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작가 코다맘 위소, 소민지 인터뷰
소민지가 자신의 언어를 찾아낸 건 스무 살이 넘어서였다. 그 언어로 보낸 대학 시절을 만화책 한 권에 담았고, 엄마가 된 지금은 청인 아들 둘과의 하루를 그림으로 기록한다. 그는 만화로 자신의 세계를 풀어내며, 불통이라 여겨져 온 장면마다 작은 틈을 남긴다. 그 틈으로 스며드는 것은 연민도, 특별함도 아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함께 웃고 함께 당황하며 함께 하루를 넘기는 일상이다. 사람으로, 사랑으로 소통하는 시간들이다.
그의 만화는 단 한 사람이라도 농인을 다르게 보게 만든다면 충분하다는 마음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그 마음 한편에는 아이들이 자라며 마주하게 될 세상에 대한 걱정과 바람이 자리한다. 불분명한 출처의 틀에 맞추느라 부모와 아이가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그는 만화로 그 틀을 살짝 비틀어 아이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잃지 않게 한다. 그의 이야기는 결국 같이 살아간다는 감각을 복원하는, 한 엄마의 꾸준한 러브레터이기도 하다. 그 편지의 뒷이야기를 듣기 위해 우리는 성수에서 소민지와 만났다.
1.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위소라는 작가명에 담긴 의미를 함께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농부모로서 청인 자녀, 즉 코다를 키우는 에피소드를 그리는 인스타툰 작가 위소라고 합니다. 위소는 두 아들의 이름으로부터 만들어졌어요. 첫째와 둘째의 이름 속 모음 'ㅜ'와 'ㅣ'를 합쳐 '위'라는 단어가 생겨났고요. 여기에 제 성 씨인 '소'를 합쳐서 위소라는 이름을 만들게 됐어요. 만들고 나니 우리라는 뜻의 ‘we’로도 쓸 수 있겠더라고요.
2. 저희가 사실 <수어가 나에게 괜찮다고 말했다>를 읽으면서 작가 위소의 본명이 정수현이라고 혼동을 했었어요. 그만큼 주인공 정수현의 이야기가 마음에 많이 와닿았던 것 같아요. 수현은 실제 민지 님과 주위 분들의 에피소드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셨는데 수현과 민지 님의 닮은 점, 혹은 차이점이 있으신가요? 혹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 있나요?
수현은 저의 이야기와 친구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에요. 수능 일화는 다른 친구의 이야기를 써도 되느냐 물어보고 썼어요. 장애 학생 도우미 이야기도 다른 친구 이야기와 제 이야기를 적절히 섞어서 담았고요. 제가 정수현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저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농인이 겪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제 친구가 그 책을 보고 울었어요. 그 친구 완전 T거든요. 100% T인데, “왜 본인의 이름을 넣지 않고 정수현이라는 이름을 넣었는지 알 거 같다”, “모두의 이야기기 때문에 공감을 많이 했다”면서 많이 울었어요.
반면에 완전 농인으로만 살았던 분들은 어렸을 때부터 당연시 겪던 이야기들이다 보니까 “이미 다 아는 걸 뭐 하러 만드느냐”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반면에 수어 대신 구화를 사용하시던 분의 입장에서 보면, 늘 청인 사회에 있었기 때문에 책을 보며 “내 얘기 같다. 너무 공감된다” 하시고요. 같은 이야기라도 겪어온 환경과 소통 방식에 따라 받아들이는 무게가 다르더라고요.
3. <수어가 나에게 괜찮다고 말했다>에서 주인공 정수현이 수어라는 자신만의 언어를 찾은 후 꿈을 갖고 나아가는데요. 수현이를 보고 사람에게 언어는 타인뿐 아니라 스스로와의 소통을 열어주어 '나'를 찾게 해주는 감각이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민지 님도 수어를 통해 스스로와 소통하는 경험이 혹시 있으셨나요?
저는 구화로 계속 컸거든요. 22살에 수어를 배웠어요. 말을 하면 사람들이 저를 보잖아요. 그 시선들이 좋지는 않았어요. 저는 스스로 항상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열심히 해도 안 될 사람이구나 낙인을 찍었어요. 다들 한창 웃고 있는데 저는 무슨 말인 줄 모르니까 답답했지요. 그런데 수어를 배우고 나서는 농인들끼리 있을 때는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지 눈으로 다 보이니까 편해지고, 나에 대해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서서히 옅어졌어요. 수어를 배우기 전에는 저를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는데, 수어를 배운 이후에는 저를 돌아볼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조금 웃긴 게요. 수어도 스무 살 넘어서 배운 거기 때문에 저는 아직도 말이 더 편해요. 근데 청각장애가 있기 때문에 듣는 것은 평생 어려운 거예요. 두 언어를 써 본 사람의 입장으로는, 책에 쓴 것처럼 소통 방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서로가 교감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같은 한국어를 써도 소통이 되지 않아서 싸우기도 하잖아요. 소통 방식보다 소통할 수 있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4. 인스타툰 <그래서, 코다맘>은 농부모와 코다 자녀의 일상을 보여주는 기록이잖아요. 일상을 관찰하고 생생하게 만화로 표현하시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야기를 계속 꺼내는 원동력은 어디서 오나요?
그냥 자연스럽게 나와요. 이틀 전만 해도 아들이 “엄마, 팽이 실화시켜 줄게”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실화가 뭐야?”라고 되물었는데 알고 보니 “진화시켜 줄게” 였어요. 자연스럽게 그런 일화들이 계속 나와요. 아이디어들은 계속 나오는데, 그릴 시간이 없죠. ‘그려야지’ 하다가 포기하는 것도 많아요. 농부모가 청인 자녀를 키울 때 항상 좋은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제가 원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가해자가 되기도 해요. 원하지 않는 사건이 생기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들은 그리지 않아요.
5. 만화라는 매체로 민지 님의 감각과 이야기를 잘 전달하시는 거 같아요. 만화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민지 님의 감각과 세계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이 매체가 가진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그리고 글을 올리면 사람들이 잘 안 읽지만, 만화는 부담 없이 잘 보잖아요. 제 인스타툰에 업로드된 ‘안경에 자막이 나오는 거 아세요?’ 일화는 35만 명이 봤어요. 굉장히 많이 보는 거잖아요. 그래서 계속 만화를 그리게 되는 것 같아요.
(만화도 수어도 시각적인 언어로 풀어내는 이야기라 굉장히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그리고 그림 잘 그리시는 농인들이 많아요. 근데 계속 열심히 그려야 하는데, 하다가 접고… 계속하는 게 제일 힘들어요. 저도 지금 그린 지 5년이 됐지만, 6개월에 하나 올린 적도 있고요.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거죠. (웃음)
6. ‘벽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다리가 된다’는 말이 너무 인상 깊었어요. 인스타툰이나 만화 말고도 다른 다리를 놓아야겠다! 하는 목표가 있으신가요?
저는 처음엔 농인, 청각장애인 소재를 그리기 싫었어요. 장애를 제외하고 청인과 동등하게 경쟁하고 싶었거든요. 근데 농인 관련 웹툰이 별로 없더라고요. 청각장애 웹툰이라고 올라오는 것도 수박겉핥기 식인 경우가 많고, 농인 당사자가 그리는 것이 더 와닿겠다 싶어 그리게 됐어요.
농부모의 청인자녀 양육기를 그려 올렸는데 주변에서 공감도 많이 해주시고, ‘어떻게 아기를 키우고 있느냐’며 연락도 해주시고, 비장애부모가 청각장애 자녀를 키우는데 이 만화를 보면서 ‘내 자녀가 이렇게 크겠구나’ 하는 분도 계셨고...
청각장애가 벽이었는데, 이걸 다리 삼아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에요. 지금은 그저 이 다리를 계속 탄탄하게 이어나가자는 생각이에요. 앞으로도 이 작업을 계속할 것 같아요.
7. 작업을 지속하면서 민지 님 자신에게 생긴 변화가 있을까요? 표현 방식, 감정의 결이나 삶을 바라보는 시선 등 어떤 점에서 변화가 있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옛날에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요. '그림을 가지고 먹고살 수 있을까?' 이런 질문도 스스로에게 많이 했고요. 그리다가 중간에 중단한 적도 있고요. 결국 돌고 돌아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됐는데 꾸준히 그리다 보니까 수입도 생기고, 사람들이 알아보기도 하고, 잘 봤다 얘기도 해주시더라고요. 내가 가고 있는 길이 틀리지 않았구나, 잘 가고 있구나 안도감이 들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정체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에 대한 정체성을 인지하고 있지 못하면, 내가 가진 청각장애를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잖아요. 결국, 이건 나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되는 거니까요. 시선이 바뀐 다음에 나 자신을 스스로 미워하지 않게 됐어요. 이게 가장 긍정적인 변화죠.
8. 책 속에서 수현이는 처음에 수어를 배우기 꺼려했잖아요. 또 수어를 배우고 나서도 ‘청각 장애인인데 어떻게 할 수 있어?’라는 마음을 가지기도 했고요. 자기 자신 안에 내재된 편견이나 위계가 민지 님께도 있었나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농인은 항상 뒷전이었죠. 기회가 잘 주어지지도 않았고요. 포기하는 것이 너무 잦았어요. 어쩌면 가스라이팅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계속 뒤에 있는 존재로 치부됐으니까요. 제 책을 보면 아시겠지만, 제가 대학을 입학하면서 매우 많은 농인을 만났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네가 해 봐, 계속해 봐” 이런 상황들이 생겼는데, 처음엔 그런 상황이 당황스럽고 익숙하지 않았지만, 점점 그런 분위기에 적응할 수 있었어요. 결국,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청인도 똑같지 않을까요? 외국에 나가서 살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없으니까 자유로울 수 있잖아요. 비슷한 거 같아요.
해외 얘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저는 사실 해외를 못 간다고 생각했었어요. ‘농인인데 의사소통을 어떻게 해, 해외는 평생 못 가겠다.’ 이런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해외를 가보니까 농인이 소통을 더 잘하더라고요? 바디랭귀지를 훨씬 잘하니까요. 그전까지는 저 스스로 한계를 만들었던 거죠. 제가 구화를 쓰면서 살다가 수어를 쓰면서 알게 된 게, 해외에는 세계농아인연맹/유소년캠프/청소년캠프/청년캠프 등 농인을 위한 다양한 단체와 행사들이 있더라고요. 외국에 사는 농인은 이미 어렸을 때부터 각종 행사와 캠프에 참여해서 세계적으로 교류를 많이 하기도 하고요. 농문화에 대한 시선이 트이니까 이런 방식으로도 살 수 있구나 생각했어요. 흔히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 말하죠. 내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고 있었구나 싶었고, 그런 농인들의 삶을 빨리 알았더라면 싶은 아쉬움도 있었죠.
9. 우리는 종종 어떤 감각이 표준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런 기준이 불통이나 위계를 만들기도 하잖아요. 민지 님은 그런 표준의 시선을 마주할 때 어떤 식으로 질문을 던지거나 균열을 내고 계신가요? 어떻게 보면 만화로 그런 틈을 만들고 계신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만화를 그리는 이유는 단 한 사람이라도 농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거든요. 사회를 개혁하고 인식을 개선하고, 막 이런 거창한 목표가 아니에요. 그림을 그리면서 그 틈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서 내가 생각했던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을 단 한 사람이라도 알고 농인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나마 바뀐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같네요.
10. 아이와 엄마 사이에 불통이 일어났을 때 어떤 감각이었는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냥 살아야죠. (웃음) 지금도 안타깝게 생각하는 게 있어요. 둘째 아들이 어렸을 때 목소리가 유독 작은 거예요. 그래서 자꾸 되묻곤 하다가 결국 둘째 아들을 데리고 직접 보청기 센터에 가서 아들 목소리 잘 들리게 제 보청기 소리 조율해 주세요.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목소리가 너무 커서 목소리 좀 낮추라고 해요. 목소리가 분명 작았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생각해 보니까 ‘아, 나 때문에 목청을 키우는 게 습관이 되었구나’ 싶더라고요. 보청기 소리를 조율해도 선명하게 들리지는 않아서… 음, 농부모를 둔 코다 자녀의 숙명이라 생각해야죠.
11. 편견은 구조적인 문제라고 하신 인터뷰를 봤고 깊이 공감합니다. 민지 님이 만화를 그리는 미션도 '농난청인 부모의 육아 경험 제공 및 농난청인 부모 편견 개선'이라고 하셨는데요. 편견이라는 불통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10년 전만 해도 아이를 키울 때 농인 관련 육아 전문가가 잘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과거만 하더라도 ‘그럼 난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고, 아이와 말이 안 통하면 어떡해야 하지?’ 같은 걱정을 갖고 계신 농인 부모들이 많았어요. 저 역시 그랬고요. 주변에 알음알음 물어 찾아간 전문가가 말씀하시길, ‘부모가 자녀와 가장 잘 소통할 수 있는 언어로 가르쳐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수어를 쓰는 농부모면 아이에게 수어를, 구화를 사용하는 농부모면 아이에게 음성언어를 사용하면 되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부모’와 ‘자녀’의 직접적인 소통이 잘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 예시로 수어를 사용하는 농부모는 아이가 청인이니까 음성언어로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빨리 보내거나,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시댁이나 친정에 보내거나, 언어 치료실에 보내는 등 청인 기준의 소통을 하도록 해요. 그런데 이건 부모와 소통하는 게 아니다 보니 결국 나중에 가서는 부모님이랑 소통이 잘 안 되는 거예요. 사회 구조와 생각들에 맞추려고 노력하다 보니 반대로 개인적인 소통이 안 되는 게 참 아이러니해요. 그저, 소통에 대해 열려 있는 태도가 제일 중요하다 생각이 들어요.
12. 혹시 민지 님에게 ‘불통이었기에 가능한 변화’나 ‘불통이 주는 창작의 동력’ 같은 전환점이 되는 경험이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사람마다 입장의 차이가 있음을 인지하고, 그냥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예를 들어 볼게요. 이비인후과의 의사나 간호사들은 대부분 농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의사랑 간호사들은 소통이 안 되면 목소리만 키우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마스크를 잠깐 내려달라, 글로 써달라’ 요청을 하는데요, 마지못해 인상을 쓰고 써주시더라고요. 그런데 그 당시에 제 옆에서 난청 어르신도 못 알아들으셨거든요. 그런데 간호사가 목소리 높이니까 오히려 난청인 어르신의 표정이 밝아지더라고요. 그걸 본 저는 깨달았죠. 이 분에게는 간호사의 큰 목소리가 오히려 ‘친절’이었구나! ‘간호사 입장에선 오히려 난청 어르신을 더 많이 만나봤겠다, 그래서 목소리를 높이면 소통이 되니까 나에게도 목소리를 높이려고만 했던 거구나.’ 상대를 더 이해하려고 하는 거 같아요. 입장 차이에 대한 이해요.
2025년 현재는 우리 사회에 농인을 위한 서비스가 많이 늘어났어요. 15년 전만 해도 운전면허를 못 땄는데 지금은 딸 수 있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시험장에 갔는데 등록을 거절당했어요. 농인은 운전할 때, 특히 운전 연수할 때 위험하니 가르칠 수 없다고요. 그런데 지금은 농인을 위한 운전연수도 있어요. 비슷한 서비스도 있고요. 예전에는 수어통역센터도 숫자가 굉장히 적었는데 지금은 센터도 늘어났고, 손말이음센터처럼 중개서비스도 생겼어요. 앱으로 자막이 나오기도 하고, 생활이 아주 편해졌죠. 특강이나 수업, 강연을 들을 때 저번에 인터뷰하셨던 에이유디 (aud) 통해서 문자통역도 받을 수 있고요. 솔직히 코로나 이후로 청각장애인의 삶이 굉장히 변했다고 느껴요. 그전까지는 자막 서비스가 거의 전혀 없다 싶었는데 코로나 이후로 청각장애인들이 목소리를 많이 냈나 봐요.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수어 통역사와 자막 서비스가 필수로 있어야 한다’고요. 요즘은 카페 가서 필담으로 요청하면 바로 필담으로 답을 해주세요. 예전엔 필담해 달라 해도 말을 하던 경우가 많았는데… 뭔가 인식 개선이 조금 됐다고 할까요. 완농으로 자란 분들은 또 그렇지만은 않다고 하시지만요.
(모두가 불편하다고 하는 상황이 생겨야만, 액션이 생기는 게 좋다고 해야 할지... 참 아이러니하다고 느껴지네요)
코로나 전에는 그냥 불편해도 개인 문제라고 생각했죠. 코로나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마스크를 쓰다 보니까 모두가 소통하기 힘들어졌잖아요. 아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 아들과도 마스크를 계속 여닫으면서 대화하기도 했고요. 코로나 처음 시작됐을 때 너무 답답해서 모든 자막 앱을 다 다운 받아봤어요. 그땐 정확한 자막이 안 나오고 엉터리로 나오는 앱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정말 정확해졌죠.. AI도 발전하고, 여러모로 많이 좋아졌어요. 이런 변화들을 겪으면서, 불통이 변화를 만드는 동력이 될 수도 있구나 실감하게 됐어요.
13. 민지 님의 작품을 보면서 끊임없이 타인과 소통하는 길을 트는 모습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민지 님이 생각하는 진정한 소통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가장 잘 통했던 순간'도 궁금해요.
유퀴즈에 시각장애인(월가 애널리스트 신순규)이 나온 적이 있어요. “중요한 건 ‘아 그럴 수도 있겠다’ 같이 일하자는 한 사람만 나오면 되는 거잖아요.” 하셨는데, 저도 소통할 때 딱 한 사람만 나오면 돼요. 그 사람이 청인일 수도 있고 수어통역사일 수도 있고요. 어떤 사람이든 딱 한 사람만 있으면 돼요. 그리고 저희 남편도 청인인데 저를 위해 수어도 배우고 속기도 배웠어요. 저랑 같이 다니면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함께 해주었죠. 이렇게 보니, 결국 사람 관계 문제인 것 같아요. 혼자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지금도 아들 덕분에 그림 그리는 일을 하고 있고요. 연애도 상대방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거고. (웃음) 소통은 결국 사람인 거 같아요. 쉽게 보면 문자 통역을 받아도 한 사람이 문자 통역을 “해야겠다” 결정한 덕분에 서비스를 받는 거잖아요. 한 사람이 소통이 되기도, 불통이 되기도 하는 거죠.
14. <수어가 나에게 괜찮다고 말했다>에서 마서스비니어드 섬처럼, 소수자가 소수자가 되지 않는 공간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이 책이 전해주는 것 같았어요.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어떤 가능성을 상상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세요?
그냥 이런 삶도 있다. 딱 그 정도. 그거 하나면 되는 거 같아요. 왜냐면 책을 읽는다고 인생이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읽고 덮으면 사실 끝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이런 삶도 있구나 그 정도만 느낄 수 있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나중에 농인을 만났을 때 예전에 읽었던 이야기들을 생각하면서 동등한 입장으로 만나는 자세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15. <그래서, 코다맘>을 보면 생생한 육아일기를 보는 것 같아요. 아이들과 엄마 사이의 소통방식을 맞춰가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불통과 소통을 반복하며 단련된 민지 님 가족만의 소통 방식이 있나요?
규칙은 없어요. 규칙이라는 건 아이가 자라면서 계속 바뀌기도 해요. 제 남편이 저를 부를 때 가까이 있으면 보통 어깨를 두드리고 멀리 있을 때는 박수를 쳤거든요. 제가 보청기를 뺀 상태여도 남편의 박수 소리를 들으면 제가 돌아보더라고요. 주파수가 맞나 봐요. 남편이 다른 농인에게도 박수를 쳐봤는데, 다른 농인들은 돌아보지 않더래요. 근데 지금은 아들이 엄마를 박수로 부를까 봐 남편이 저를 박수로 안 부른다네요.(웃음)
만화 중에 그네 일화는 첫째 이야기거든요. 뒤에서 "세게 밀어줘?" 하는데, 첫째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거든요. 이걸 잘 배웠어요. 그런데 희한하게 둘째는 가르쳐줘도 안 되더라고요? 아무리 가르쳐도 안 돼요(웃음). 둘째는 세게 밀어 달라는 걸 수어로 표현하기 위해 그네를 잡은 한 손을 그대로 놓는 바람에 그네에서 고꾸라진 적도 있어요. 이것도 그려볼까 하다가 못 그렸네요. 언젠간 그려봐야죠.
16. 교회에서 경험한 작은 환대(간단한 수어 인사 등)가 인상 깊었다고 하셨어요. 그런 작은 변화들이 더 많이 일어나려면 어떤 계기들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제가 우연히 가게 된 교회의 사모님이 수어통역사이셔서, 언제 올지 모르는 농인을 위해 청인 성도들에게 수어교실을 열어 농문화와 수어를 가르치셨어요. 그렇게 준비된 상황에서 제가 그 교회에 가서는 정말 놀랍게도 편안했던 경험이 있어요. 단 한 사람의 행동이 불러온 작은 변화가 저에게는 큰 변화처럼 느껴졌었죠.
청인의 입장에서는 그냥 보통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교회에서 만나신 분들도 "안녕하세요"랑 지문자 정도만 하시는 분이었어요. 청인들만 있을 때 대화를 하게 되면 저는 음성 인식 앱을 켜거든요. 근데 이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오 이런 것도 있네 신기하다' 정도로만 생각하면서 다들 자연스럽게 행동해 주시니까 편하더라고요.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메모를 건네어 주시는 정도의 작은 배려만 해주셔도 충분한 거 같아요. 너무 많은 배려보다는 평소처럼 해주시면 감사할 거 같아요.
(청인들은 과하게 배려하거나, 내가 뭘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책 속 조별 발표 일화처럼, ‘그냥 네가 한번 해봐’ 이런 태도면 좋을 거 같아요. 해보니까 좋은 경험이었어요. 과한 배려… 농인에게 많이 배려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안 좋은 것 같아요. 뭐든 적당히가 좋지 않을까요?
17. 민지 님의 책과 인스타툰에 많은 농난청인 독자분들이 깊은 위로와 환대를 경험하신 거 같습니다. 그런 독자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어떤 말일까요? 혹은 민지 님이 생각하기에 가장 공감받았다고 느꼈던 피드백이 있다면요?
제일 기억에 남는 건, 5년 전에 달린 댓글이에요. 공감받았다는 피드백은 아니고요. 처음 인스타툰을 올렸을 때 ‘특별하고 아름다운 가족이었군요!’라는 댓글을 봤는데, '우리가 특별해? 아름다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남편한테 바로 물어봤는데 남편이 "음… 우리는 평범한 거지, 아름답진 않잖아."라고 하더라고요. 우리 가족은 그저 수어를 쓰는 건데, 왜 아름답다고 하는 건지... 기분이 이상했어요. 5년 전인데도 기억나는 거 보니까 그 묘한 기분이 강렬했던 것 같네요. 그 외에는 대부분 공감해 주는 댓글들인 것 같아요. 저희는 그냥 평범한 가족이에요. 아이가 말 안 들으면 혼내기도 하고요, 보통의 평범한 가족과 다를 바 없어요. 아, 그런데 인스타툰에는 재밌는 이야기만 그리려고 노력해요. 부정적이거나 힘든 이야기들은 잘 안 담으려 하고요. 제 만화를 저의 부모님도 보시기 때문에, 적당히 조절하려 하고 있어요. 우울하면 보는 사람이 줄어들 걸요? 이미 살기 힘든 사회인데, 만화라도 재밌어야죠. 하하.
18. ‘우리는 모두 달 아래 살아간다’는 문장처럼, 저마다 다른 조건과 감각으로 살아가지만, 그래도 우리가 함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아요. 민지 님께서는 ‘나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가장 선명하게 느꼈던 순간이 있으신가요?
소통은 결국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이번 답도 똑같은 거 같아요. 단 한 사람 때문에 살아가는구나 싶고, 함께 있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을 때가 있는 것처럼요. 거창한 질문과 대답이 아니더라도, 오늘 인터뷰에서 해주신 말씀들이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미 다 해주신 것 같아요.
아뜨달은 인터뷰를 마치고 잠시 서울을 떠나 부산에서 모였다. 편집을 위해 넘겨줘야 하는 파일 위로 ‘벽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다리가 된다’는 그의 문장이 오래 머물렀다. 그 말을 여러 번 곱씹었을 즈음, 국내 유일의 도개교인 영도대교를 지나게 됐다. 15분 동안만 도개 하는 그 다리를 지나며, 잠깐의 벽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등 돌리고, 또 등돌림 당해왔는지 헤아렸다.
통역이 들려오기도 전에 그녀의 눈빛에서 먼저 읽어낸 이야기들이 영도 바다 위로 다시 떠올랐다. 수어로 자신을 다시 발견한 삶, 청인 자녀를 키우는 엄마의 삶, 그리고 특별할 것 없는, 그저 함께 사는 삶. 우리는 다르게 살아가지만, 같이 살아간다. 영도대교가 두 편의 육지를 잇듯, 그녀의 손끝이 만든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불통이라 부르던 벽 너머로 함께 발을 옮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Interviewee 소민지
Interview 배정아
Research 엄나영
Edit 엄나영
Photography 김윤이, 배정아
Design 김윤이
KSL Interpretation 백수진
© 2025 arttdal. 김윤이, 배정아, 엄나영
우리는 분명 듣고 있는데, 왜 서로에게 닿지 못할까.
〈우리는 모두 달 아래 살아가〉는 아뜨달의 인터뷰 시리즈로, 모두가 같은 달 아래 존재함에도 감각의 위계와 소통의 불균형이 지속되는 현실을 은유합니다. 우리는 ‘불통’을 감각의 부재가 아닌 내면에 자리한 위계의 문제로 바라보며, 그 간극을 드러내고 해체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