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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일이 생기면 관계가 정리된다.

by 이웃사

희원이가 아침부터 사진을 문자로 보내왔다. 마스크 피부 마사지기인데 ‘이거 엄마 거 아니에요?’ 라며 물어왔다. ‘그거 내 거지. 근데 왜?’ ‘이게 밖에 나와있어요.’

전남편은 나에 관한 뭔가를 계속 뒤지고 있나 보다. 이제 내 짐을 하나씩 버려버리려고 하고 있구나고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추석 전에 소장이 송달되기를 바랐는데, 연휴가 시작되니까 내가 그저 별거 아닌 일로 이혼을 하려고 한다고 생각하나 보다. 어쩜 이렇게 뻔뻔한지...


어제 희원이가 저녁에 9시에 전남편은 차를 끌고 나갔다며 문자를 보내와서 아마 김경아가 9월에 온다더니 도착해서 공항에 픽업 간 것 같았다. 11시가 넘어서 들어오면서 병원을 다녀왔다고 하더란다... 아마 상간녀를 주변에 방을 얻어주고 장 봐주고 왔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 아침부터 이런 거 보니 어제 상간녀가 한국에 들어왔고, 애들과 오늘부터 2일간 호텔 간다는 것도 애들을 호텔로 보내고 상간녀와 내 집에서 지내려는 의도인 게 분명했다. 정말 화가 났다. 애들 편하라고 호텔 가서 지내자는 게 아니라 지들이 내 집, 내 침대에서 무엇을 하려고 그 짜릿함을 위해 애들과 토리를 보내버리려는지 울화통이 터졌다. 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들은 어떻게 이렇게 뻔뻔한지....


어제저녁에 민정 후배가 오랜만에 왔다. 그 사이 살이 너무 빠졌다고 걱정했지만, 막상 만나니 너무 반갑고 허기도 져서 치맥을 먹고 오랜만에 웃을 수 있었다. 날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저렇게 이쁜 짓을 하는 후배가 있어서 난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잘 먹지도 못하는 맥주를 반 잔쯤 먹고 치킨은 오랜만에 많이 먹고 부른 배로 공원을 걸었다. 둘 다 제대로 술도 못 먹으면서 비틀거리고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려고도 하고 깔깔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런 우리 둘 다 참 우습다는 생각과 내가 이렇게 웃은 적이 언제였던가 싶기도 했다. 천천히 야광빛이 화려한 공원길을 걷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동생~~ 뭐 해?”

“주현언니~~ 나 후배랑 맥주 마시고 공원 걸어요... 하하하”

“취했어? ”

“아니 기분 좋아요... 오랜만에 치킨도 먹고 맥주도 마시고... 요새 맨날 혼자 강소주 먹었는데 둘이 먹었더니.. 기분 좋아요. 언니도 술 마셨어요?”

“아니 이제 먹으려고................................”

“전화가 이상해요. 안 들려......”

“흑흑흑.......” 주현언니의 통곡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넘어오자 가던 길을 멈췄다.

“왜 울어요? ”

“내가 해줄 께 없어... 동생이 그렇게 힘든데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너무 없어... 난 울기만 하고. 난 이제 전화 안 할래... 이렇게 울면서 힘든 사람 더 힘들게 하는 거잖아.”

“아니야... 나도 울게 해 줘서 고맙지.. 나 혼잔 울지도 못하는데, 같이 울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너무 고마워요. 내가 아픈데 함께 아파해주는 건데 너무 고맙지... 그것만으로 충분해. 내가 인복이 있어서 함께 울러 줄 사람도 있는 거지.. 흑흑”


나도 공원바닥에 주저앉아 함참을 울었다. 길 가던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후배가 부끄러워하든지 말든지 우리는 전화기를 잡고 한참을 울었다. 이런 일로 힘든 상황에서 누구에게 넋두리를 하기도 벅찬 내 사정을 듣고 함께 술 한잔을 해주는 후배와 나를 위해 울어줄 수 있는 지인이 있다는 게 큰 위로가 된다.

그래서인가? 지영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안 좋은 일이 생기고 나면 주변 사람들이 필터링이 되더라. 내게 의지가 되는 사람과 나를 피하는 사람으로... 후후 그러면 핸드폰 전번이 싹 정리가 되는 거지. 너도 그렇게 될 거야. 그게 그렇게 힘든 건 아니야. 오히려 삶이 단순해져서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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