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 20분, 출근길 버스는 밤새 눅눅해진 도시의 공기를 한껏 싣고 달린다. 덜컹거리는 차창에 이마를 기대면, 차가운 유리창 너머로 오늘 처리해야 할 엑셀 파일과 결재 서류들이 유령처럼 스쳐 지나간다. 사람들에 치여 좌우로 흔들리는 이 짧은 고립의 시간 동안, 나는 가방 깊숙이 든 낡은 수첩의 촉감을 확인한다. 회사 문을 여는 순간, 나는 문장을 짓는 사람이 아니라 오타 하나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무채색의 신입’으로 로그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의 나는 이름보다는 직급으로, 혹은 무색취미한 '저기요'나 '신입 씨'라는 호칭 속에 박제된다. 여덟 시간 동안 숫자의 칸을 메우고 서류의 여백을 다듬는 긴장을 견디고 나면, 내 안의 색채는 바닥까지 마모되어 잿빛이 된다. 하지만 퇴근 인사를 마치자마자 향하는 두 번째 목적지, 요양보호사 학원의 문을 열면 공기의 온도부터가 급격히 변한다.
"보라 씨, 왔어? 여기 앉아서 이것 좀 먹어봐."
학원 동료들이 나를 부르는 이름은 본명이 아닌 ‘보라’다. 출석부의 딱딱한 이름 대신 나를 정의하게 된 이 별칭의 시작은 실로 싱거웠다. 서먹함이 감돌던 첫 수업 날, 누군가 내 보라색 바지를 보고 툭 던진 한마디가 발단이었다.
"그 보라색 옷 입은 분, 이름이 뭐예요? 색깔이 참 잘 어울리네. 꼭 자기 이름 같아."
그날 이후 나는 동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보라’가 되었다. 회사에서 불리는 이름이 서늘한 긴장감을 주고, 집에서 불리는 ‘엄마’라는 이름이 묵직한 책임감의 무게라면, 이곳에서의 ‘보라’는 오로지 다정함으로 빚어진 온도였다. 사람들은 내가 낮에 어떤 전쟁터에서 구르다 왔는지, 내 가슴속에 어떤 슬픔을 품고 사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내가 입은 옷의 색깔을 먼저 봐주었고, 그것을 기분 좋은 호칭으로 불러주었다.
휠체어를 밀고, 기저귀를 가는 법을 배우는 투박하고 고된 실습 현장 속에서도 누군가 "보라 씨, 이쪽 좀 도와줘요"라고 말하면 묘한 생기가 돌았다. 숫자로 가득 찬 엑셀 시트 위에서 잃어버렸던 나의 색깔이, 타인의 따뜻한 목소리를 타고 다시 내 뺨 위로 번지는 기분이었다.
엄마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빛깔
밤 10시가 넘어 현관문을 열면, 고1 아들의 큼지막한 교복 가방이 거실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방문 너머로 들리는 낮은 베이스 음은 아들이 자기만의 세계에 몰입해 있음을 알린다. 어느덧 내 키를 훌쩍 넘긴 아들의 넓어진 어깨를 볼 때면 기특함과 함께 묘한 소외감이 찾아들곤 한다.
"아들, 엄마 오늘 학원에서 뭐라고 불렸는지 알아? 사람들이 보라색 잘 어울린다고 '보라'라고 부른대. 예쁘지?"
슬쩍 던진 말에 아들은 헤드셋을 내리지도 않은 채 "뭐야, 유치하게. 초등학생이야?"라며 피식 웃는다. 하지만 무심한 척 내미는 아들의 손에는 새로 산 문제집 대신 내가 식탁에 두었던 간식 접시가 비워져 있다. 아들에게 나는 여전히 밥을 챙겨주는 존재이자 안식처인 '엄마'이겠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 '보라'라는 예쁜 색깔로 기억되는 독립된 존재라는 사실이 나를 조금 더 당당하게 세워준다.
일상의 틈새에서 피어나는 문장들
모두가 잠든 자정, 드디어 식탁 앞에 앉아 낮에 만지작거리던 수첩을 펼친다. 나는 맨 윗줄에 '보라'라는 단어를 정갈하게 적어본다. 나의 시는 거창한 철학이나 대단한 은유를 찾아 헤매지 않는다. 그저 첫날 입었던 바지의 색깔처럼, 그리고 나를 다정하게 불러주던 동료들의 투박한 손길처럼, 일상의 아주 작은 틈새에서 피어나는 빛깔들을 성실히 기록할 뿐이다.
내일 아침이면 나는 다시 이름표를 갈아 끼울 것이다. 무채색의 회사원이 되어 만원 버스에 몸을 싣고,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아침 국을 끓일 것이다. 하지만 내 가방 속에는 그날의 보라색 온기를 머금은 문장들이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다.
세 번의 환승을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더 이상 잿빛이 아니다. 나는 보라였다가, 엄마였다가,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