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뒤에 붙은 '작가 님'이라는 낯선 다정함

by 뽀송드림 김은비

오후 6시 10분, 요양보호사 학원 강의실의 공기는 낮 동안의 열기와 수강생들의 고단함이 섞여 묘하게 눅눅했다. 그곳에서 나는 시를 쓰는 사람보다는, 국가 자격증이라는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꺼운 교재를 파고드는 수강생 중 한 명일 뿐이었다.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기저귀 가는 법과 노인 심리를 암기하는 나의 일상은 여느 이들과 다를 바 없는 무채색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쉬는 시간마다 조용하던 내 책상 위로 낯선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옆자리에서 함께 사탕을 나눠 먹던 동료분들이 가방 깊숙한 곳에서 조심스레 내 시집을 꺼내 내밀기 시작한 것이다.

"사인 좀 해줘요, 작가 님."

'작가님'이라니. 낮에는 회사에서 '신입'으로 불리며 서툰 업무에 진땀을 빼고, 저녁엔 집으로 달려가 '엄마'라는 이름으로 가족의 끼니를 챙기는 나에게 그 호칭은 몸에 맞지 않는 화려한 외투처럼 어색하기만 했다. 당혹감에 몸을 움츠리는 나를 보며, 그들은 수줍게 웃었다. 하지만 내밀어진 시집의 모서리는 이미 누군가의 손때가 묻어 둥글게 닳아 있었고, 책장을 넘기는 그분들의 투박한 손길은 갓 태어난 아이를 다루듯 정성스러웠다.

"시를 읽는데, 꼭 나 한 사람을 위해 써준 서시 같더라고요. 참 애틋해."

"글마다 울림이 있네. 이 한 줄 쓰려고 밤마다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다 느껴져요."

타인의 고통을 돌보고, 무너져가는 생의 끝자락을 지키기 위해 모인 분들. 그분들이 내 서툰 글귀에서 '애틋함'과 '울림'을 읽어냈다는 사실에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졌다. 그분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계신 것이다.

누군가의 굽은 등을 닦아주는 돌봄의 행위나,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 시를 쓰는 일이나, 결국은 내 안의 가장 귀한 것을 꺼내어 타인에게 기꺼이 건네는 일임을 말이다.


온라인 쇼핑몰의 차가운 판매 지수나 "배송 완료"라는 무미건조한 알림보다 나를 더 뜨겁게 만든 것은, 형광등 아래서 함께 시험공부를 하던 이들이 건넨 투박하고도 진한 감상평이었다. 누군가에게 내 시가 '살아갈 힘'이 되었다는 그 짧은 고백은, 내가 밤마다 외로움과 싸우며 꾹꾹 눌러쓴 기도들이 헛된 공중분해가 아니었음을 증명해 주었다.

사인하는 내 손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화려한 서점 매대 상단에 놓여 있지는 않을지언정, 내 시집은 누군가의 낡은 가방 속에서, 혹은 저녁 식사가 끝난 뒤의 고요한 식탁 위에서 비로소 진정한 생명력을 얻고 있었다. 이름 없는 신입 작가의 서툰 진심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손길을 가진 이들의 마음속에 한 줄기 빛으로 고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들에게 말해줄 새로운 소식이 생겨 발걸음이 가벼웠다.

"오늘 엄마 친구들이 엄마 시를 읽고 참 마음이 따뜻해졌대. 엄마 보고 작가님이래."

온라인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보다 내 마음을 더 오래 붙잡는 건, 사인해 달라며 수줍게 시집을 내밀던 동료들의 갈라진 손마디다. 대단한 문학상을 받은 작가는 아닐지라도, 누군가의 고단한 가방 속에 쏙 들어가 그들의 지친 하루를 쓰다듬는 시집을 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오늘 나의 퇴근길은 꽤 근사한 완성형이 된다.

거울 속의 나는 여전히 실수투성이 신입사원이자 앞치마를 두른 엄마일 뿐이지만, 내 시의 온기를 알아봐 준 이들의 다정한 호명 덕분에 나는 다시금 펜을 쥘 기운을 얻는다. '작가님'이라는 그 짧고도 무거운 다정함이, 오늘 밤 나를 다시 시인으로 살게 한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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