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이 되어 만난 미술
장 뒤뷔페의 우를르프의 형태와 패턴에 흠뻑 빠져 6살 민아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민아는 그림을 그리는 순간이 되면 사방의 소리가 멈춘 듯 했다. 고개를 푹 숙인채 작은 손으로 팬을 잡고 형태와 패턴을 그렸다. 그려나가는 선에 푹 빠진 모습을 볼 때면 이 행위를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나는 물러섰다.
그림을 다 그린 민아는 흩어진 펜 들 중에서 우를르프 작업과 연결된 마카의 색을 툭툭 찍었다.
뒤뷔페는 빨강, 파랑, 검정의 색을 조화롭고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민아도 그 색들을 자신의 그림에 칠하던 중이었다.
빨강, 파랑, 검정.. 파랑, 검정, 빨강, 황토.. 갑자기 황토!
펜을 잘못 집어든 민아는 좌절했다. 민아는 소리내기 시작했다. (부정확한 발음과 문장이 연결되지 않는 민아의 말을 난 재빨리 해석해야 한다.)
“망했어, 내가 망했어. 다른 색이 있었어.. 이 황토색 펜이 왜 여기 있었던 거야.”
“흑흑.. 열심히 그린건데.. 내가 힘들게 한건데..”
(이런 뜻이었을 거다.)
“민아야, 다른 색이 나와서 슬프구나. 우리 민아 열심히 한건데..”
“민아야 그럼 마음에 드는 부분만 오려서 다른 종이에 붙이는 건 어때? 황토색 부분은 빼고.”
“.. .. 끄덕끄덕”
(다행히 성공) 1차 위기는 넘어갔다.
나는 민아의 드로잉이 잘려 나가지 않도록 그림 겉에 가위로 오릴 선을 그려주었다. 그런데 민아는 종이를 뒤집어 잡고 있었다. 뒤집은 종이에는 꾹꾹 눌러 그린 매직 선이 희미하게 보였고 이것은 민아에게 매우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순간, 종이 뒷면에 보여진 희미한 선을 오려야겠다고 생각한 민아의 옅은 미소를 난 읽었고, 그러면 그림은 잘려 나갈게 분명했다.
“민아야 뒤집어서 오리면 선이 잘 안보여서 그림을 제대로 오릴 수 없어. 앞으로 돌려서 오려보자.”
그렇게 말은 했지만, 아까 읽은 민아의 표정에선 분명히 뒤집은 채 가위질을 할 게 뻔했다. 이때, 아이들은 내게 질문인지 대화인지를 건냈다.
그러다, 민아를 보는 순간. 민아는 엎어졌다.
자신의 그림을 잘못 오렸고, 이제 극복할 수 없는 상태의 슬픔이 순식간에 덮쳐왔다. 서럽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민아야, 선생님이 뒤집어 오리면 안 된다고 말해줬잖아. 뒤집어서는 선생님도 못 오려. 속상하구나. 우리 다시 그려볼까. 아니면, 음. 이렇게 오려진 상태를 사용해볼까..”
... 민아는 밖으로 나갔다.
사실 민아는 자주 밖으로 나간다.
보통의 경우라면, 교실 밖으로 나간 아이를 설득하고 달래서 재입장시켜야 맞다. 그런데 민아의 언어는 말이 아닌 몸이었고, 사소한 상황에서도 쉽고 빠르게 좌절하고 밖으로 나갔다. 어른이 와서 최선을 다해 달래주면 마지못해 들어오는 상황을 지속시켜왔다. 이 행동이 수정되길 바라는 나는 민아를 데릴러 나가지 않는다. 또한 남아있는 아이들과 수업을 해야 하는 이유도 포함된다.
민아는 토라진 슬픔의 크기에 따라 둘락 날락 하는 횟수와 혼자 있는 시간의 정도가 결정된다.
수업에서 아이 혼자만 작품을 거의 하지 못하고 콧물이 나올 정도로 울고 있는 상황은 교사에게 매우 난감하다.
적당히 미술을 도와줘야 하나? 오늘 수업이 잘 되도록 달래줄까?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엄마의 입장에서 같은 시간을 미술하고, 내 아이만 미술의 양?이 턱없이 부족한 것을 이해하긴 어려울거다.
하지만 모면을 위해 내 손으로 그림을 보충하고 엄마에게 태연하게 보여주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인가.
엄마를 안심시키고 싶은 마음인가. 민아를 위해서인가. 수업을 잘 한 척 하고 싶은 선생으로서의 욕심인가.
미술의 과정은 당연히 망칠 수도 있다고 나는 누누이 말해왔다. 하지만 이런 날이면, 용기가 필요했다.
왜냐하면 마치 수업을 잘 못하는 선생이 된 것 같아서.
민아와 같이 수업 한, 7살 소영이 엄마는 소묘를 언제 하냐고 물었다.
“어머님, 소묘를 하면 ‘앞서가는 미술’을 하는 것처럼 보일 거에요. 하지만 그 미술을 초등학교부터 해도 늦지 않아요. 물론 지금도 소영이는 잘할 거지만요. 저는 소영이의 나이 때만 가능한 미술을 하는 시간을 좀 더 가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다시 오지 않는 5, 6, 7세는 보물같은 시기 잖아요.“
소영이 엄마는 내 말에 긍정했다.
7살 선우는 손에 힘이 없어서, 그림을 그리는 데 애를 먹고 있다. 물론 난 선우의 서툰 표현이 귀엽고 애정이 간다. 하지만 막연히 선우의 그림을 보면, 서툴러 보이는 선이 더 눈에 들어온다.
선우의 선을 존중하면서도, 가끔은 선우의 그림에 나의 선이 합쳐진다.
“선우야 곡선은 이렇게 굴려보면 돼. 선우야 손에 힘을 줘서 이렇게 천천히 눌러볼까?”
아이의 그림에 내 선이 침범하게 될 때면 나는 자주 움찟 한다.
이래도 되나? 선을 가르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그대로 두어야 할까? 엄마는 어떤 걸 좋아하실까?
선생님이 좀 선을 잘 쓰게 가르쳐주지.. 아니면 아이 그림을 그대로 두지..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선우는 어떤 기분일까?
해명하자면, 이런 애매한 지점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잘 기대는 교육 ‘힌트’가 있다.
바로 나의 아들이 만났으면 하는 선생님의 모습이다. 거기에 나를 대입시켜 자유와 가르침의 접점, 간섭과 제안의 접점을 찾아간다.
그럼에도 뭔가 아이 그림에 내 선하나가 들어가면 그렇게 눈에 띌 수가 없고, 부 자연스러울 수 없다. 범죄를 저지른 느낌마저 든다. 마치 신호 위반이나 상점에서 빵 하나를 훔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신호 위반을 해 본 적은 있고, 빵을 훔쳐본 적은 없다.)
신호위반을 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수업을 마친 이 날은 토요일.
토요일은 한주간의 공식적인 일정들을 마치는 날로, 피로가 몰려야 늘 옅은 두통이 있다. 이상하게 매주 더 피곤한 한주가 갱신되지만, 종합시험 준비를 위해 논문을 폈다.
다음은 시각장애인에게 사진을 가르치는 교수님 논문에 있는 수업 성찰지다. 그대로 옮긴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미 일찍부터 아이들은 사진이 자신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계속해서 표현하고 있었다. 그걸 내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왜냐하면 내게 ‘사진’은 [그들이 이해한 것과는] 다른 의미였고, 그 의미가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사진이 어떤 의미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들으면서도 듣지 않고, 보면서도 보지 않았다. 그런 무심함과 고민 없이 이루어지는 일방적 친절이 폭력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김미남. 수업 성찰지)
이어 ‘친절’과 ‘배려’ 혹은 ‘교육’의 이름으로 가려져있던 폭력성이 일방적 태도에서 비롯됨을 성찰한다.
현대 철학자 레비나스는 자아는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 자아중심의 문화로 포섭하려 하는데, 자아와 절대적으로 다른 타자를 자아로 환원시키는 과정에서 결국 타자는 소외된다고 덧붙였다.
즉 우리는 타자를 결코 이해할 수 없으며, 자아인 내가 생각하고 이해한 범위에서 타자를 이해한다는 것.
오늘 타자인 민아에게 내가 일방적 이해를 한 건 아닐까.
아무리 노력해도 타자인 민아를 나는 이해할 수 없을까.
나는 교사의 미술이 아닌 아이의 미술을 하려고 교육원을 열었다. 어제는 나의 교육철학을 소개하는 학부모설명회까지 마쳤다. 어린이 미술이 왜 필요하며, 우리는 이런 미술을 하고 있노라고 자신있게 소개했다.
나는 일정부분 실현 가능한 미술이라 생각했고, 또 일정부분은 잘해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론과 실제의 간극. 학부모의 기대와 요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 미술.
교육인이라면 마주하는 ‘실천적 모순’과 '교육적 역설'의 순간들.
나는 교육을 하는 걸까. 일방적 친절일까. 또는 어떻게 나아가는 것이 타자를 위한 교육일 수 있을까.
레뷔나스의 타자성의 철학으로 본다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문제를 나는 붙잡고 있는가.
타자의 미술. 난 그 미술이 궁금한 타자다.
(23. 9. 16. 토. 수업 성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