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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ie Dec 27. 2020

그는 집과 사랑에 빠진 거에요

집, 건물, 공간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 

《그랜드 디자인 Grand Designs》에 대해서는 예전에도 한 번 쓴 적이 있었다. (참고글: 집 지으시려면 꼭 이걸 보세요전반적으로 모든 에피소드가 재미있지만 그 중 가장 기억에 강렬하게 남는 에피소드는 시즌 10의 '급수탑 프로젝트(London Water Tower)'이다. 


런던 Lambeth 지역에 있는 이 급수탑은 1800년대 중반 빅토리아 시대에 지어진 곳으로, 유적지로서의 가치를 갖추고 있는 곳이다. 딱 봐도 우와, 싶은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이 있고 센트럴 런던에서는 드물게 높이 지어진 건물이다.  


게다가 런던 중심가에 가깝기 때문에 -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 근처이고, 한국인 유학생들도 많이 사는 엘리펀트&캐슬 지역 옆이기도 하다 - 케빈 맥클라우드와 건축주 리&그레이엄이 올라갔을 때 멀리서 빅벤이 보이기도 한다. 마치 버려진 조선 시대의 봉화대를 개조해서 집을 만들려고 하는데, 올라가 봤더니 남산 타워가 가깝게 보이더라. 이런 느낌일까. 

유튜브 영상 캡처

그러나 이 급수탑을 개조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다 허물어져 가는 건물인데다, 꼭대기에 있는 무거운 물 탱크를 지탱하기 위한 벽의 두께때문에 붕괴 위험에 처해 있기까지 하다. 심지어 이들은 건물을 매입하고 나서는 돈도 별로 없다!  「돈이 없어서 친구가 50만 파운드를 빌려줬죠.」 -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건축주들.. 


일단 오랜 세월 동안 쌓인 폐기물과 새똥을 청소해야 했다. 그리고 건물을 제대로 들여다 보니 벽돌 사이에 자란 잡초들 때문에 간격이 벌어져 금방이라도 망할 것 같았다. 그래서 벽돌을 하나하나 들어내서 잡초를 제거하고 다시 얹는 작업을 해야 했다. 시공사 직원들의 눈물이 느껴진다 

최종적으로 리모델링된 빅토리아시대 급수탑
제일 윗층에서 바라본 런던 시내 풍경 (구글맵에 공개된 버전)


건물의 가치 보존, 그리고 아름다운 복원을 위해, 최종적으로는 30억원에 가까운 돈이 들어가며 심지어 그 일을 8개월 안에 해내야 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데다가 심지어 완성된다고 해도 그리 실용적이게 보이지도 않는 이 프로젝트를 도대체 왜 하려고 할까? 수많은 문제점을 지적해 주던 어떤 사람이 말한다. 

그들은 이 건물과 사랑에 빠진 겁니다.
그리고, 건물도 사랑에 빠진 사람을 필요로 하죠. 


나는 이 말이, 《그랜드 디자인 Grand Designs》에 나오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랑에 빠진 대상은 건물이 될 수도, 땅이 될 수도, 혹은 동네가 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더 넓게는, 집을 사고, 집을 짓고 고치고 수리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이 곳에 한 눈에 반했어요. 어쩐지 이 집이 저를 당기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보자마자 이 집이라고 생각했어요. -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에 대한 경험에 대해 고백할 때 사용하는 말들이다. 


자신의 집, 공간을 사랑하고 애정을 쏟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프로그램, 《그랜드 디자인 Grand Designs》이다. 그러니 다른 시즌도 얼른 공개해 주세요 넷플릭스 :)


+ 참고로 저 급수탑은 Osborne Water Tower House이며, 유튜브 댓글을 신뢰할 수 있다면 2018년 기준으로 3백만 파운드(45억원) 이상의 가치로 매겨졌다고 한다. 아마도 2019년쯤에 매물로 나온 적이 있는 것 같지만 팔리지는 않았고, 에어비앤비로 아주 잘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나도 가 보고 싶다! 그러나 찾아보니 코로나때문인지 원래 그랬던 건지 모르겠지만 이미 내년 가을까지 예약 가능한 날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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