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업고 등산하면 생기는 일

Feat. K-인심

by 아삼삼

혹시 아기를 업고 등산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최근에 야트막한 동네 뒷산과 북한산 일대에서 몇 번 시도를 해봤는데요. 와... 처음엔 정말 흙바닥에 그냥 드러눕고 싶더군요. 가쁜 숨도 숨이지만, 허리가 아프고 허벅지도 터질 것 같더라고요. 제 몸무게 하나도 건사하기 벅찬 체력인데, 10kg이 넘는 쪼꼬미 아들을 등에 태우고, 배낭처럼 생긴 3kg짜리 아기 캐리어까지 짊어지니, 절로 곡소리가 나더라고요. 순전히 11개월 된 아기와 단둘이서 할 수 있어서 시작한 운동인데, 제 너절한 체력 기준으로는 마치 태릉선수촌에 입촌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서너 번쯤 더 오르니 확실히 처음보다 수월해지더군요. 그러면서 슬슬 풍경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흙길이 이렇게 고즈넉했나. 이 새소리는 또 뭐지. 어느 순간부터는, 제 등에 업힌 아들에게 "이건 나무야~ 저거는 날아다니는 새~"라고 주변 풍경을 설명하며 올라가는 여유도 생기더라고요. 분명 허리와 허벅지에는 여전히 힘이 빡 들어가있는데, 이전만큼 벅찰 정도는 아녀서 새삼 신기했습니다. 역시 살이 찌면 체력도 찌나? 금방 뒷산 고도에 적응했군. 뭐 이런 출처 불명의 효능감도 들더군요.


또 다른 변화도 찾아왔습니다. 처음 뵙는 동네 어르신들이 저와 아들에게 인사를 건네시더라고요. "아이고~ 아기가 귀엽네", "아기가 벌써 등산 맛을 알아?", "엄마가 힘들겠네", "조심히 내려가요" 등등. 제가 3년 넘게 이 동네 살면서 들었던 인사보다 등산에 익숙해진 3일간 들었던 인사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심지어 어떤 할아버지는 제게 "엄마, 화이팅!"이라며 주먹 인사도 해주시더군요. 아니, 그저 아기를 업고 왔을 뿐인데 생면부지의 어르신이 주먹 인사까지 해주시다니. 한 편으론 몸둘 바를 모르겠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마치 스스로 동네에 출마한 구의원 후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 절로 웃음이 났습니다.

은근히 쌀쌀했던 어느 날엔 이런 일도 있었어요. 요즘에야 수시로 아기 등과 다리를 매만져보기도 하고, 거울로 아기 얼굴을 확인해가며 컨디션을 체크하곤 하는데, 그 때는 초행길이나 다름 없어서 경황이 없던 때였습니다. 제 딴에는 아기 옷을 여러 겹 입힌다고 입혀놓고 산을 오르고 있었는데, 저도 모르는 사이 아들의 맨다리가 드러났었나봐요. 그 때 마침 귀인처럼 나타난 어르신이 "아이구! 아기 다리 춥겠다! 엄마가 봐야겠어"라고 알려주셨어요. 헛. 놀란 마음에 돌아보니, 아들의 맨들맨들한 종아리살이 훤히 드러나있었고, 바지와 내복은 무릎 위로 돌돌 말려 행진 중이더군요. 어르신께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한 후 황급히 옷매무새를 다듬어줬습니다.

또 한 번은, 저와 아기가 정상에 올라 잠시 숨 돌리고 있을 때 50대쯤으로 보이는 일행 분들이 "어머, 아기가 너무 귀엽다"며 한 발짝 다가오셨어요. 저도 아들한테 "감사합니다 인사해야지~" 얘기하며 웃고 있었는데, 그 일행의 다른 분이 "아이, 우리가 가까이 가면 안 돼. 흙먼지가 아기한테 갈 수도 있어"라며 일행 분을 자제시키시더라고요. 사실 처음 보는 아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도 고마운 일인데, 발걸음 하나까지 조심해주시는 그 마음이 참 감사했습니다. 또 어떤 60대 아주머니는 제게 조근조근 "우리 동네에 3살배기 된 아기 데리고 오는 엄마도 있더라. 둘이 어쩌면 만날 수도 있어"라며 등산 친구의 존재를 귀띔해주시기도 했는데, 모두 다 하나같이 정겹고 따뜻하게 느껴졌어요.

처음엔 그저 복직 전에 체력도 키울 겸 아기에게 콧바람도 쐬어줄 겸 시작한 등산인데, 이렇게까지 넘치는 K-인심을 받고 감복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 인심을 받을 때는 어디 가만히 있을 수 있나요. 감사하다고, 고맙다고, 웃으면서 맞인사를 드려야죠. 그러니 자연스럽게 제 하루는 일단 등산만 했다하면, 자동으로 감사할 일이 차고 넘치는 하루가 됐습니다.


"Your attitude, not your aptitude, will determine your altitude. (당신의 적성이 아닌, 당신의 태도가 당신의 고도를 결정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자기 계발과 관련한 이 명언을 좋아하는데, 이 말은 딱 등산에도 들어맞았습니다. 처음엔 한 발자국 오르는 것도 벅차하던 제가 이젠 제법 수월하게 정상까지 오르게 된 건, 그 짧은 기간에 체력이 좋아졌다기 보다는 동네 분들의 인심에 등산이 한뼘 더 즐거워진 영향이 거든요. 그래서 좀 뜬금 없지만 날이 좋으면 좋은대로, 궂으면 궂은대로 우리 모자에게 따뜻한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갑자기 영상 편지 느낌으로) 선생님들, 어르신들! 감사해요. 앞으로도 등산하면서 자주, 반갑게 뵈어요!





※ 대문 사진 : 쪼꼬미 아들을 업고 올랐던 행주산성에서 바라본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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