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써 내려간 나의 미술사 ep. 9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남겨둔 어느 날 밤, 나는 시카고에 도착했다. 도시의 밤, 공항의 창 밖으로 희미한 눈발이 살포시 내려 앉고 있는 장면을 감상하는 것은 퍽이나 낭만적이었다. (물론 체감하기에는 살벌하게 추웠지만)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까워질 수록,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가득 찬 시카고의 번화가 밤풍경은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풍경이 온통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가득 차 거리 전체가 마치 하나의 크리스마스 트리 처럼 보일 정도였다. 고요한 화려함이라는 묘한 풍경을 자아낸다. (아마도 매해 그럴듯 한) 12월 중순의 미국 중서부 대도시 시카고 밤풍경이었다.
손꼽아 기다려 온 크리스마스 아침,
눈을 떠 보니 집은
마치 토네이도가 휩쓸고 간 듯 헤집어 져 있고,
사랑하는 가족들은 온데간데 보이지 않아.
크리스마스. 텅 빈 집에. 나.혼.자.
비행기 이륙 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출발하기 위해 케빈네 대가족은 좌충우돌 정신없는 아침을 보내다 결국 케빈을 확인하지 않은 채 이륙하는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그렇게 '시카고'를 떠났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날 가족과 떨어져 '홀로 보내게 된 케빈'은 두명의 악당(혹은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덤앤더머)과 함께 술래잡기를 하듯 좌충우돌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는데..
영화 <나홀로집에 1>의 배경이 된 시카고. 나에게 이 시카고라는 도시에 대한 첫 인상을 만들어준 이 유명한 크리스마스 영화로 인해, 마치 이미 이 도시의 크리스마스를 흠뻑 경험해 본 것 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드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난생 처음 방문 해 보는 낯선디 낯선 도시지만, 수십번 돌려 본 영화<나홀로집에> 덕에 이 도시는 마치 '내 마음 속 크리스마의 고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연말마다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기 시작했던 것이 2010년대 초반이었던 것 같은데, 최근 들어서는 한국의 크리스마스 시즌은 마치 성대한 '데이'의 왕좌를 '할로윈'에게 빼앗긴 듯, 예전에 비해 앙상하기 그지 없는 풍경이다.
이런 앙상한 크리스마스 풍경에 익숙해져가던 찰나, 크리스마스 시즌의 시카고는 마치 내가 봐왔던 수많은 미드와 영화 속으로 빨려들어온 것만 같은, 실감나고도 흥미로운 풍경이었다. “이게 바로 미국식 크리스마스”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시카고 번화가를 걸어다니다가, 어딘가에서 캐롤송이 들려와 음악을 따라가 보니 건물 로비에서는 청소년 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캐롤 공연이 한창이었다. 루돌프 분장을 귀엽게 한 10대 남녀 합창단원들이 율동과 화려한 대열 변형으로 퍼포먼스를 하는 광경을 보고 있으니 이 상황 또한 매우 '미국스럽게' 다가온다. 아마도 영화 <나홀로 집에>의 합창 공연 장면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카고에서의 첫날 아침, 나는 이른 시간부터 '밤'을 찾아 길을 나섰다.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 '잠 못 이루던', '뜬 눈으로 지새우던' '밤'이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고독한 뉴요커들의 어느 날 밤'이다.
이른 아침부터 그것도 시카고에서 '고독한 뉴요커의 밤'을 찾아 나선다는 말은 다소 엉뚱하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 그러했다. 그 밤을 보고자 이 머나먼 윈디 시티 Windy City 시카고까지 바람을 가르고 날아왔으니 말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대표작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보기 위해 나는 시카고 대표 뮤지엄, '아트 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 Art Institute of Chicago'를 향해 이른 아침부터 길을 나섰다. 뮤지엄에 가던 길에 밀레니엄 파크에 들러 아니쉬 카푸어 Anish Kapoor의 작품 <Cloud Gate, 2006>이 시카고 시청 광장의 피카소의 작품 <여인> 조각상을 이어 시카고를 대표하는 공공미술작품이 된 카푸어의 작품은 그 친근한 생김새로 인해 '시카고 빈 Chicago Bean'으로 종종 불뤼기도 한다.
내가 호퍼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불현듯 현관으로 가 문을 열어 젖혔다.
문이 열리자 어디서 흘러들어온지 모를
새파란 바닷물이 현관의 턱밑까지 차올랐다.
나는 그가 열어 둔 현관문 가까이로 성큼 성큼 걸어 가
현관 문턱에 자리를 잡고 걸터 앉는다.
문밖으로 가득 올라 온 새파란 파란 바닷물을 향해
조심스레 내 두 발을 담궈 본다.
눈 앞으로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가만히 그 풍경을 바라본다.
그때 갑자기
어디서 부터 비춰지는 지 모를 빛이 한쪽에서 쏟아진다
호퍼가 그린 '노란 빛'이다.
그 노르스름하게 길게 드리워지는 그 포근한 '노란 빛' 속으로
어서 빨리 달려들고 싶어지는,
호퍼가 그린 그 포근한 '노란 빛' 안에서
마음 속에 흩어져 있던 침전물이
차분히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H와 친하다는 말을 전해 들으신, 내가 아버지 처럼 따르던 학과 교수님의 반응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조합이람?! 하는 반응이었고, 충분히 이해가 갔다.
20살, 내가 초원을 이리 저리 달리며 들꽃 냄새를 맡고 언덕으로 미끄럼틀을 타고 다니던 광야의 말광량이 망아지였다면, H는 당장 내일 아침에 마더 테레사가 된다고 해도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그런 친구였다.
우리는 종종 서로가 좋아하는 음악과 미술 작품을 공유하기도 했다. 21살 어느 봄 날, H에게 메일 한 통이 왔다. 메일을 열어보니 현관문 밖으로 바다가 펼쳐진 뭔가 보고 있으면 머리가 새하예지는, 그런 충격을 주었던 작품이다. ‘바다’라는, 내 마음 깊은 곳에 닫아 놓두었던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향하는 문을 다시 활짝 열어주었던 작품이 바로 에드워드 호퍼(1882-1967, New York, USA)의 <Rooms by the Sea>이다.
에드워드 호퍼가 그린 빛과 바다, 현관문을 열면 곧장 푸른 바다가 보이는 초현실적인 구도. 1951년 에드워드 호퍼가 완성한 <Rooms by the Sea> 이 작품의 구도는 나를 추억으로 끌고가 그 순간의 감성에 푹 빠지게 했다.
바다가 잘 보이던 내가 살던 우리 집 거실은 내게 음악이라는 청각예술을 시각적으로 상상하며 보다 풍부한 감성 표현을 하기에,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춘 연습실이 되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거실에 나와 혼자 세 시간이건 네 시간이건 바이올린 연습에 몰두 했던 나. 그런 나의 시선은 언제나 베란다 밖으로 드넓게 펼쳐진 ‘오늘의 바다’를 향해있었다.
바다의 색은 결코 단 하나의 컬러로 정의할 수 없이, 매순간 빛에 따라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에는 샴페인 색이었다가 은빛이었다가 금빛이었다가 인디언핑크였다가 수천벌의 해군의 군복을 담근 듯 한 어두운 네이비로 변했다. (그럼에도 내가 봤던 집 앞 바다의 색은 대체적으로 호퍼가 채색한 바다처럼 청녹색 인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손잡이를 비틀어 문을 열면 금세 집 안으로 ‘왈칵’하고 쏟아질 듯 펼쳐지는 ‘바다’의 풍경의 묘사. 첫눈에 알아차리기 다소 어렵지만 곧 이런 구도의 풍경이 얼마나 낯선 것 인지 깨달을 수 있다.
바다와 하늘, 그리고 바깥의 대기감이 빛은 실내 공간의 창문을 따라 들어와 나른한 빛의 온기를 실내로 불러들이다. 오른쪽 끝에서부터 왼쪽으로 끝이 좁혀지며 늘어지는 모양의 창틀 그림자를 따라 실내로 들어온 바깥세상의 빛. ‘빛’과 ‘대기’에 대한 묘사는 그의 모든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호퍼만의 화면을 구성하는 특별한 요소로, 보는 이로 하여금 여유롭고 나른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익숙한 봄날의 대기감과 같이 친근하게 느껴지다가도 동시에 풍경이 마치 진공상태에 가두어 버린 듯, 작품 <Rooms by the Sea>의 화면 속 풍경은 마치 풍경이 현실세계의 모든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차단된 듯한 단절감을 느끼게 하여 그만의 환상적인 작품 분위기를 완성한다. 그래서인지 호퍼가 묘사하는 ‘일상’은 어찌 보면 그리 특별할 것 없이 무미건조한 풍경이지만 동시에 더없이 신비롭고 초월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작품을 통해 처음 에드워드 호퍼를 접했던 내 20살의 봄날 이후, 나는 호퍼에 대한 짝사랑하는 마음을 품은 채 호퍼의 작품들을 살펴보고 그의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면서 호퍼의 작품을 실제로 보는 순간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정확히 10년 후, 나는 그 꿈을 이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