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죽

by YS

수원에서 엄마랑 같이 살 때는 냉장고 속 냄비에 죽이 한가득 있으면 엄마가 위가 안 좋으시거나 입맛이 없으시거나 아프실 때였다. 가끔 아침에 간단히 먹는 걸 좋아하는 이웃집 점순이가 끓여놓을 때도 있지만. 자주는 아니었다.

그럴 때면 '엄마가 또 아프신가. 얼른 나으셔야 할 텐데.' 걱정하면서 죽을 먹고 출근하곤 했었다.

그랬었는데 독립하고 내가 먹으려고 준비하자니 기분이 희한하다.

앞서 내 글을 보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요린이였던 내가 요리가 늘었다. 진짜로. 울 집 식구들이 다 너무 고수여서 내가 묻혔던 거임. 나 엄마 딸 맞았어!


쌀은 미리 씻어서 불려놓았고 어젯밤에 냉동실에 소분해 놓았던 소고기를 미리 냉장실로 옮겨놓고 잤지요. 야채들만 썰어주면 끝!




사진 찍는다고 예쁘게 담아보았다. 원래는 스테인리스그릇에 고기 빼고 다 쏟아붓는다. 하나로마트에 끝날 때쯤 갔더니 야채 세일을 많이 해서 호박이랑 피망 하나씩 2000원 조금 넘게 샀다. 전에는 애호박 하나에 2000원 넘을 때도 있었는데 이 정도면 진짜 싼 거지.

불려놓은 쌀은 물을 따라내고 그릇에 옮겨 담는다. 죽은 쌀 1에 물 6이면 된다. 내가 머릿속으로 계량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다. 같은 그릇으로 물은 6번 넣는다!

자. 그다음에는 소고기를 키친타월 위에 올리고 살짝 싸서 손으로 툭툭 두드려서 핏기를 뺀다. 두세 번 해주고 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준다.(이 과정은 핏물이 낭자해서 무서우니까 찍지 않겠다)

그리고 인덕션에 불을 켜고 웍에 기름을 두른 뒤 소고기를 먼저 볶아준다. 어느 정도 익으면 야채도 볶아준다. 적당히 익었으면 국간장을 한 숟갈 넣고 쌀과 물을 부어준다.

쌀이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물까지 넣었더니 넘칠 것 같아 물을 5만큼만 넣었더니 보글보글 끓긴 하나 쌀알이 잘 풀어지지 않는 느낌이다.

웍에 가득 차 찰랑이는 것이 거의 4인 가족 먹을 양을 끓인 것 같다.

이제는 인내심과의 싸움이다. 불을 중불로 낮추고 열심히 저어준다. 타지 않도록. 보글거리며 쌀알이 위로 떠올랐다가 가라앉는다. 점점 부위를 넓혀가면서 열심히 끓고 있다. 쌀알이 딱 맞는 온도를 만나 결국 뽀얀 속살을 내보이길 바라며 나는 그저 젓고 또 젓는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속으로 외치며 주걱을 끝없이 휘젓다 보면 머릿속은 오로지 죽 생각뿐이다. 복잡한 고민이며 시끄럽던 생각들은 사라지고 없다.


쌀알아, 톡톡 터져서 뭉근해져라. 후후 불어서 한술 뜨면 속이 따땃해지고 마음도 풀어지는 죽의 모양새를 언제 갖추게 될까.




죽을 젓는데 내 몸은 자꾸 앞으로 기울어지고 날깨뼈 있는 부분은 왜 뻐근한 건데. 한 시간째 이러고 있는데 재료를 넘 많이 넣은 것일까. 아까 덜 넣었던 분량의 물을 넣고 나서야 죽의 느낌이 난다. 참 신기하다. 딱 알맞은 공간(물)이 있어야 그 틀을 벗고 속을 보이는구나. 작고 약해 보이는데 의외로 단단하구나 너. 감탄하는 사이에 점점 끈기와 진득한 농도가 맛있는 죽이 되었음을 알려준다.

이제 소금 간 조금, 참기름 한 번 휙 둘러주고 불을 끄면 된다.

드디어 탈출이다.


다음엔 정말 조금만 만들어야지. 어떻게 된 게 갈비찜이랑 비슷하게 걸리냐. 만든 죽 절반은 친해진 이웃집 가족한테 나눔 하고(독감 걸렸는데 봉사 활동하고 왔다는 얘기에 기함하고 챙겨 보냄) 마침 외출하고 온 내편이랑 같이 한 그릇씩 해치웠다. 본죽보다 맛나다고 한다. 뿌듯하지만 요리는 좀 쉬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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