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업고 도심에 가면 생기는 일

feat.가마꾼

by 아삼삼

아기 캐리어라는 게 있습니다. 아기를 업고 등산하기 수월하게 만든, 배낭처럼 생긴 가방인데요. 일반 아기띠로 아기를 안거나 업는 것보다, 감상 10배 이상 이목이 쏠리는 아이템입니다. 아기가 부모의 등 위로 앉을 수 있게 이 설계되어 있어서 아기 얼굴이 제 머리 위로 뿅 나타나는 데다, 아기 머리 30cm 위로는 햇빛 가리개까지 낭창낭창 움직이거든요. 멀리서 보면 거대한 배낭 같고, 가까이서 보면 사또의 행차 같은(?) 존재감이 꽤 큰 아이템이지요.


아이템에 아기를 태우면, 의 아니게 또를 업은 가마꾼 니다. 그렇게 전 제도 자발적 가마꾼이 되어 인왕산에 다녀는데요. 무악재 하늘다리에서 출발해 수성동 계곡으로 내려는 코스였는데, 상에. 스스로 가마꾼임을 잊을 정도로 탄복했습니다. 온통 봄꽃 세상이더라고요. 개나리와 산수유 꽃망울, 그 수천, 수만 개 노란 빛이 잘 튀겨진 팝콘처럼 팡팡 튀어나왔는데 어찌나 아름답던지요. 특히 오르막 구간의 중턱에 있던 인왕정에서 본 개나리꽃은 폭포수처럼 와르르르 쏟아질 듯 너무나 매력적이었습니다.


인왕정에서 바라본 개나리꽃. 폭포수같이 와르르 쏟아지는 노란 꽃망울을 배경으로 쪼꼬미 새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by 아삼삼


그렇게 꽃도장을 눈에 잔뜩 찍는 즐거운 산행을 한 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던 때였습니다. 정류장 위치는 광화문 인근의 경복궁역 옆었는데, 문득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습니다. 하기사 퇴근 무렵 직장인들로 우르르 몰리는 서울 한복판에 아기 업은 등산객은 저 하나뿐이니 눈에 띌 수밖에요. 산에서는 어르신들의 시선을 딱히 느낄 겨를도 없이, "이야. 아기랑 같이 왔네!"라는 식의 음성 지원이 먼저 들렸는데, 도심에선 정반대였습니다. 음소거 처리 된 시선들이 먼저 느껴졌요.


'어머, 저 아기 엄마 봐봐', '세상에. 엄청 큰 배낭인 줄 알았는데 등에 아기가 업혀 있어', '아기 귀엽다', '근데 저 엄마는 가마꾼 같아(?)' 등등. 귀로 들리진 않았지만, 다들 충분히 그럴 듯한 표정으로 제게 텔레파시를 열심히 보내주고 계시더라고요. 뭔가 신기하거나, 희한하거나, 때로는 반가운 눈망울로 속닥속닥. 산에서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는데, 혼자 등산복 입고 직장인들 틈바구니에 놓이니 은근히 쑥쓰럽더라고요. 그 넘치는 관심에 어색한 염화미소, 아니 가마꾼 미소로 화답하며 황급히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렇게 조용조용 음소거로 잘 넘어가던 관심은, 버스에서 내리려던 순간 폭발습니다(?). 사람이 가득 찬 만원 버스인지라 기사님이 막판에 하차하던 저를 발견하지 못하고 문을 살짝 닫으신 게 발단이었는데요. 전 그냥 '벨 누르면 기사님이 알아서 열어주시겠지' 하고 벨만 누르고 있었는데, 40대 여성 분이 저를 대신해 황급히 외쳐주신 게 감사한 화근(?)이 됐어요. "아저씨! 멈춰주세요! 아기가 못 내렸어요!" 이 외침이 바로 그것이었지요.


순간 버스 안의 시선이 제게로 꽂혔습니다. 그 시선들 중에는 '저 여자가 아기야...?'라는 시선도 있었지요. 그렇다고 제가 등 뒤에 가려진 아기를 심바처럼 꺼내 들고 "저 말고 얘가 아기예요!"라고 외칠 수도 없고 답답한 노릇이었지요. 기사님이 문 열어주시는 그 찰나의 순간이 어찌나 길던지. 불과 몇 초만에 후텁지근해졌던 그 때 뒷문이 열리면서 저는 도망치듯 후다닥 내렸습니다.


분에 넘치는 관심에서 벗어나 터덜터덜 걸어가던 그 때, 저를 위로해준 또다른 관심이 나타났습니다. "우와~ 아기 엄청 멋지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세살배기 여자아이가 고사리같은 손으로 저희 아들을 가리키며 건넨 낭랑한 인사였어요. 아이 입장에서야, 저희 아기가 그저 높은 공중의자에 앉은 것만으로도 멋져 보이니까 그렇게 말한 거겠지만, 듣는 입장에선 그 쪼꼬미의 생각이 귀엽기도 하고, 또 가마꾼으로서 내심 보람차기도 해서 웃음이 절로 나오더군요. 그래서 활짝 웃으며 화답했습니다. "아기가 멋지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그저 아기를 업고 다녔을 뿐인데, 제 소소한 일상이 이렇게 다양한 관심을 받을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산에서는 어르신들의 따뜻하고 유쾌한 배려 덕분에 등산의 즐거움이 한 뼘 더 커졌고, 도심에선 도심 나름대로의 관심 속에 재밌는 에피소드도 얻고 있으니까요. 아기를 업을 때도 이 정도인데, 하물며 아기랑 같이 걸어다니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제 일상에 찾아올까요? 선의에서 비롯된 찰나의 관심을 부담이 아닌 배려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낙낙한 그릇. 일단 수많은 이야기를 받아들이기에 앞서, 그것부터 잘 갖춰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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