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드러커의 생각에 공감하며
1970년생인 나는 2020년을 맞아 딱 50이 되었다. 겸손이 아니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뭐 하나 진리의 언저리에 다다른 것이 없고, 인생에 있어 크게 주저앉은 적도 없지만 내세울 것도 없는 느낌이다. 이런 내 속 사정과 관계없이 내 딸은 올해로 25살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본인의 뜻에 따라 대학원에 진학할 것이다. 딸아이의 나이가 내 나이의 정확히 반이 되었다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
나는 요즘 조금만 게을리하면 티브이에서 전달되는 뉴스를 이해하기 힘들 때도 있다. 이럴 때는 딸이 젊은이가 보는 시각으로 정리된 자기 의견도 피력해 가며 심층적인 이해를 도와주는 경우가 있다. 물론 딸의 개인적인 의견을 언제나 완벽히 수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사건에 대한 설명은 꽤나 도움이 된다.
앞으로 나는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세상에 대한 이치에 대한 판단을 다른 이에게 의존하는 일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감각이 느려지기도 하고 세상 일에 대한 자신감보다 심사숙고가 더 깊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딸에게 의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딸의 나이가 나의 절반이라는 것이 왠지 서로의 사회적 지식이 팽팽한 균형을 이루는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전에는 딸이 나에게 자신의 모든 판단에 대해 의존하는 경향이 컸을 것이고 앞으로는 정반대로 내가 딸에게 의존하는 일이 많아질 것 같다. 세상에 대한 지혜의 양과 질이 역전될 순간이 눈앞에 온 것이다.
25살이라는 나이는 좀 애틋하다. 젊고 뭐든 도전할 수 있는 나이지만 두려움이 많은 나이다. 적어도 그 나이의 나를 돌이켜보면 혼돈과 좌절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진로’라는 말이 있다. 앞으로 나아갈 길이다. 25살의 젊은이가 제일 많이 고민하고 궁리하는 말일 것이다. 어디로 어떻게 나아갈지를 정해야 할 것 같고, 남의 말 보다 나만의 생각이 있어야 할 것 같아 부담되지만 잘 몰라 헤매는 것이 그들이다. 이럴 때 내가 청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미 계획이 있는 듯, 잘해 나갈 수 있는 듯 가장하지 말고 자신의 미숙함과 나약함을 객관적으로 보고 주변에 도움을 청하라는 것이다. 뉴튼이 쓴 적이 있는 말로 유명한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세상을 보라’라는 말은 이미 다른 사람의 공적 위에 내가 해낸 일은 작은 보탬에 불과하다는 겸손의 뜻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해 놓은 일을 학습해야만 그 위에 더 나은 업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주변에 거인이 한 명도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모두 거인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산업이 발전하면서 지식 노동자가 대부분인 요즈음 누구든 다른 사람에게 나눠 줄 나름의 지식의 어깨는 가지고 있다.
나도 지식의 어깨가 조금은 있다고 믿고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는 20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좀 더 써보고 싶다. 평소 내가 물음을 갖고 고민하다가 해결했던 문제들 혹은 여전히 미제로 남아 있는 문제들을 피터 드러커의 ‘프로페셔널의 조건’이라는 책에서 확인을 받거나 힌트를 얻은 경우가 많았다. 요즘은 나이가 좀 차이나는 나이 든 사람들이 무언가를 말할 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꼰대’ 라거나 ‘라테는 말이야’라는 유행어로 서둘러 입막음을 하는 경우가 많고 나 역시 이런 추세들 때문에 누구에게 쉽게 말은 꺼낼 수는 없었지만 남의 이야기를 가려서 듣고 자기에게 득이 될 부분을 취해줄 젊은이가 있다면 흐뭇할 것이다.
나는 누구든지 뭔가 이루어야 하고 프로페셔널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다. 15년 이상 작은 중소기업을 운영하면서 수많은 직원들이 회사를 거쳐 갔는데 그들은 모두 다 개성이 달랐고 이루고자 하는 바가 달랐다. 그들의 꿈이 소박하다고 해서 나쁜 일은 아니며 그들의 바람과 꿈은 그것 자체로 존중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걸 내가 깨달은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왜냐하면 나는 매우 성취 지향적인 사람이고 어떤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몸이 상할 정도로 하는 성향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의 차이로 직원들과 뜻이 맞지 않아 괴로운 날도 있었고 세련되지 못한 언사로 그들을 아프게 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사회에 이바지하고 멋지게 살고 싶지만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20대에게 해줄 말이 있을 것 같다. 나름의 논리가 생겼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프로페셔널해지고 싶은 사람은 누구일까? 지금 나는 별로 성공하고 싶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20대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성공에는 미련이 없을지라도 매일매일 똑같은 삶에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들은 마음속에서 ‘나는 프로페셔널해지고 싶다’라고 외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도 된다. 그리고 그들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것이다.
만약 내가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꼭 필요한 것은 실행 능력이다. 이는 피터 드러커도 이렇게 언급했고 나도 완전히 동의한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이 꿈이 많다는 것을 안다. 아이들이 웅대한 자기 꿈을 이야기할 때 한편으론 응원해 주지만 한편으론 대부분의 경우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예상도 하게 된다. 아이가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그 분야에 대해 아는 것이 많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정도로 관심이 많으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꾸준히 밀어붙이는 실행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가진 아이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몸으로 하는 일도 아니고 우리 대부분이 지식 근로자인 시대에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 또는 지식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반문하는 이도 있을 수 있지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의 이유로 실행 능력이 꼭 필요하다.
첫째, 피터 드러커는 ‘아무리 위대한 지혜라도 그것이 실제 작업 활동과 행위에 적용되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데이터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했다. 무의미한 데이터는 단지 문제가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자원의 낭비로 연결된다. 우리 회사는 업무 특성상 디자이너가 리서치를 하는 일이 많다. 다른 이의 디자인을 카피하거나 매번 비슷한 디자인을 찍어내 듯 작업을 하는 경우에는 디자인이라는 작업일지라도 단순 노동처럼 할 수 있지만 새로운 창조의 작업일 경우에는 기존의 디자인 작업물만 조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트렌드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 거기에 물론 자신의 종합의견도 포함되어야 한다. 이럴 경우 장시간의 조사를 하고 화려한 발표자료를 만들었다 해도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를 벗어나는 곳에서 시간만 낭비하고 엉뚱한 곳에서 변죽만 두드리는 직원을 보는 경우가 많다. 좀 더 깊숙하게 주제에 충실한 조사를 하는 게 자신의 미숙한 생각을 드러내는 것은 아닌가 두려워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나의 자료가 실제로 써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보다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경우 그 무의미한 데이터는 당연히 폐기 처리될 것이고 회사는 쓸데없는 일을 하느라 작업시간을 할애하는 직원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단 한 줄의 아이디어라도 그것이 실제 작업 활동에 연결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둘째, 실행 능력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현대의 산업은 어느 부분이든지 결코 단순하지 않다. 한 사람이 만능이 되는 것도 어렵고 만능인 한 사람이 모든 걸 처리할 수 있는 분야는 너무 제한적이다. 그렇다면 협업을 하는 것이 필수인데 실행능력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무엇이든 일을 이루어 내는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없다. 이런 역할 수행 능력의 불균형은 누구의 양보로 끝나는 일이 없고 방귀 뀐 놈이 성내는 식으로 오히려 제 역할을 잘 못하는 사람이 불평불만을 쏟아 내다가 팀이 결국은 깨지는 예가 많다. 실행능력이라는 것은 일이 성사되도록 하는 열쇠 역할과 같아서 하나하나 풀어가는 과정에서의 기쁨이 있는데 시간 때우기 식으로 일을 하는 척만 하는 사람은 자신이 내세울 것이 없다는 걸 제일 먼저 알고 핑계를 대다가 혼자 화를 내는 것이다. 대체로 회사에 대해 불만이 제일 많은 직원들이 이런 유형에 속하였었던 것 같다.
셋째, 실행을 해봐야 남는 것이 있다. 미래의 일을 미리 완벽하게 예상하는 능력은 누구도 가지지 못했다. 실행 능력을 가진 사람은 가장 가능성 있는 방법으로 노력을 집중하며 베팅한다. 물론 그 자신도 자신이 실행한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 그런 시도가 실패로 돌아갈 경우 실행능력이 없어 언저리만 기웃거리다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은 사람은 ‘거봐라 그럴 줄 알았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다.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은 실패도 없지만 성공도 없다. 무언가를 실행한 사람은 실패할 수 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성공의 확률은 높아질 것이고 여러 번의 실패 뒤에 이뤄낸 성공은 단번에 이뤄낸 성공보다 몇 배 크고 단단할 것이다. ‘마이 리틀 티브이’라는 골판지와 3D 프린팅을 활용한 제품을 만든 적이 있다. 회사 개발실에서 장난처럼 만든 시제품이었다. 하지만 보는 사람마다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이것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밤낮으로 고민했고 다른 직원들이 말렸지만 이리저리 고쳐 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카카오 메이커스라는 유통채널이 생겼고 중소기업의 상품을 소개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단 제품은 신제품이어야만 했고 나는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마이 리틀 티브이’를 추천했다. 상품을 미리 소개하고 일정량의 주문을 수주하는 데 성공하면 제작을 하는 펀딩식의 유통채널이었다. 나는 제품의 매력을 최대로 끌어올릴 여러 장치를 만들고 서둘러 일을 진행했다. 펀딩은 성공했지만 더 큰 성공은 이를 계기로 이전에 알지 못했던 제품의 문제점을 알게 되었고 3차, 4차, 계속된 업그레이드를 통해 이 제품은 단일 품목으로 우리 회사 매출의 효자 상품이 됨은 물론 외국에서 디자인 상도 받았다. 뭐든 실행해 보고, 되는지 안되는지 검증해 보는 게 중요함을 새삼 알게 해 준 계기였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실행능력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실행능력을 키울 수 있을까? 우선 무조건 실행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작은 것이든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별로 손해 볼 것 없는 일부터 이 일이 직접적으로 작업 활동에 영향을 주도록 실행에 옮겨 보는 게 좋겠다. 실행능력을 발휘한 경험이 많을수록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든다. 땅속에 심은 씨앗이 싹이 트기 전에 혹시 싹이 안 나서 매일 물을 주는 나의 노력이 헛되게 될까 봐 아예 씨앗을 심지 않는 농부를 상상해 보면 실행을 못하고 있는 머릿속에서만 생각하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재능 있는 디자이너들 중에 자신의 재능을 100퍼센트 발휘하지 않는 사람을 종종 본다. 내가 들은 어이없는 대답 중에 ‘진짜 좋은 아이디어는 나중에 자신의 브랜드를 할 때 쓸 거라서 아껴 둔다’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그의 아이디어가 탐나지 않는다. 그가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어 외부와 조율하며 실제 작업에 적용해 보며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최선을 다했다고 손해 보는 것이 아닌데 최선을 다해서 나의 능력의 한계점을 직시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 이러다 가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실행능력이 있으려면 목표 설정도 중요하다. 좀 더 큰 목표, 대의를 위한, 사회에 공헌하는 목표를 위해 일한다면 내가 이 일을 할 뚜렷한 명분을 가질 수도 있다. 어떤 일이든 하는 척만 하거나 이 일로 내가 가질 이득과 권한만 따지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일로 인한 피로와 노력에 비해 언제나 내게 만족을 주는 이득을 줄 수 있는 경우는 없다. 그토록 취업을 하고 싶어 애타던 사람들이 취업이 되자마자 회사가 가기 싫어 몸부림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회사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월급과 복지에 한정하는 경우 나를 거기에 맞춰 소비하기에는 그 대가가 얼마이든 간에 내가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는 이유를 월급을 받기 위해서가 아닌 미래의 나를 위한 투자로 생각하거나 진정한 사회에 대한 공헌으로 규정짓는 다면 매일 콧노래를 부르며 출근할 수 있지 않을까? 목표 설정에 따라 일이 성공하거나 실패하는데도 큰 영향이 있는데 어차피 나오는 월급이 나의 가치를 측정하는 유일한 도구라면 누구도 일을 성공적으로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 적당히 하는 일에 성공의 열매를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마지막으로 일의 실행 능력을 높이는 전문가가 되려면 자신의 전문지식을 활용하여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좋아야 한다. 전문가는 자신의 산출물을 성과를 올리는 생산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누가 그것을 이용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잘 이용하게 할 것인가’를 깊이 고려해야 한다. 남을 설득시키는 능력이 탁월해야 하는 것이다. 누구든 자신의 한정된 전문 분야를 활용하여 여럿이 이용하게 될 작업의 한 부분을 담당했을 것이다. 이때 자신의 지식을 같이 일한 조직 전체와 연결시키고 하나로 통합하여 외부로 내놓아도 자신 있는 결과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협업이 필요하다. 조직 내에서 생산적인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자신의 일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공헌에 초점을 맞추면 가능해진다. 회사 내에서 인간관계를 끈끈하게 맺고 인기를 얻으라는 뜻은 아니다. 아쉽게도 사람들이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게 되는 대표적인 케이스 중의 하나는 같이 나쁜 일을 할 때이다. 이때의 결속력은 꽤 강해 보이지만 비밀이 누설될까 봐 여기저기 허술한 부분을 메꾸다 보면 금방 누더기가 된다. 공동의 목표와 조직이나 사회에 대한 공헌이 협업으로 성과를 얻고 성취감을 맛볼 수 있으면 그 기억은 꽤 오랫동안 유쾌하게 우리의 의식 속에 남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사장은 외롭고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직원들로부터 의욕과다라는 손가락질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도 여러 번이었다. 직원들의 자기 계발을 위해 다그치고 독려하는 거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직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지독하게 부려먹으려고 애쓰는 것은 아닐까라고 혼자 곰곰이 생각한 적도 있었다. 물론 매번 추호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는 결론을 내기는 했지만 그것을 뒷받침해줄 논리나 근거는 부족했다. 그리고 내가 만들어 내는 논리에도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프로페셔널의 조건’이라는 책을 읽고 맨 처음 든 생각은 고마움이었다. 나는 프로페셔널한 사람과 일하고 싶었었던 거였다.
프로페셔널한 사람은 목표를 달성해야만 하고 그러려면 실행능력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20대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미래에 대한 준비가 아닐까 한다. 나의 지식이 무의미한 데이터가 되지 않고 같이 일하는 사람의 노력을 헛된 것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나 스스로 실행 능력을 갖추어야 만하고 실행능력이 없으면 프로페셔널로의 성장은 불가능하므로 이는 꼭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비록 지금 나에게 실행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면 꾸준히 실행에 옮겨 보려는 노력, 좀 더 높은 가치의 목표 설정 그리고 나의 실행을 도와줄 주위의 인간관계에 대한 노력을 권하고 싶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그럼 나 자신은 프로페셔널인가 생각해 본다. 나는 프로페셔널이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 나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자영업을 시작했고 시작한 이후로는 줄곧 나에게는 책임이 따랐으며 가정과 일을 양립하는 일하는 엄마 로서의 애틋함을 만회하려면 언제나 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큰 목표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는 시간도 길었던 것 같다. 그 시간들이 녹록지는 않았으며 꽤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들은 과도하게 아플 필요가 없다. 미리 아파보고 어깨를 내어주는 나 같은 선배들이 있으니 서로 소통하고 납득시키고 납득당하면서 더 현명한 미래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내 딸이 더 크기 전에 실행능력을 갖춘 프로페셔널이 되어 미래를 준비하라고 조언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