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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영 Oct 21. 2023

공식같은 기호 그림의 비밀



아이들은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그림을 알아서 그린다.

해는 동그라미를 그린 후, 테두리에 직선을 그어 그린다. 집은 세모 지붕 밑에 네모로 그린다. 그 밖에 구름, 꽃, 나무, 나비 등 모두가 아는 비슷한 형태를 그린다. 대부분 종이에 비슷한 위치에 그리기까지 한다.

보지 않아도 모두 다 연상되는 그림. 이런 그림은 가르친 적도 배운 적도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된 일일까. 공식 같은 기호들. 그림인지 기호인지 헷갈린다.     


어린 아이들의 다양한 교재에는 기호로 된 그림들이 많다. 

특히 색칠공부 책은 어찌 보면 굉장한 기호 투성이이다. 아이의 손 근육을 키우기 위해,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 또는 색칠을 연습해야 한다는 더 애매한 이유로 아이들은 자라면서 색칠공부를 접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색칠공부는 좀 위험하다. 소근육과 대근육을 키우고 싶다면, 클레이나 찰흙 같은 점토를 반죽하며 만드는 활동을 더 추천한다. 종이를 접거나, 가위질을 할 수도 있다.     


색칠공부라는 말도 이상하다. 색칠이 공부가 될 수 있나. 색칠은 ‘공부’라기보다 ‘감각’에 가깝다. 그러니 색칠공부의 예시를 보고 따라 하는 것은 우리 아이 미술을 건조하고 딱딱하게 만들 뿐이다.
더구나 색칠을 못한다고 색칠 연습을 시키는 것은.. 과연 색칠을 더 좋아하게 될지 모르겠다. 

색칠은 그림을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진행될 요소다. 우리는 꼼꼼하고 부드럽게 채색한 것을 ‘열심히 잘했다’ 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어떤 때는 꼭 꼼꼼하게 칠하지 않아도 멋스럽다. 마치 한국화처럼 여백을 주기도 하고 시원하다. 또는 러프한 채색이나 선으로 된 채색도 있다. 많은 미술가들도 자신만의 멋스런 채색을 연출했다. 그건 미술가가 되어서 하면 된다고 생각하진 말았으면 한다. 우리 아인 미술가가 안 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의 미술이 가장 중요하다. (이 책에서 여러번 당부할 수 밖에 없다)     


미술교육학자 로웬펠드는 색칠공부는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활동이지만 ‘즐거워하는 활동’과 ‘해로운 활동’을 구별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은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칠하기 그림책은 아동의 창의적 표현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
(빅터로웬펠드)     



색칠공부 책을 접했던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그림은 차이가 있었다. 

교재에 인쇄된 새의 색을 칠한 후, 아이는 자신의 창의적 감수성과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색칠공부 책은 윤곽선을 따라 그림을 채워나가면서 아이들의 개별적인 차이에 대한 배려는 없이 똑같은 행동 양식으로 반응하도록 통제를 준다.      



더 중요한 건 교재에 나온 기호들이다. 이것은 그림이라기 보다는 기호에 가깝다. 수학 교재나 영어교재 색칠공부에서 본 이런 기호들로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이것은 도화지에 아이가 ‘기호’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어떻게 그려야 할지를 몰라서 메꾸는 것에 가깝다. 솔직한 자기 표현이 아닌 도화지를 채워야 하는 부담에 메꿔 넣는 것.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호를 그림으로 그리는 정도면 자유롭게 그리는 것은 어려워하고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유롭게 그리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아이만의 순수한 감각이 표현되지 않는다. 주로 옆사람의 그림을 따라 그리거나, 자료나 보고 그릴 것이 있어야만, 심한 경우 선생님이 시작 선을 도와줘야만, 위치나 크기, 내용을 다 정해줘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가정에서 쉽게 할 방법을 소개하면. 좋아하는 것부터 그려보는 것이다. 우선 관심 있는 분야를 검색하고 출력한다.

이때 너무 그리기 어렵고 복잡한 것은 피한다. 쉽고 간단한 것을 몇 개 출력한다. 출력한 것을 펼쳐서 보고 그 중 가장 편한 것을 골라 그려보자. 대화를 즐겁게 나누며 편안한게.

그리기 방식이나 순서가 나와 있는 교재사용은 너무 의지하지 말자. 또한, 남이 그린 그림을 출력하여 따라 그리는 것보다는 명화를 추천한다. 명화를 그린 미술가는 자신의 그림 세계를 탐구했다. 미술가의 작품을 접하면, 다양한 주제와 기법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고전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수많은 데이터를 쉽게 검색할 수 있으니, 마음에 드는 그림 스타일을 찾아보자. (어렵지 않은 명화, 충분히 많다.)


그림을 그리고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끼다 보면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생겨날 것이고 기호를 사용하게 되는 것은 줄어들거나 없어질 것이다.     

난 아이가 습관적으로 기호로 그리면 최대한 기분이 안 나쁜 차원에서 새롭게 표현해보도록 유도한다. 자극 있는 대화를 시도한다. 




펜으로 자유롭고 거침없이 아이가 생각하는 천국을 그렸다. 살아있는 생명체들은 모두 바쁘고 활기차다. 동물의 형상은 싱그럽다.




해를 기호로 그리기 전에 햇살에 느낌, 해가 뜬 시간마다 하늘의 색, 해가 쨍쨍한 날의 나의 기분 등 주관적인 경험으로 아이와 대화 나눠보자. 
아이의 기호그림을 만난다면 그대로 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소통해주면 좋겠다. 

일률적인 기호는 아이의 개성을 담지도 못할 것이며, 감동도 주지 못한다.

그림은 ‘메꾸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것’이고, 그림은 모두 같은 기호가 아니라 모두 다른 ‘개성’을 담는 것이기라는 것을.






그리는 자세를 고치면그림이 풀린다     


나는 아이와 처음 만나면 제일 먼저 ‘그림 그리는 자세’를 살핀다. 

연필을 잡는 자세, 손에 힘이 들어간 정도, 눈과 도화지와의 거리만 보아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 없는 지가 보인다. 그림을 굳이 시작하지 않아도 말이다. 그림 그리는 자세에 대해 간과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이의 자세를 잘 살펴보길 권한다.

손에 힘을 바짝 주고 연필을 가까이 잡고, 고개는 도화지에 전진하여 숙였다.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이 자세로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마음에 부담이 있다는 뜻이다. 그림이 어렵고 부담되며, 주변을 의식하는 것이다. 내 그림을 어떻게 볼지를. 이 심리가 자세에 그대로 동반된다. 그러므로 종이에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딱딱하고 경직된 자세로 아이가 그림을 그리려 하는가. 마음을 풀든 몸을 풀든 풀어주자. 자세는 마음가짐이다. 자세를 바꾸면 그림이 훨씬 편해진다.

아이에게 자연스러운 대화를 시도하며, 긴장을 완화시키고 자세를 수정해주자. 그림은 연필 잡는 자세만 고쳐도 쉽게 늘 수 있다. 

그림을 잘 그리는 단계로 진입할 때가 되면 연필을 잡는 자세가 다양해진다. 손에 힘을 주기도 하고 빼기도 하고, 몸을 뒤로 젖혀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에서 세밀한 표현도 한다. 

몸이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피아노에 몸을 맡겨 연주를 하는 피아니스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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