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아침저녁으로 공원을 돌며 운동을 했다. 소장을 접수했으니 이제 기다리는 것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홀가분하고 이제 나를 챙겨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어제도 아침에 혼자 가볍게 뛰고 저녁엔 지영이와 산책을 했더니 수면제를 먹고도 깊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요즘은 수면제를 먹어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서 병원에 이야기를 해봐도 너무 강하지 않게 주신다는 거다.
그런데 아침에 대법원 사이트의 나의 사건기록을 보니, 무언가가 잘못되었나 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9월 14일 원고 소송 대리인 법무법인** 담당변호사 최승연, 김지은에게 보정명령등본 송달”
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변호사는 아무 말도 없었고 나는 빨리 소장이 전달되어서 재판이 시작되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답답할 수가 없다.
최승연, 김지은 변호사에게 메일을 보냈다. 대법원 사건기록에 보니 보정명령등본이 송달되었던데, 뭐가 문제인가요?
8시 30분에 메일을 보내고 안절부절을 못하는 나를 보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안정제를 꺼내 먹었다. 선생님이 불안하면 먹으라는 하늘색 약 한 알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서 한알짜리를 먹고도 불안해서 저녁에 먹는 핑크색 반알을 또 먹었다.
‘나 이렇게 약에 의존해도 될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견디기 힘드니까 어쩔 수 없지.’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려주기나 하지.... 이렇게 답답할 수가 없다. 아침에 사과 반쪽 먹고 커피 한잔 마신 게 전부인데 뱃속에서는 계속 요동을 친다. 무언가라도 먹으라는 신호인가 보다.
혹시 메일에 답장이 왔을까 봤더니, 서울시에서 재산세 내라는 고지서만 왔다.
9월 30일까지 45만 원을 내야 한다. 참... 독립은 어렵구나. 재산을 지키기도 어렵고, 사고 때문에 차 수리비도 많이 드는데.... 이번 달엔 정말 굶어야 하려나 보다...
삶이 고달픈 이유는 예상하고 준비할 수도 없고,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일 거다. 특히 내게는 갑자기 생기는 돌발 상황들이 너무 버겁고 부담스럽다. 여유롭게 넘기고 갈 수 있다면 조금 더 편할 텐데....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고 또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너무 힘들어서 누워버렸다. 누워서 국세청을 뒤져보니 재산세가 160만 원이나 나왔다.
고민 끝에 통장잔고를 거의 비워가면서 세금을 내버렸다. 왠지 소송을 앞두고 세금을 내지 않는 게 불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통장잔고 문자를 보니, 한숨이 나왔다. 이번달에 사고까지 내고 정말 이래서 이혼하기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월세 보내고 관리비 내고, 공실인 상가 관리비 보내고 세금까지 내고 나니 잔고가 너무 한심하다....
핸드폰으로 대법원의 나의 사건을 검색해 보니, 14일에 우리 변호사들에게 김경아의 주소에 대한 서면증명서 제출에 대한 보정명령이 송달되었고 15일 도달하였다는 문자기록이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추석 전에 소장 송달은 어려울 것 같다, 이 악몽을 빨리 끝내고 싶고 그 인간과의 모든 것을 도려내고 싶은 생각밖에 없는데 이렇게 기간이 늘어지니 조급함이 심해진다.
준비를 마치고 큰길로 나가 택시를 불렀다. 14000원이면 학교까지 택시를 타고 갈 수 있었다. 오는 버스도 있지만 시내를 다 돌아서 1시간 이상 걸리면 힘들고 멀미가 날 것 같아서 택시를 탔다. 지금은 내 몸과 컨디션을 생각할 때이니까....
학교에 가서 회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피곤함이 몰려왔다. 간단히 세수만 하고 잠깐 누웠는데 정신없이 3시간을 잤다. 점심 먹으러 가서도 길거리에서 중심을 잃고 어이없이 자빠지는 모습을 보고 주변 교수들이 무척 놀랬었는데, 먹은 것도 없으니 다리 힘이 풀려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오늘 산책은 쉬기로 했다.
누워있는다고 쉰다는 느낌이 들지도 않지만, 가만히 있으면서 몸에 기운을 좀 빼고 싶었다. 온갖 긴장과 버티려는 안간힘으로부터 나를 내려놓고 침대에 누웠다.
앞으로 송달과 답변서, 가사조정, 재판까지의 긴 기간을 기다림으로 벼텨야하는데 참 힘겹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마음 같아서는 빨리 칼로 도려내고 끝내버리고 싶은데, 세상 일은 내가 계획하는 대로 되는 일이 없다. 언제나와 같이... 누워서 오늘 하루를 생각해 보니 나의 이야기를 대충 들은 지인의 이야기가 귓가에 맴돌았다.
“이건 소설이네.. 아니 소설보다 더 소설이야... 한교수 무슨 막장 드라마 주인공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