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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Mar 13. 2023

빠져나올 수 없는 자기 검열의 늪

남에겐 눈치 보지 말라 이르고 나는 눈치를 보는 이중성이란

제주의 봄. 이제 제주도는 그만 가야겠다. 더 이상 갈 데가 없다. ㅎㅎ (이하 생략)

인스타그램에 올려진 지인의 게시물을 보고 0.00003초 정도 되는 짧은 시간 분노가 솟구쳤다가 이내 냉정을 되찾았다. 어쩌다 보니 이 나이 먹도록 제주도 한 번 가보지 못한 촌놈이라 유독 제주도 관련 글과 사진만 보면 예민한 반응을 보이던 나였다. 그런 나를 겨냥하고 쓴 글은 아니겠지만 그분이 쓴 한 줄의 글은 내게 상처를 안겨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꽈배기처럼 베베 꼬인 댓글을 달았겠지만 이제는 그분의 그런 글을 너무 자주 봐서 익숙해진 탓인지 잠깐의 생각 끝에 농담과 진담이 적절히 섞인 댓글을 달고 말았다.

"좋으시겠어요. 저는 훗날 죽어 뼛가루로 뿌려져 제주도 해안 어디쯤 닿는 것을 첫 방문으로 기록하는 것은 아닐지......"


따지고 보면 그분은 잘못한 것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고 생각나는 대로 그 감정을 글로 옮겼을 뿐이었다. 문제는 여전히 다른 사람에 대한 부러움을 떨치지 못하고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나 자신에게 있었다. 어차피 SNS 자체가 일상을 공유하는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인의 관심을 유도하고 자랑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은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그걸 알면서도 본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최근 들어 새삼스럽게 글을 쓰기가 힘들어졌다. 유명해지고 싶어서, 조회수나 댓글 같은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싶어서 쓰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버렸지만 여전히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내 글을 읽고 상처를 받거나 부러워할 소수의 사람들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것저것 다 신경 쓰다 보면 어떤 글도 쓸 수 없겠지만 글을 쓸 때마다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제한적인 시간과 한정된 공간에서 매일 비슷한 일상을 살고 있는 내게 주어진 글감이라고는 가게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과 아내와 딸에 대한 글들이 주된 소재일 수밖에 없는데 잊을만하면 슬며시 올라오는 생각이 나보다 더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에겐 내가 배부른 소리를 하는 것으로 보일까에 대한 걱정이다.


언젠가 한번, 아들 하나만 키우는 친구가 내 SNS에 찾아와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은데 딸 키우는 것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부럽다고 토로한 적이 있었다. 그 친구 입장에선 흘러가는 말로 한마디 던진 것이겠지만 그 후로 딸아이 관련된 이야기를 선뜻 꺼내기가 힘들어 한동안 그 얘기를 하지 못했었다.


지금도 글을 쓰기 전에 비슷한 느낌을 받곤 한다. 아내와 투닥거리는 모습을 쓸 때면 이혼을 하거나 사별을 한 사람들 눈에는 이마저도 행복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괜한 걱정을 하게 되고 가끔 딸아이에 관한 글을 쓸 때면 자녀를 낳고 싶어도 낳을 수 없는 사람이나 어린 나이에 자녀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사람들에겐 그런 투정조차 얼마나 상처가 될까 주저하고 망설이게 된다.


그렇다고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글감인 가족 얘기를 떼놓고 글을 쓰자니 남는 것은 내 일터인 편의점 관련 글인데 이 또한 출판업계에선 이미 레드오션이 된 지 오래된 터라 웬만한 소재나 필력으로는 읽는 이들에게 어필조차 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결국 식상한 글로 느껴질 것이 분명하기에 예전처럼 누가 보거나 말거나 내 맘대로 쓴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생각하고 글을 쓸 수는 없는 형편이다.


교훈이나 감동, 최소한 재미라도 줘야 한다는 강박관념, 최소한 독자들이 뭔가 생각할 수 있도록 화두 하나 정도는 던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편이기에 그저 편하게 일기장에 낙서하듯 글을 쓰고 싶지는 않은데 시간과 능력은 내 편이 아닌 듯 비협조적인 것이 지금의 솔직한 내 현실이다. 다른 사람들에겐 쓰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거침없이 당당하게 쓰는 게 맞다고 해놓고는 정작 나 자신은 이런저런 생각이 깊어지다가 하고자 하는 말을 다 하지 못한 채 대충 얼버무리다시피 마무리하는 일이 많다 보니 최근 들어 점점 내 글의 힘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고 있다.


어차피 이 또한 내가 견뎌내고 이겨내야 할 문제이고 정답을 찾을 수 없는 영역에 존재하는 문제지만 누군가 내 글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듯 조심스럽게 쓰는 게 맞는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내 글을 읽어주는 이들을 믿고 용기를 내며 계속 써나가는 게 옳은 일인지 여전히 모르겠다.


이왕 빠지게 할 것이라면 '나는 어쩜 이렇게 글을 잘 쓰는 것일까?'라는 착각의 늪에 빠지게 할 것이지 어쩌자고 심각한 자기 검열의 늪에 빠지게 한 것인지 글쓰기 신(神)이 그저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이런 기분으로 계속 글을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차가운 봄바람과 함께 내 마음에 들어와 쉽게 나갈 줄 모르는 지금 이 상황을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데 언제쯤이면 벗어날 수 있을 것인지. 

올해 봄은 내게 유난히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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