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플래닛 대표 최인혜 인터뷰
최인혜는 완벽한 자막과 완벽한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불완전한 지점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가능성을 일찍이 알아본 사람이다. 자막이라는 감각적 기술을 통해, 문화예술의 경계 밖에 머물던 이들에게 함께 본다는 것의 의미를 알려주는 사람이다. 자막은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다시 설명하는 언어이기도 하다. 무대 위와 아래를 잇는 이 매개체가 지금보다 더 많은 감각을 품게 된다면, 공연은 어떤 얼굴을 갖게 될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만들어진 것들이 누군가에겐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그건 내게 늘 손톱 밑에 박힌 가시 같았다. 원래 말을 하기 위해 존재했던 것들을 진짜로 말하게 하는 기술, 당연한 기술을 당연하다고 말하기 위해 그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을지 궁금했다. 말하지 않던 것들이 말하게 됐을 때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언어와 삶을 가질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묻기 위해 우리는 신촌에서 최인혜를 만났다.
1.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오롯플래닛을 운영하고 있는 최인혜입니다. 오롯플래닛은 농난청인의 문화소외를 해결하자는 미션으로 배리어프리 자막을 제작하고, 그 외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어요. 2019년부터 팀원 셋이 쭉 같이 하고 있어서, 아뜨달을 보면서 저희 팀 생각이 많이 났어요.
2. 소수자의 이야기를 많이 담아내는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여전히 비장애인 중심으로 소비된다는 현실에서 오롯플래닛을 시작하게 되셨잖아요. 그런 비판적 발견이 하나의 계기였다면, 반대로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가진 힘은 지금의 오롯플래닛 방향성과 어떤 방식으로 맞닿아 있다고 느끼시나요?
콘텐츠를 즐기는 일은 제게 정말 중요해요. 예전엔 밥을 굶고서라도 뮤지컬을 보러 다녔을 정도였거든요. 그만큼 제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데, 이를 선택할 기회조차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괜히 억울하게 느껴졌어요. 그 억울함을 없애는 일이 오롯의 시초였던 것 같아요.
처음엔 사회복지를 전공하면 그 억울함을 해소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학교에 들어가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인액터스 '오롯'이라는 동아리에서 영화 자막 작업 활동부터 시작하게 됐고요. 이후에 '오롯영화를읽는사람들'로 창업해서, 지금의 '오롯플래닛'까지도 영화 자막 작업을 꾸준히 이어 왔어요. 지금 뮤지컬 자막 작업을 위주로 활동하고 있는 건 제 개인적인 사심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시대적 흐름이 작용한 게 가장 큰 것 같아요. 코로나 이후로 뮤지컬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했고, 대중 콘텐츠로서도 입지가 커지고 있다고 느꼈거든요. 그러면 농난청인의 수요도 분명히 늘어날 거라고 생각했고, 그 접점에서 오롯이 해야 할 역할이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3. 비장애인, 즉 비당사자로서의 실천은 늘 경계와 책임이 따르는 일입니다. 대표님은 어떤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이 길을 걸어오셨나요? 비장애인이 배리어프리나 자막 영역에서 중심이 되지 않고, 함께 나란히 서기 위해 어떤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비당사자로만 이루어진 그룹이다 보니까 그런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학교에서 공부하거나 다른 활동을 하면서도 좋지 않은 사례들을 많이 봤거든요. 소수자의 지위를 ‘차용’해서 상업적으로 이용한다거나, 결국 그 지위를 통해 무언가를 ‘얻는’ 쪽으로 흘러버리는 걸 보면서, ‘저렇게 되지 않으려면 진짜 많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어요. 영화 자막 서비스를 처음 시작할 때는 당사자 지인이 없었어요. 단순히 ‘자막 올리면 되지 않을까?’ 싶었고, 첫 상영회를 열 때는 솔직히 칭찬을 기대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농난청인 관객분들께서 피드백을 정말 많이 주시더라고요. “자막이 지저분하다”,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는” 이야기들이 많았고, 처음엔 좀 충격이었어요. ‘아, 이건 완전히 내 시선에서만 하고 있었구나.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었던 거구나.’ 그때 좀 크게 깨달았죠. 이후에 복지관에서 한 달 정도 실습을 했어요. 졸업 요건이기도 했고, 그 시간을 통해 농문화, 수어, 그리고 농난청인의 삶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게 됐어요. 또래 지인들도 생기면서 제 감각이 확장됐던 것 같아요.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수집하는 것,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이고, 동시에 어떤 문제를 방지하는 방식이라고도 느꼈어요.
인터뷰나 언론에서는 제가 사회복지를 전공한 젊은 여성이다 보니, 꼭 숭고한 미션을 지닌 사람처럼 보이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웃음) 물론 그게 좋게 작용할 때도 있지만, 사실 저는 사회에 대한 불만이 굉장히 많은 사람일 뿐이에요. 저는 콘텐츠를 즐기는 것 자체가 너무 중요했기 때문에, ‘왜 문화예술을 누릴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거지? 왜 개인의 문제로만 여겨지는 거지?’라는 사회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이 컸던 거죠. 그래서 비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싸운다’는 느낌으로 여기까지 왔고, 그 덕분에 실천 자체에 큰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어떤 작업들은 청인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하잖아요. 저는 그냥 그 역할이 저에게 주어진 거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어요. 또 개인적으로는, 나중에 제가 청력을 잃게 된다면 제가 좋아하는 콘텐츠들을 어떻게 향유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지금 제가 하는 일이 마치 연금저축처럼, 언젠가의 나를 위한 준비일 수도 있다는 마음도 있어요. 그래서 결국 제가 던졌던 질문은 “이건 내 시선인가?”, “누구와 함께 하고 있나?”, “이 감각의 결핍이 누군가에게 어떤 식으로 삶을 바꾸고 있는가?” 같은 것들이었던 것 같아요.
4. 앞서 피드백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언급해 주셨는데요.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다면 좀 더 들려주세요.
처음엔 자막에 효과음이나 말투 같은 것도 전부 표기했어요. 예를 들면 (친절한 목소리로), (화난 목소리로) 같은 식으로요. 저는 말의 톤이나 감정을 자막으로 전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너무 지저분하고, 오히려 이해하기 어렵다”. “배우의 표정이나 연기만 봐도 감정은 충분히 전달된다”는 피드백이 있었던 거죠. 저는 120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 그때 처음으로 80 정도만 보여줘도 되는구나, 자막은 보조적인 도구로도 충분할 수 있겠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이후엔 워크숍도 진행하면서 자막에 대한 다양한 피드백을 받았어요. 그러면 뭔가 정답이 하나쯤 나올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너무 다양해서 놀랐어요. 청각장애 안에서도 스펙트럼이 넓잖아요. 예를 들면 구화를 중심으로 소통하시는 분들은 “자막은 보조적인 거니까 최소한의 역할만 하면 된다”라고 하시고, 농인 분들은 “문해력이 낮은 분들도 고려해서 주석이나 언어 설명까지 자막에 포함되어야 한다”라고 하시고요. 그런데 또 다른 분은 “그건 자막이 아니라 학습 자료처럼 느껴진다”며 반대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모든 걸 하나로 통일할 수는 없겠구나 깨닫고 그때그때 맥락에 따라, 콘텐츠와 관객에 따라 유연하게 맞춰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5. 한국어와 한국 수어의 문장 구조와 단어가 다르기 때문에 청각장애인 품질 관리 매니저가 계시다 들었습니다. 매니저님이 하시는 일과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궁금합니다.
지금은 따로 매니저를 두고 있지 않지만, 한동안 청각장애인 매니저 분과 함께 자막 감수를 진행한 적이 있었어요. 청인이 제작한 자막을 1차로 만들고 나면, 그걸 감수하면서 불필요한 단어나 어색한 표현, 너무 어려운 문장들을 골라내 주셨죠. 예를 들어, 대사는 발화 그대로 들어가야 하긴 하지만, 효과음 표현 같은 경우엔 너무 직역되지 않도록, 수어로 받아들일 수 있는 흐름이나 감정선에 맞춰 표현을 바꾸기도 했어요. 그런데 몇 번 같이 작업을 해보니, 감수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르더라고요. 문장의 스타일이나 중요하게 보는 기준이 제각각이라 어떤 한 분과 오래 작업을 이어가기는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결국 자주 반복된 피드백을 모아서 내부 지침서를 만들었고, 지금은 그 기준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 품질관리를 자체적으로 하고 있어요.
피드백 중에 기억에 남는 건, 청인의 시선에서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단어들이 실제로는 전달이 어렵거나, 오히려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었어요. 예를 들어, 사전적으로는 존재하는 단어지만 일상적으로는 잘 활용하지 않아서, 관객의 이해가 어려운 사례가 많았거든요. 그런 점들을 통해 ‘이건 언어의 번역이 아니라 감각의 번역’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6. 지금 그래도 접근성 관심이 훨씬 높아졌고, 자막봉사 하시는 분들도 예전이랑 비교했을 때, 정량적으로 변화했다고 체감하신 적 있으신가요?
지금은 개인 봉사자는 따로 받고 있진 않고요, 기업과 협력해서 사내 봉사의 일환으로 임직원 분들과 함께 자막 봉사를 진행하고 있어요. 5분 정도 분량의 자막 제작을 체험해 보시는데요, 짧은 시간이지만 그 안에서 느끼는 게 꽤 크신 것 같아요. 처음엔 “자막은 그냥 들리는 대로 쓰면 되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씀하시지만, 막상 작업을 시작하면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일이라는 걸 느끼세요. 그 과정을 통해 농난청인이 처한 현실을 조금 더 가까이 체감하게 되시는 분들도 많고요.
예전엔 저희 내부에서도 ‘이걸 꼭 창업까지 하면서 유지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배리어프리 영역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복잡하니까요. 저희 세 명이서 이걸 다 해내기엔 벅차다는 무력감도 있었고요. 그런데 봉사자 분들이 이 경험을 통해 자신의 일터나 일상에서 다시 실천으로 이어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 우리가 다 해결하지 않아도, 사회 곳곳에서 스스로 확산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봉사자 분들을 만날 때도, 무슨 다단계처럼…(웃음) 지금 이 경험을 사회에 가져가서, 본인의 자리에서 실천해 달라고 꼭 말씀드려요. 자막 작업이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감각의 장벽을 허무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걸 계속 전달하고 있는 거죠.
7. 오롯플래닛의 배리어프리 자막 워크숍은 직접 경험을 통해 ‘필요함’을 체화하게 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22년도에 참가해 상영회까지 함께했던 경험자 입장에서, 그 과정은 단순한 교육이 아닌 감각을 ‘다르게 구성해 보는 실험’처럼 느껴졌어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참가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윤이 님처럼 직접 체험하신 분들이 결국은 그 경험을 각자의 일에 연결시켜 나가는 걸 보면, 확실히 변화가 쌓인다는 걸 느껴요. 사실 초반 1~2년에는 ‘이분들이 이걸 배우고 나서 어디서 뭘 하고 계실까?’까지 생각하지 못했는데, 요즘엔 그분들의 직업이나 관심사 속에 무언가가 스며들어 있다는 걸 종종 발견하게 돼요. 브이로그를 찍으시면서 자막을 직접 달아보겠다고 하시거나, 창작자 분들이 본인의 콘텐츠에서 접근성을 고민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요. 사실 배리어프리를 모두 외주나 전문 기관에 맡기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고, 또 그렇게만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가능하다면 스스로 조금씩 실천해 볼 수 있는 감각을 기르는 것, 그게 훨씬 빠르고 지속가능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강의 백 번 듣는 것보다 자막 작업 한 번 해보는 게 훨씬 강렬한 체험이더라고요. 강의 후 그룹 토크 시간에는 보통 말씀이 조심스럽고 적은 편인데, 자막 제작 체험을 하고 나면 “이거 너무 어렵다”, “불편하다”, “이래서 필요한 거였구나” 같은 피드백이 바로 나와요. 그게 진짜 ‘느껴지는 지점’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궁금하면 직접 해보세요’,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면 일단 손을 한번 움직여보세요’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배리어프리는 결국 누군가의 삶의 방식에 대한 존중인데, 그걸 한 번이라도 내 몸을 써서 감각해 보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그걸 한 번쯤은 경험해 보셨으면 해요.
8. 듣는 책, 읽는 영화처럼 문화예술을 감상하는 방식의 다양성이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이 슬슬 체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흐름이 오롯플래닛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고, 반대로 오롯플래닛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예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자막이나 음성해설 같은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자막을 만드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사용자로서도 그 편리함을 실감하고 있어요. 머리 말릴 때, 설거지할 때 자막 없으면 콘텐츠 감상이 불편하다는 걸 진짜 체감하게 되더라고요. 자막이라는 게 이제는 특정한 사람들만을 위한 게 아니라는 흐름이 슬슬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요. 영화 같은 경우엔 이미 자막이 존재하는 콘텐츠였고, 저희는 그걸 어떻게 더 잘 전달하고 확산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면, 뮤지컬로 넘어오면서부터는 좀 다른 양상의 고민이 생겼어요. 말하자면 ‘감각을 새롭게 테스트하는 실험’ 같은 거였어요.
실제로 공연계 안에서도 기존의 뮤지컬 팬들이나 기획사, 관계자분들을 만나보면 자막에 대한 반응이 아주 긍정적이지만은 않아요. 아무래도 기존에 없던 프로세스이니까요. 자막 서비스가 내한 뮤지컬이나 국공립 공연처럼 특별한 경우엔 수용되지만, 일상적인 공연 서비스로 들어오려 하면, 어떤 분들은 공연 콘텐츠에 대한 배반이나 위반처럼 느끼시기도 해요. 공연은 즉흥성과 현장성이 중요한 장르인데, 자막이라는 요소가 그걸 평평하게 만든다는 불안감을 갖고 계신 분들도 계세요. 그런 의견도 충분히 이해돼요. 저도 공연을 워낙 좋아해서 그 고민이 낯설지 않았고요.
하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막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막이 있든 없든, 어떤 감각으로도 공연을 온전히 즐기기 어려운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그래서 완벽하게 공연의 매력을 100% 자막으로 담아낼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겐 자막이 관람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통로라는 점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결국 오롯플래닛은 이 감각의 확장을 실험하면서도, 기존 질서와도 계속 대화하고 긴장하고 있는 팀이라고 생각해요. ‘이 방식이 절대적으로 맞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자막이라는 도구가 다양한 감각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또 하나의 선택지로 존재할 수 있게끔 길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아요.
9. 공연에서 자막은 즉흥성과 에너지를 평평하게 만든다는 우려도 있지만, 반대로 관객 입장에서는 흐름을 따라가거나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감각적 도구이기도 합니다. 대표님은 공연 콘텐츠와 자막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시나요?
사실 역할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창작자는 예술을 잘 완성시키는 사람이고 저는 시위하는 사람의 느낌이랄까요. 예전에 블랙박스 실험 공연장에서 배리어프리 운영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무대 감독님께서 무대 안에 통역사는 들어올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어요. 차별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그분 입장에선 이미 완성된 무대에 누군가가 들어오는 걸 침범처럼 느끼신 거죠. 창작자의 입장도 이해가 되어서, 단순히 옳고 그름으로만 판단할 수 없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공연을 여러 번 보는 이유도 그날의 호흡이나 분위기, 배우의 에너지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인데, 자막이 모든 걸 고정시키고 정형화해 버리면 오히려 그런 관람의 재미가 줄어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실제로 자막 작업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애드리브예요. 실시간으로 자막을 입력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시간상 불가능할 때가 많고 그래서 애드리브가 많은 공연은 솔직히 조금 꺼려지기도 해요. 모두가 함께 웃고 즐기기 위한 장면인데 자막이 없으면 거기서 또 다른 소외가 생기니까요. 지금 진행 중인 공연에서도 2~3분 정도의 애드리브가 있어서 그런 부분엔 주석을 써요. 예를 들면 ‘지금은 구애하는 장면입니다. 프랑스어로 느끼하게 시를 읊습니다.’ 같은 식으로 쓰거나 이모티콘이나 설명을 곁들여서 분위기를 유추하실 수 있도록 유도해요. 자막을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공연의 감각을 함께 구성하는 방식으로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누군가의 감각을 삭제하지 않으면서도, 공연의 생동감을 해치지 않는 절충안을 고민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고요.
이전에 에이유디 행사에서 가수 이랑 님 공연을 봤을 때가 생각나는데요. 이랑 님은 항상 공연에 문자통역을 함께 하세요. 말투도 조곤조곤하시고 느리게 흘러가는데, 스크린에는 대여섯 줄씩 길게 쌓여요. 그 순간을 찍어서 보니까 웹 접근성처럼 한 이미지 안에 텍스트가 고스란히 다 담겨 있는 게 너무 좋은 거예요. 이랑 님 사진을 찍었을 뿐인데 이랑 님께서 30초 동안 하신 말씀이 함께 남으니까 오히려 더 입체적으로 남는 느낌이었어요. 평평하지 않고요.
10.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것’을 선별하고, ‘전해야 하는 것’을 택하는 이 작업이 결국은 예술을 해석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작업이 인혜 님께 어떤 감각의 확장을 가져왔는지 궁금합니다.
영화 자막 작업할 때는 주관성을 최대한 배제하려 했어요. 영화는 시각적으로 제공되는 정보가 많고, 미적으로 설계된 장면도 많다 보니 굳이 창작자의 영역 너머까지 힘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주어진 텍스트 안에서 정보 제공만 추가로 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공연자막도 그렇게 시작했다가 점점 주관을 추가하고 있어요. 주로 형용사나 감성적인 문장을 추가하는 방향이에요. 국립극장이나 모두예술극장 등에서 하는 공공 영역의 공연들은 공연 하나하나의 완성도에 정말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까 자막의 퀄리티도 아주 높잖아요. 단어와 효과음을 굉장히 섬세하게 선별하셨더라고요. 예를 들면 저는 잔잔한 음악이라고 표현했을 부분을 ‘파도처럼 부서지는 음악’ 같은 주관적인 텍스트들로 구성하신 걸 보면서 자막으로도 그런 감각을 전달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공연은 영화처럼 화면 전환이나 클로즈업 같은 효과로 정보를 통제하거나 선별적으로 보낼 수가 없으니까, 자막으로 관객이 놓칠 수 있는 정보나 감정의 결을 선별해서 강조하거나 보조적으로 설명해 주면 오히려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11. 제작사의 저작권 허가에 있어 가장 많은 어려움을 겪고 계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버거웠던 경험이나, 기억에 남는 협상의 순간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그 안에서 어떤 태도를 지켜내고자 하셨는지도요.
창업 초기에 왓챠와 협업해 영화 100편에 배리어프리 자막을 제작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담당자분과 의기투합해서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막상 진행해 보니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구조더라고요. 배급사, 제작사, 감독, 기획사 등 각 주체마다 입장이 다르고, 서로 책임을 넘기는 상황이 반복됐어요. 말하자면 폭탄 돌리기처럼 느껴졌죠. 당시엔 OTT 플랫폼이 원저작자가 아닌 경우가 많아서 자막을 입히기 위해선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정작 그 당사자들은 자막에 대해 큰 관심도, 필요성에 대한 인식도 없었어요. "왜 굳이 자막을?"이라는 반응이 많았고, 이미 개봉한 지 오래된 영화에 자막을 다시 입히는 일을 번거롭게 여기는 경우도 있었어요. 결과적으로 자막은 100편이 아니라 10~20편 정도만 완성했고, 이미 창업을 해버린 상태라 솔직히 좀 아찔했어요. "이게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도 있었고요. 그 문제는 한동안 계속 해결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막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필요성이 점점 커졌고, 지금은 산업 내에서 자막이 필수 요소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협의 구조도 훨씬 간결해졌어요.
반대로 공연 쪽은 생각보다 협상이 수월했던 편이에요. 규모가 작아서 이해관계가 복잡하지 않았고, 대부분 저희가 작업한 공연이 창작뮤지컬이다 보니 담당자가 결정권자인 경우가 많았어요. 다만 공연계 자체가 다소 폐쇄적인 분위기라 초반엔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막막했죠. 메일을 보내도 답이 없고, 기획사가 몇 명 안 되다 보니 정보 접근 자체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어느 날, 그냥 페이스북에 글을 길게 썼어요. "이런 서비스를 만들었고, 자막을 공연 콘텐츠 안에서도 실현하고 싶은데 누구든 연결해 줄 수 있으면 연락 주세요."라고요. 전략적으로 올렸던 건데, 실제로 결정권자들이 그 글을 보고 연락을 주셨고, 국공립 단체의 공연으로 첫 테스트로 기회를 얻게 됐어요. 국공립 공연은 외국인이나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가 필수로 요구되다 보니 설득과 협력이 좀 더 수월하기도 했어요.
기억에 남는 협력 중 하나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공연 축제 ‘웰컴대학로페스티벌’을 기획하신 관광 분야 관계자분과의 만남이에요. 당시는 저희가 공연 관계자들과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는데, 그분이 직접 저희 서비스 현장에 방문해 먼저 손을 내밀어주셨죠. 웰컴대학로페스티벌에서 이미 외국인 관객 대상 자막 서비스를 운영해 본 경험이 있으셨고, 그 가능성을 더 넓히고 싶다는 의지를 갖고 계셨어요. 저희의 방향성과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었기에, 함께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지금도 그분과는 연락을 이어오고 있고, 소개해주신 공연 관계자들을 통해 저희는 실적과 기회를 계속 확장해가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느낀 건, 이 도전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 함께 고민하고 도와줄 수 있는 협력관계를 꾸준히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겠다는 점이었어요. 또, 그런 협력자를 찾을 수 있도록 ‘이게 왜 필요한지 끊임없이 설명하는 태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는 처음 듣는 이야기일 수 있고, 불편하거나 귀찮게 여길 수도 있지만, 그 벽을 넘기 위해서는 포기하지 않고 설득하고, 가능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걸 많이 배웠어요.
12. 대학 동아리부터 창업을 준비하셨잖아요. 첫 단계부터 차근차근 밟아오면서 많은 위계를 맞닥뜨리셨을 거 같아요. 특히 누군가를 설득하고 협의하는 과정을 수도 없이 겪으시면서 이 위계를 무너뜨리기 위한 필승법을 찾으셨나요?
공연계는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굉장히 엄격해요. 특히 자막 장비의 불빛이나 다른 기기가 추가적으로 들어왔을 때 생길 수 있는 컴플레인에 대한 두려움이 크고, 이미 민원이 많은 업계라 불편함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죠. 그리고 항상 느끼는 건, ‘당위성’ 하나만으로는 설득이 어렵다는 거예요. 자막을 제공한다고 해서 매출이 늘거나 관객 수가 증가한다는 보장이 없으면, ‘왜 굳이 해야 하냐’는 질문이 계속 따라와요. 그래서 자막 서비스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거절당하는 일을 수도 없이 반복하다 보니, 저도 "이거 정말 해야 할 이유가 없는 일인가?" 하는 무력감에 빠지기도 했고요. 반대로, 안 해야 되는 이유는 백 가지도 넘게 나열할 수 있거든요. 그 안에서 계속 흔들렸던 것 같아요. 처음엔 저도 관객으로서는 비판하는 입장이었어요. "기본적인 권리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비판을 하는 일은 쉬웠죠. 그런데 막상 그 안에 들어가 보니까, 그분들의 피로감과 현실적인 제약이 피부로 느껴졌어요. 그래서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설득과 조율의 과정 자체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과제예요.
요즘은 오히려 외국인 관객을 대상으로 자막 서비스를 먼저 확장하고 있어요. 지금은 농난청인 관객보다 중국인 관객이 더 많고, 사업 계획서나 제안서에서도 외국인이 함께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강조할 때 더 설득력이 있어요. 처음엔 외국인 관객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도 있었지만, 만나보니 의외로 농난청인 분들과 닿는 지점이 많았어요. 언어 장벽 때문에 공연을 보긴 봐도 30%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았고, 자막이 있으면 "그 공연, 나 보러 갈게" 하시더라고요. 반면 농난청인 관객분들은 오히려 당장 공연을 보러 오시는 경우는 드물었어요. 복지관 실습 때도 느꼈는데, 지금껏 콘텐츠의 선택지, 특히 뮤지컬에 대한 선택지가 많지 않았던 분들에게 자막이 생긴다고 해서 갑자기 공연장을 찾지는 않더라고요. 선택지 자체가 없던 삶에서 ‘이제 선택하세요’라고 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더 고민하게 됐어요.
그래서 요즘은 ‘자막이 있으니 꼭 보러 오세요’라는 식의 설득은 피하고, 그저 누군가가 공연장에 왔을 때 당연히 자막이라는 선택지가 존재하는 환경을 만드는 걸 목표로 삼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은 외국인 관객이 먼저 이 서비스를 찾아주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 대상 서비스를 계속 확장하면서, 언젠가 농난청인 관객들도 더 쉽게 오실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고 있는 중이에요. 결국엔 내가 청각장애에 대해 어떤 대단한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기보다는, 콘텐츠를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던 게 더 본질적인 목적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요즘 더 자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13. 기술이 있어도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고도로 발달된 기술은 분명 '접근성'을 확장하지만 때로는 접근 가능해졌다고 ‘착각’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아요. 자막, 기기, 플랫폼... 모든 것이 준비되어도 진짜 소통이 어려웠던 순간이 있었다면 공유해 주세요.
최근엔 김초엽 작가님의 『사이보그가 되다』를 읽다가 다시 고민하게 됐어요. 그 책에서 장애인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기술은 이미 많이 나와 있는데, 대중은 여전히 ‘장애를 극복’하거나 ‘완전히 사라지게 만드는’ 거대한 기술을 기대한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정작 당사자들이 느끼는 건, 그런 거창한 기술보다 소리를 문자로 바꿔주는 간단한 기술이 삶을 윤택하게 해 준다는 거였어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맞아,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건 아직 도달하지 못한 미래 기술을 쫓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기술로 삶을 바꾸는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마트글라스나 AR 같은 멋진 기술도 있긴 하죠. 저도 처음엔 그런 기술이 없어서 우리가 이걸 못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기술이 있어도, 실제로 그걸 사용해 줄 마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자막을 기술적으로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의 분위기나 감각을 잘 읽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고 느껴요. 이걸 잘 감지하지 않으면, 기술이 오히려 소외를 더 키울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결국 중요한 건 기술 그 자체보다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시스템을 쌓아가는 일, 그리고 그 감각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14. 자막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불편하거나 거슬린다는 인식이 있는 거 같습니다. 인식을 전복시키기 위해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요?
사실 저도 자막을 만들기 전에는 잘 몰랐어요. 그런데 자막 작업을 오래 하다가, 어느 날 일반 공연을 관람하러 갔는데 대사가 너무 안 들리는 거예요. 특히 문학적인 대사들이 많은 공연에서는 그 말들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전체 분위기나 감정선이 와닿지 않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자막이 왜 필요한지’를 실감했던 것 같아요. 공연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허들이 높을 수밖에 없어요. 자막은 그 허들을 낮추는 도구일 수 있다는 걸 점점 더 확신하게 됐어요.
사실 저는 공연장의 접근성이나 릴렉서블 콘텐츠 같은 이슈엔 큰 관심이 없었는데, 자막을 도입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함께 가야 하는 의제더라고요. 지금처럼 엄숙하고 폐쇄적인 공연 분위기에서는 이 서비스를 적용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 처음엔 솔직히 무서웠어요. 연극·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비난을 받을까 봐 걱정도 많이 했고요. 그런데 막상 팬 커뮤니티 안에서 소통을 해보니까 의외로 연대가 생기더라고요. 연뮤덕들 중엔 자신이 자막을 직접 필요로 하진 않아도, 소외된 사람들을 보는 감각이 살아있는 분들이 많아요. 개인 단위에서는 ‘환대’에 가까운 반응인데, 일반적으로는 예민한 관객으로 보는 간극이 분명히 존재하더라고요. 그 간극을 조금씩 메워가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기억에 남는 순간이 하나 있어요. 트위터에 더뮤지컬 관련 기사가 올라가고, 오롯 계정을 팔로우하고 계시는 농난청인 분께서 "비장애인이 접근성 서비스를 하다가 치고 빠지는 경우가 많아 냉소적이었는데, 오랫동안 이 일을 해 온 최인혜 대표가 해서 그래도 믿음이 간다"는 글을 남겨주신 거예요. 저는 스스로를 검열하는 편이고 뮤지컬 자막 서비스가 오롯의 새로운 도전이라 '왜 갑자기 이런 서비스를 하지? 저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하지?’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고민이 많았는데 그 글을 읽고 마음이 놓였어요.
하지만 동시에 무서운 점은 자막 서비스는 현장 적용이 어려운 서비스이거든요. 브로드웨이에서는 자막 대여 서비스도, 지정 공연장도, 법으로도 적용이 잘 되어있지만 한국은 시스템도 여유도 아직 부족한 상태예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제가 이걸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고, 그래서 더 무섭고, "내가 모르고 실수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도 커요. 그래서 그럴 때마다 혼자 중얼거려요. “지금 안 하면 10년 뒤에도 안 돼 있을 거야. 아예 50년이 걸릴 수도 있어. 망하더라도 제대로 남겨놓고 망하자.” 그렇게 말하면서 다독이기도 하고요. (웃음) 사실 자막은 돈이 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투자자나 컨설턴트를 설득하는 것도 늘 어렵고, 증거를 계속 찾아야 하는 싸움이기도 해요. 그래서 요즘은 결국 이건 자기 확신을 가져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당장의 변화보다는, 꾸준히 감각을 전하고 기록을 남기는 일이 먼저라는 믿음으로요.
15. 작품의 내용뿐 아니라, 공연장 내 좌석 배치, 기기 설치 위치 등도 ‘소통의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비물리적인 소통까지 고려하시는 인혜 님의 접근이 궁금해요.
지금은 자막 기기 특성상 객석 뒤쪽 좌석에서만 서비스가 가능해요. 자막이 송출되는 위치가 고정돼 있다 보니, 관객이 자신의 자리에서 오페라글라스처럼 자막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는데, 현재 예매 방식이나 공연 운영 방식 때문에 그게 어렵더라고요. 만약 자리를 확보하려면 매 회차 10석씩 고정으로 빼야 하거나, 저희가 따로 티켓을 판매하는 채널을 구축해야 하는데, 그 순간부터 일이 너무 커져버려요.
이와 별개로 최근엔 중국인 관객이 많이 오시면서, 접근성과 안내에 대한 고민이 더 넓어졌어요. SNS도 활발히 운영하면서, “오롯 망해도 중국 마케터로는 취업하겠다”는 농담도 해요. (웃음) 농난청인뿐 아니라 외국인 관객의 경험까지 같이 고려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세한 설명’에 대한 감각이 생겼어요. 이건 어떤 시혜적 태도라기보다, 정말로 상대방 입장에서 보려고 하는 태도에 가까워요. ‘기기를 설치했으니 끝’이 아니라, 그 사람이 이해하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걸 현장에서 계속 배우고 있어요. 사실 예전에는 공급자의 입장에서 “깔아 두면 되겠지” 했던 부분도 있었어요. 그런데 저희 팀원 중 피드백을 촌철살인처럼 날려주시는 분이 계시거든요. 처음엔 그 피드백을 해결하는 게 급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분들 입장에서 불편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위치에 기기를 설치하거나, 관객이 오기 전에 직접 앉아서 시야를 맞춰보는 등 사소하지만 체감되는 노하우들을 하나씩 쌓아가고 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무엇을 제공하느냐’가 아니라 ‘상대는 이걸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16. 오롯플래닛의 작업은 단지 콘텐츠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보기 위한 태도를 만드는 일’ 같아요. 인혜 님이 생각하시는 ‘소통의 전제’란 어떤 것인가요?
가끔 오롯이 뭐 하는 곳이냐고 물어보시면 자막 서비스를 한다고 말씀드리지만… 사실 저희가 자막에 엄청난 철학을 가진 팀은 아니에요. 자막은 도구고, 그걸 통해 ‘당연히 같이 보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렇게 같이 보려면 자막만 잘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라 주변의 동의가 필요해요. 예를 들면, 공연장 안에서 뒷자리에 자막 좌석이 마련된다는 걸 관객들이 알고,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그게 가능하잖아요. 저는 그런 부분까지도 소통의 영역이라고 느껴요. 결국 중요한 건 ‘노력하는 태도’인 것 같아요. 수어를 전혀 못 하던 시절에 복지관 1층에 계시던 농인 바리스타분이 수어로 주문하지 않으면 커피를 안 주신 적이 있어요. (웃음) 처음엔 당황했지만, 그때도 느꼈어요. 중요한 건 ‘하려는 마음’이라는 걸요. 그런 것들 덕분에 수어도 많이 늘었고요. 그래서 저는 소통의 전제는 완벽하게 말하고 듣는 기술이 아니라, 불완전한 상태에서도 서로 진심을 보여주려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17. 공연 자막을 시작하신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오롯의 작업이 감각을 바꾸는 방식이라면, 공연장 바깥에서 또 어떤 상상을 하고 계신지도 궁금해요. 공연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벗어나, 자막이나 감각의 접근성을 삶의 구조 안으로 옮긴다면, 가장 먼저 바꿔보고 싶은 현장은 어디일까요?
공연장을 넘어서 자막의 쓰임을 상상해 보면 콘서트가 가장 먼저 떠올라요. 실제로 중국인 관객분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다들 자신만의 최애가 있고, 콘서트에서는 국적의 다양성이 훨씬 더 뚜렷하거든요. 그래서 이 서비스가 자리 잡히면 콘서트 현장에서도 충분히 가능하고, 상업성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조금 더 개인적인 이야기로는, 저는 지하철 안내 방송에서 자막의 필요성을 자주 느껴요. 주변시가 좋지 않아서 시야 바깥에서 일어나는 걸 잘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거든요. 이어폰을 끼고 있으면 음성 안내도 잘 들리지 않고, 앱도 바로 켜기 어려워서 생활 속의 작은 정보 접근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할 때가 많아요.
배리어프리라는 말을 처음 접했을 땐, 저도 막연히 거대한 장벽을 없애야 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사실 그런 장벽은 완전히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라, 벽돌 하나하나를 조금씩 덜어내는 작업에 가깝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제 ‘완벽한 배리어프리’를 상상하기보다, 지금 여기서 어떤 감각의 틈을 만들 수 있을지,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어느 순간 문득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 상상을 더 자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작은 불편을 줄이는 일이 결국 더 많은 사람의 감각을 환대하는 구조로 이어진다고 믿고 있고요.
18. 극단 고래의 워크숍 공연 <벽>을 감상하고 작성하신 후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자막을 공연 속에 십분 활용하는 공연도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될 거 같아요. 혹시 공연의 프로덕션 단계부터 참여하는 공연이 있다면 어떤 제안을 하고 싶나요?
제가 창의적인 사람은 아니라 제작에는 관심이 없고요. 처음 이 일을 시작한 건 데프웨스트시어터 Deaf West Theatre 때문이었거든요. 저한테 장애예술은 별도의 콘텐츠라고만 생각했는데,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 무대 장치나 안무에 자막 요소가 세련되게 녹아 있는 걸 보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자막이 단지 보조 수단이 아니라 공연 안에 미학적으로 스며들 수 있구나 싶었던 거죠. 이랑 님 공연 봤을 때도요. 많은 사람들이 공연에 스크린이 있으면 안 예쁘다고들 하시는데, 이랑 님께서 “누군가를 배제하는 공연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겠냐”라고 하셨거든요.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스크린이 오히려 더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다 생각하기 나름이고, 자막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창작자의 역량이라고 생각했어요. 최근에 두산아트센터에서 했던 공연에서도 자막에 친밀한 텍스트, 폰트, 효과를 굉장히 다양하게 쓰시더라고요. 뽕짝 노래가 나오는데 노래방 자막의 폰트가 나오고, 가사가 색칠되면서 넘어가는 방식이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자막이 공연의 감각을 구성하는 요소로 사용되는 방식이 부럽기도 했고 그런 걸 더 많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리고 클로짓으로 살았던 동성애자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프라이드>의 자막 작업을 할 때의 이야기인데요. 중간에 차이콥스키의 음악이 나오거든요. 자막에 ‘클래식 음악’이라고만 쓸까, ‘차이콥스키의 음악’이라고 쓸까 고민했었어요. 그런데 차이콥스키가 실제로 동성애자였다는 걸 알고 그걸 자막에 넣게 됐는데, 자막을 넣으면서도 그 자막이 송출되는 걸 보면서도 울었어요.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인물의 서사랑 역사적 맥락이 겹쳐지면서 텍스트가 감정으로 너무 와닿는 거예요. 다 같이 부르는 뮤지컬 넘버의 경우에는 인물에 따라 가사가 조금씩 다르기도 하거든요 ‘네’, ‘내’ 이런 부분들을 발견하고 자막에 반영할 때마다 감정의 결을 번역하는 일이라는 걸 실감하게 돼요. 자막이 투박하더라도 공연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으면 좋겠고, 더 많은 창작자들이 그걸 기술이 아니라 하나의 미학으로 다뤄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19. 온전함이라는 말에는 사실 결핍이 전제된 것 같기도 해요. 인혜 님께 오롯플래닛은 어떤 부족함을 마주할 때마다 다시 ‘오롯이’ 서게 만드는 힘이 되어주었는지 궁금합니다. 인혜 님이 붙이신 이 이름이 지금의 오롯플래닛과 어떻게 닮아가고 있는지, 혹은 달라지고 있는지도 듣고 싶어요.
질문을 받고 이렇게도 해석이 되는 게 신기했어요. 차별이나 결핍도 겪어본 사람만 알고 있는 것처럼, 저 역시 ‘오롯하지 않아서 오롯하기 위해서 활동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오롯’이라는 이름은 인액터스 동아리명에서 시작됐어요. 뜻도 좋았고, 활동의 방향도 저랑 잘 맞아서 이어가게 됐고요. 이후 ‘플래닛’을 붙인 건 이 미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모여있는 커뮤니티를 상상하는 마음에서였어요. 나중엔 옆자리에서 자막을 보는 사람을 봐도 아무렇지 않아지는 사회, 그런 커뮤니티가 되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면서 붙인 이름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밴드가 ‘9와 숫자들’인데, ‘99%’라는 앨범에 이런 말이 있어요.
“99%는 100%가 결코 가질 수 없는 뜨거움과 환희를 품고 있다.
완벽에 가까움은 완벽보다 위대하고 의심의 여지없이 존재한다.”
너무 멋있는 거예요. 미완의 상태에서도 남아 있고 계속 시도할 수 있다는 게 저한테는 희망이거든요. 온전할 수 없더라도 온전함으로 가는 과정이 재밌는 것 같아요.
20. ‘우리는 모두 달 아래 살아간다’는 문장처럼, 저마다 다른 조건과 감각으로 살아가지만, 그래도 우리가 함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인혜 님께서는 ‘나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가장 선명하게 느꼈던 순간이 있으신가요?
지원사업 선정이나 사업지원금을 위해 서류의 늪에 빠질 때가 많아요. 그럴 때마다 늘 따라오는 굴레가 있어요. ‘이 활동은 가치 있는 일이고, 그 가치를 성과로 증명해야 한다’는 요구요. 그런데 서류를 쓰다 보면, 스스로도 자꾸 ‘이게 정말 달성 가능한가?’라는 의심이 들어요. 오롯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흔들리게 되고, 오롯이라는 이름으로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자존감도 낮아지곤 해요. 그러던 중 2년 전쯤, 접점이 전혀 없는 창업 영역의 사업에서 운 좋게 선정이 되었는데, 발표 메일과 함께 평가 의견이 같이 도착했어요. 그중 한 문장에 정말 큰 힘을 얻었어요. “공익을 위해 사익을 추구한다고 하는 것처럼, 배리어프리는 꼭 필요하고 이 활동이 상업성이 있든 없든 오롯의 역할은 분명 필요하다.” 누가 쓴 평가인지 모르겠지만, 저희가 하고 있는 서비스를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소통을 직접 한 건 아니지만, 말없이도 통했다는 감각이 들었고, 그게 지금까지도 큰 위로가 되고 있어요.
우리의 삶이 대게 그러하듯, 모든 일의 시작은 대단한 사명감보다는 단순하고 명확한 물음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최인혜의 일도 그러했다. 하지만 그가 나누는 말들의 텍스트들을 써 내려가면서, 우리는 자막이라는 존재를 처음부터 다시 바라보게 됐다. 수많은 소리를 글로써 보여주는 행위는 우리가 같은 세상을 함께 보고 있다는 감각을 선물하는 기술이었다.
그 기술은 늘 보던 무대의 얼굴을 처음으로 선명하게 보게 했고, 어느 날엔 누군가의 삶을 가능하게 하기도 했다. 본인이 열렬히 사랑하는 것을 ‘모두’가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배려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지 않고, 꾸밈없이 삶 속에서 발화되고 있던 것이다. 그와 같은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그가 얼마나 더 오롯해질 수 있을지 떠올리다 이내 멈췄다. 온전할 수 없더라도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이 여정이 충분히 아름답다는 확신, 그가 남긴 가장 ‘오롯함’이었다.
Interviewee 최인혜
Interview 엄나영
Research 배정아
Edit 엄나영
Photography 김윤이, 배정아
Design 김윤이
© 2025 arttdal. 김윤이, 배정아, 엄나영
우리는 분명 듣고 있는데, 왜 서로에게 닿지 못할까.
〈우리는 모두 달 아래 살아가〉는 아뜨달의 인터뷰 시리즈로, 모두가 같은 달 아래 존재함에도 감각의 위계와 소통의 불균형이 지속되는 현실을 은유합니다. 우리는 ‘불통’을 감각의 부재가 아닌 내면에 자리한 위계의 문제로 바라보며, 그 간극을 드러내고 해체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