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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Jan 25. 2023

댓글 하나, 눈물 한 방울

이게 눈물 흘릴 일인가

'첫'이라는 관형사에는 묘한 설렘과 흥분, 그리고 때로는 아련함 같은 여러 가지 감정이 들어 있다. 첫사랑이 그렇고 첫 출근이 그렇고 첫 만남이 그렇다. 늘 그렇듯 그저 그런 날의 연속이지만 브런치 입성 두 돌이 다가오니 그 당시 생각들이 하나둘 떠오를 때가 있다. 첫 구독자, 첫 댓글, 첫 라이킷이라는 3관왕의 영광을 가져간 이는 오래도록 인연을 이어온 블로그 이웃이었다. 두 번째는 내 글에도 가끔 등장하는 거의 유일하게 남은 여사친 대학 입학 동기였고 세 번째는 이미 페이스북을 통해 인연을 맺은 꽤 유명한 작가님이셨다.


오늘 글의 주인공인 그녀는 내가 쓴 첫 글에 정확히 네 번째 댓글을 달아준 분이었지만 일면식도 없는 사람 기준으로는 첫 번째였다. 지금도 첫 글을 올렸을 때의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어디 내놓기에도 부끄러울 정도의 글을 올리는 게 맞는 것인가 막연한 두려움 속에 몇 번이나 갈등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후에야 겨우 올린 글이었다. 결과는 당연히 처참했다. 의도치 않게 받은 지인들의 라이킷과 댓글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낙담한 채 이틀이란 시간을 보내고 계속 글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구세주처럼 나타난 게 그녀였고 그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이후 그녀는 내가 올리는 글마다 댓글을 달지는 않았지만 한 번씩 찾아올 때만큼은 누구보다 성심성의껏 댓글을 달아 주었다.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그보다 내가 더 감동한 것은 그녀의 댓글이 항상 내가 독자에게 하고자 하는 마음을 정확히 꿰뚫는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글을 제대로 읽어주고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는 독자를 만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잘 알기에 그녀의 존재는 내게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처럼 느껴졌었다.


2년 전 브런치와 넷플릭스가 콜라보로 진행한 이벤트에서 스토리텔링 작가로 선정될 만큼 글쓰기에도 상당한 실력을 보였던 그녀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느낄 즈음 그녀는 홀연히 사라졌다. 가끔 '나 아직 죽지 않았소.'라고 외치듯 간간히 댓글을 달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글쓰기를 중단한 그녀는 작년 이맘때 글을 마지막으로 작품 활동을 전면 중단했다.


그랬던 그녀의 흔적을 다시 찾은 것은 최근 들어 오래전 발행한 글들을 재정비하는 작업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2021년 11월에 쓴 글에 달린 그녀의 댓글을 보는 순간 한참을 망설였다.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이미 잊고 지내는 사람에게 괜히 마음의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댓글 하나를 앞에 두고 수많은 생각이 오고 간 끝에 답글을 달기로 했다.


작가님 떠나신 그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집니다.
글을 안 쓰시더라도 다른 곳에서 바쁘게 잘 지내고 계시겠죠?
처음 브런치에 들어오고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는 상태에서 달아주신 작가님의 첫 댓글이 생각나네요. 어쩌면 그 댓글 하나가 지금까지 저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어준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문득문득 작가님이 생각날 때가 있어요.

지나간 글 돌아보다가 작가님께서 남긴 댓글을 뒤늦게 발견하고 이렇게 글 남깁니다.
어디 계시더라도 건강하고 행복하셨으면 해요.
다시 브런치로 오시면 더 좋겠고.

연휴가 시작되었네요.
설 명절 잘 보내시고 하시는 일 모두 잘 되기를 바랍니다.

작가님, 정말 보고 싶습니다.


마치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를 그리워하며 하늘을 향해 혼잣말을 하듯 답글을 달았다. 오랜 기간 활동을 중단하셨기에 답글을 기대하진 않았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1년도 더 지난 오랜 댓글에 답글을 단 지 사흘 만에 그녀의 답글이 달린 것이었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봤지만 그녀의 작가명이 분명했다. 따지고 보면 별 일 아닌 일임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살짝 맺혔다. 기억해 주고, 추억해 주고, 그리워해줘서 연초부터 행복하다는 그녀의 답글에 오히려 내가 더 행복해졌다.


그녀는 적어도 브런치 활동에 있어서만큼은 내게 특별한 존재였다.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단 두 줄로 된 짧은 댓글일 뿐이었지만 이틀 뒤에 달린 그 하나의 댓글은 내가 두 번째 글을 발행하는 데 있어 큰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만약 첫 번째로 올렸던 내 글에 달린 댓글이 지인들의 댓글 3개뿐이었다면 아마도 나는 다음 글을 발행하겠다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악플에 상처받아 6개월이란 긴 시간 공백을 가졌다가 돌아왔을 때도 그 누구보다 반겨준 이가 그녀였을 정도로 내가 브런치 생활을 하며 기로에 서 있을 때마다 그녀는 항상 든든하게 내 곁에 있었다.


그녀가 글쓰기를 중단한 지 1년 6개월이 넘었다. 한 번 멈추면 다시 시작하기 힘든 게 글쓰기인 만큼 그녀가 되돌아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1년 이상 글을 쓰지 않은 작가는 관심작가에서 제외'라는 나만의 브런치 원칙에서 그녀만은 예외로 두고 있다. 그것만이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그녀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떠날 때도 그랬듯 다시 돌아올 때도 홀연히 나타나주길 바란다. 그날을 위해 나는 한 방울이 아닌 한줄기 눈물을 준비하고 기다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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