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에 비친 얼굴을 보며,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을 읽어내던 순간이었다. 깊어진 눈매를 보며 문득 '참 멀리도 돌아왔구나' 하는 탄식이, 동시에 나지막한 위로가 되어 가슴을 울렸다.
가난했던 집안의 장녀, 공부도 마음껏 할 수 없었던 환경. 어린 시절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그저 입을 꾹 닫고 공책 구석에 낙서만 하던, 존재감 없는 조용했던 여자애였다. 마음속으론 늘 글을 쓰고 싶어 했지만, 문예창작과 같은 곳은 감히 꿈조차 꿀 수 없는,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생계를 위해 뛰어들었던 알바, 기술이라도 배워야 한다며 전전했던 직업학교, 그리고 쉼 없이 이어졌던 생계형 취업까지. 그렇게 숨 가쁘게 살다 보니 어느새 내 이름 뒤엔 '주부', '경단녀', '시간제 아르바이트생' 같은 꼬리표만 주렁주렁 달렸다. 하루하루 살아내기 급급한 워킹맘으로 살면서, 내 꿈 같은 건 진작에 마음속 깊은 곳에 봉인해두고 잊고 산 줄 알았다.
하지만 인생은 참 알 수 없는 법이다. 중학생 아들이 사춘기를 겪으며 방황하고 흔들릴 때, 아이를 다잡아주던 내 마음속에서도 낡고 빛바랜 불꽃 하나가 다시 일렁였다.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갈망. 그때는 무슨 용기였을까. 홀린 듯 야간 대학의 문을 두드렸고, 일과 가정, 학업을 병행하느라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덧 3학년이 되었다.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 내보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솔직히 현실은 막막했다. 이름 없는 초보 작가에게 기획 출판은 먼 나라 일이었고, 팍팍한 살림에 출판 비용은 너무나 무겁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어쩌겠나. 내게 남은 건 잃을 것 없는 두둑한 배짱이랑, 꿈을 이루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밖에 없는걸.
서툰 솜씨로 밤마다 눈을 비벼가며 직접 글을 쓰고, 기획하고, 디자인까지 했다. 전문적인 기술이 없으니 화려함이라고는 눈 씻고 봐도 없다. 표지도, 내지도 참 수수하다. 그런데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그것은 마치 추운 겨울을 견디고 얼어붙은 땅을 뚫고 올라온, 작고 연약한 연둣빛 새싹 같다. 투박해서 오히려 더 나 같다.
그래, 이 책은 딱 나 같은 신입 작가의 시집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싱그럽고 풋풋한 나의 첫 시작. 오늘은 거울 속의 나 자신에게, 그리고 묵묵히 여기까지 걸어온 내 손을 맞잡고 말해주고 싶다. "정말 고생했다고, 여기까지 오느라 정말 장했다고." 이 수수한 시집이 세상에 나와 나처럼 작은 꿈을 꾸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