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등산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저처럼 아기를 업고 다니는 분을 발견했습니다. 어제 오후 북한산 둘레길 9코스를 걸은 후 진관사 쪽으로 되돌아가는 길이었는데요. 저는 여느 때처럼 11개월 쪼꼬미 사또(=아기)를 가마(=아기 캐리어)에 태우고 등에 둘러멘 뒤 터벅터벅 걷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보면 사또 얼굴이 제 머리 위에 뿅 솟아 있었고, 그 위로 30cm 높이의 햇빛 가리개까지 낭창낭창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지요. 인근 식당에서 삼겹살을 구워드시는 어르신들이 '저것 참 진귀한 풍경일세'하는 표정으로 저희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고, 저도가마꾼 미소로 화답하며 모퉁이를 돌던 때였습니다.
낭창낭창.
응? 저 멀리서, 저 말고 또다른 낭창낭창이우아한 아우라를 내뿜으며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제 가마는 촌스런 새빨강이라 누가봐도 느낌이 '낭창!낭창!'인데, 그 가마는 톤다운 된 잿빛의 고급진 '낭창.낭창.' 이더군요. 아니, 가마가 저렇게 있어보일 수 있다니. 가까이 오면 꼭 브랜드명을 확인하고 말리라. 저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멀리서 다가오는 가마꾼님 등쪽을 바라봤습니다.
엇. 근데 그 분 등 뒤에 아기가 없더군요. 허공을 휘휘 가르는 저낭창낭창한 존재는 햇빛가리개가 맞는데. 가마가 아닌가? 설마 일반 배낭인가? 갑자기 맥이 탁 풀렸습니다.그럼 그렇지. 가마가 저렇게 고급진 느낌으로 빠졌을 리가 없지. 급 실망한 저는 애꿎은 빨간 가마를 괜히 고쳐메고 가던 길을 다시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두살배기로 추정되는 아기가 그 등산객의 다리 뒤에서 짠 나타나더군요. 뒤에서 아빠 보폭을 따라 사뿐사뿐 걷고 있었습니다. 아기가 직접 행차하고 싶어서 잠시 가마에서 내린 것이었죠. 가마꾼을 배려하는 너른 아량의 사또라니! 저는 그 쪼꼬미 사또가 제 옆을 지나갈 때까지 아장아장한 걸음을 흐뭇하게 지켜봤습니다. 하... 이 세상 모든 사또들은 왜 이렇게 다 귀여운 거야. 볼을 꼬집어주고 싶네 아주.
그렇게 한동안 넋나간 가마꾼 미소로 바라보다, 까맣게 잊고 있던 미션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아 맞다. 브랜드명! 뒤늦게 두 눈을 치켜뜨고 온 시력을 끌어모아 봤지만, 고급진 그레이 가마는 이미 저 멀리 총총 사라진 뒤였습니다. 사또의 귀여움에 눈이 멀어 중요한 미션을 놓치다니...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가마꾼 동지님께 가마 브랜드가 뭐냐고 여쭤볼까 했지만, 그러기엔 그 분의 걸음은 축지법 수준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북한산을 이미 수백 번 오르내린 고수님이거나, 아니면 빨리 육퇴하고 싶은 K-아버님인 것 같았습니다. 둘 중 어느 분이시든 간에 그런 분을 뒤쫓아가 시시콜콜 물으며 시간을 끄는 건, 같은 가마꾼끼리 상도의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모든 가마꾼의 퇴근 시간은 소중하니까요.
문득 예전에 읽었던 신문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한국인들은 뒷동산 오를 때도 에베레스트 등반 복장으로 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 중요한 건 장비가 아니지. 지금 있는 가마나 잘 활용하자. 장비 욕심 내면 밑도 끝도 없어. 그렇게 전 저의 정겨운 가마를 고쳐메고 저희 집 사또님 용안을 체크한 후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비록 제 고개는 자꾸 좌우로 두리번 거리며 누군가를 찾는 듯 했지만, 제 마음은 흔들림 없이 북한산만을 향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