중요한 랜드 마크로 알려졌다. 특히 그리니치 빌리지는 화려하고 예술적인 이곳 지역 거주민들과 다채로운 문화의 공존이라는 그 지역만의 문화로 정평이 난 곳이었고, 덕분에 진보주의적인 그리니치 빌리지 주민들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정치적, 예술적, 문화적 새로운 운동과 아이디어의 중심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그리니치 빌리지 지역은 뉴욕의 전위적이고 대안적인 문화의 게토로써 이런 그리니치 지역 특유의 진취적인 성향은 무려 19 세기 무렵부터 시작되어 20세기까지 그 정신을 이어온 독특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이런 분위기에 따라 그리니치 빌리지에는 유독 언론사, 미술관, 갤러리, 실험 극장이 번성해왔는데, 특히 이 지역에서 가장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1857 년에 완공된 건축물 ”The Tenth Street Studio Building”는 그리니치 빌리지를 뉴욕시 예술의 중심으로 만드는데 크나 큰 기여를 했고, 특히 이곳은 미국 전역의 예술가들이 이곳에 모여 작품을 전시, 판매 및 판매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외에도 19세기부터 현존하고 있는 뉴욕 문화예술의 발상지이자 역사적인 공간 호텔 앨버트 Hotel Albert 또한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 윈슬로 호머, 에드워드 램슨 헨리, 프레데릭 처치와 같은 ‘허드슨 리버 스쿨’을 이끌었던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또한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이 최초로 설립되었을 때 그 첫 부지 또한 이곳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었다.
휘트니 미술관의 창시자 ‘거트 우드 밴더빌트 휘트니 Gertrude Vanderbilt Whitney’는 1914 년 8 웨스트 8번가 West 8th Street에 휘트니 미술관의 전신인 ‘휘트니 스튜디오 클럽 Whitney Studio Club’을 설립하여 젊은 예술가들이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시설로 운영했다.
이후 1931년 에 이르러서는 이 클럽을 휘트니 미국 미술관으로 확장, 발전시켜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현재 는 이 위치에서 이전한 상태이며, 마르셀 브로이어에 의해 맨해튼의 매디 슨가로 이전하였으며, 2015년 하이라인파크가 위치한 허드슨 강변의 갱스부르트가로 다시 이전했다)
*이미지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