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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Aug 14. 2023

납작 만두 하나에 영혼을 담다

당신은 납작 만두의 진정한 맛을 아십니까?

정확히 나이 오십을 넘긴 이후부터였다. 오래된 기억 속의 옛맛을 부쩍 그리워하게 된 것이. 이전에도 그런 적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강하진 않았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오히려 점점 더 또렷해지는 기억 속 음식들은 대부분 어머니가 해주신 것들이지만 몇몇 예외가 있었으니 납작 만두도 그중 하나이다. 


내가 국민학교(노인네 인증 중)를 다니던 70년대 말 80년대 초에는 학교 앞에 노점상이 즐비하던 시기였다. 지금 같으면 아이들이 있는 학교 앞에 불량식품이 웬 말이냐고 학교나 교육청에 민원이 들어가고도 남을 일이지만 그 당시엔 그게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달고나, 병아리, 금붕어, 뽑기와 함께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털어가는 것으로 치자면 5대 천왕에 등극하고도 남을 납작 만두는 그중에서도 꽤 비싼 군것질거리였다.


나 같은 빈민가의 아이는 절대 돈 주고 사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 몇몇 친구들은 가방모찌(대체할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부득이하게 일본어 사용)를 해주는 대가로 부잣집 아이가 먹다가 남긴 것을 감사한 마음과 함께 받아먹곤 했었다.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지만 예나 지금이나 자존심 하나로 살고 있는 내게 친구들의 그런 모습은 비굴함 그 자체였기에 그저 쓰린 속 부여잡고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커다란 철판 위에서 야들야들 부드러운 만두피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질 무렵이면 신들린 듯한 아저씨의 손놀림에 따라 정확히 다섯 장씩 접시에 올려지고 그 위에 쪽파와 고춧가루, 참기름이 적절히 배합된 간장 두 스푼 정도가 흩뿌려지면 그 맛은 가히 천상의 맛이라 느껴질 정도였다.


긴 세월이 흐른 후 그 맛이 그리워 그동안 수십 차례 이상 납작 만두 맛집이라 소문난 곳을 찾아가기도 하고 배달로 시켜 먹기도 해 봤지만 어릴 적 내가 먹었던 그 맛 그대로 재현한 곳은 단 한 곳도 찾을 수 없었다. 이른바 '겉바속촉'이라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이 대세가 된 이후 언제부턴가 모든 만두는 튀김에 가까울 정도로 만두피를 딱딱하게 만들어버리는 조리법이 납작 만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 탓이었다. 뿐만 아니라 만두 자체도 문제점이 있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도 재래시장에 가면 비교적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납작 만두지만 겉모습만 비슷한 뿐 그 맛에는 분명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급기야 어릴 적 그 맛을 스스로 재현하기로 결심한 나는 며칠에 걸쳐 납작 만두의 본산(本山)이라 할 수 있는 대구의 여러 제조업체들을 검색한 끝에 주문 후 만들어 바로 배송한다는 한 업체의 글을 보고 만두를 주문했다. 만 하루가 되지 않아 박스 가득 도착한 만두를 냉장고에 넣으며 내심 흐뭇해하던 것도 잠시,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바로 주방장의 요리 실력이었다.


요리의 기본인 화력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해 모든 구이를 다 태워버리는 아내에게 맡겼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일이었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막아야만 했다. 주방에 있는 아내를 억지로 등 떠밀어 방에 감금하고 경건한 마음을 가득 담아 심혈을 기울여 화력을 조절하고 그 옛날 학교 앞에서 먹었던 그 작은 리어카를 떠올리며 맛을 재현하는 데 힘썼다.


최소한 겉보기 등급만으로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다. 완벽한 재현은 아니라 해도 거의 90% 가까이 만들어냈다는 자부심에 뿌듯한 마음을 안고 아내와 딸에게 품평을 부탁했다. 아주 제대로 굽지 않았냐는 내 말에 두 여자는 이구동성으로 한마디 했다.

"간장은 그럴 듯한테 만두는 좀 더 구웠어야지. 이건 굽다가 말았잖아."


뭔가 해냈다는 생각으로 의기양양하던 내게 찬물을 끼얹은 두 여자의 말에 나도 모르게 험한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너희들이 납작 만두 맛을 알아? 원조 맛을 보지도 못한 무지한 것들이 말이야. 겉바속촉은 만두소가 풍부한 만두에만 해당되는 거라고. 이 동네 음식점들 모조리 짝퉁이고 야매, 사쿠라거든(의도적 일본어 사용). 먹기 싫으면 먹지마. 저 박스 나 혼자 다 먹을 거야."


그날 이후 거의 매일 납작 만두를 구워 먹으며 어떻게든 어릴 적 먹었던 그 만두 맛을 찾아내고자 다양한 시도를 해봤지만 아직까지 그 맛을 찾아내는 데엔 실패했다. 이런 나를 두고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는 제대로 못먹고 살던 시절이라 더 맛있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일 뿐 다른 이유는 없을 거라 말했다.


지금도 딸아이는 그저 밀가루로 만든 얇은 떡이라 생각하고 아내는 각종 야채무침을 싸서 먹는 쌈 용도로만 생각하지만 내게 납작 만두는 단순히 몇 줄의 문장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추억들이 담겨 있는 음식 중 하나다. 


궂은 날씨가 아니면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리어카를 끌고 학교 앞을 찾아오시던 납작 만두 아저씨, 어느덧 그 아저씨의 나이가 되어 버린 지금, 오늘따라 그 옛날 교문 앞에서 아이들을 반겨주시던 아저씨의 모습이 유독 또렷하게 떠오른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이렇게 그 맛을 애타게 그리워하게 될 줄 알았더라면 미리 비법이라도 전수받았을 텐데 그게 너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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