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쪼꼬미 아들을 키우며 드는 생각. 우리 아들은 요즘 '인생 첫' 걸음마를 시작했고, '인생 첫' 숟가락 잡고 밥 먹기에 성공했다. 얼마 전에는 '인생 첫' 샤인머스캣과 귤을 맛 봤고, '인생 첫' 빨대컵으로 물 마시기에도 성공했다. 먹는 것도 인생 최초, 기어다니다 걷는 것도 인생 최초, 심지어 물똥 싸다 된똥 싸기 시작한 것도 인생 최초다. 아들이 매일 아침 눈 뜰 때마다 맞닥뜨리는 것은, 늘 무엇 하나 최초 아닌 것이 없는 새로운 삶이다. 전부 다 처음이다.
만약, 마흔을 앞둔 내가 날마다 인생 최초를 맞닥뜨려야 한다면 어떨까. 아침에 이불 밖을 나서는 순간 난생 처음 보는 옷을 입고, 난생 처음 가본 길로 출근한 뒤,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일을 하며, 난생 처음 보는 음식을 먹는다면? 음... 아마 그냥 이불 안에 있고 싶지 않을까. 새롭고 낯설고 설레고 두근거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그러면 아마 미치고 팔짝 뛸 것이다.
그런데 그 환장할 노릇을, 쪼꼬미 아들은 매일 눈 뜰 때마다 하고 있다. 기어가는 것에 겨우 익숙해졌더니, 엄마라는 인간이 자꾸 서보라며 물개박수친다. 살짝 기대에 부응해줬더니, 대뜸 걸어보란다. 귀찮다고 손 흔들었더니 잼잼, 곤지곤지 같은 알 수 없는 수신호를 보낸다. 싫어서 울어댔더니 난생 처음 듣는 음악을 켜고는 난생 처음 보는 간식을 입 안에 구겨 넣곤 씨익 웃는다. (쓰다보니 상당히 미안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처음은 누구에게나 특별하다. 우리의 유한한 인생에서 처음은 늘 단 한 번뿐이니까. 그래서 온갖 단어 앞에 '처음'이 붙으면 그것이 없을 때보다 최소 곱절은 더 특별해 보인다. 마치 첫눈과 첫사랑처럼. 그런데 우리가 살면서 겪어온 수많은 처음들을 생각해보면, 사실 태어난 순간부터 5살 전후 어린 나이에 집중적으로 일어난 일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인생의 특별한 순간의 주인공들이었음에도, 그 순간들을 오롯이 기억해내지 못한다. 내가 언제 처음 엄마, 아빠라고 어눌하게 발음했는지, 내가 언제 처음 할머니 할아버지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진짜, 너무 처음이었으니까.
그러니 어쩌면 아이의 특별한 순간은, 부모에게만 주어지는 특권같은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아이 챙기랴 집안일 챙기랴 회사 다니랴 가뜩이나 정신없는 일상이지만, 그럼에도 아이의 모든 처음들은 오롯이 부모의 눈에 담긴 채 고이고이 기억되니까. 훗날 아이는 기억하지 못할 그 때의 추억을, 엄마와 아빠는 두고두고 말해주고, 또 알려줄 테니까. 우리 아들도 크면 지금 겪은 처음들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 3~4년 간 겪을 수많은 일들도 다 난생 처음 듣는 일이 될지 모른다. 그러니 아들의 이 특별한 순간들을 허투루 흘리지 말아야지. 빨대컵으로 물 마시고는 놀라서 잠시 벙쪄있다 씨익 미소 짓는 순간도, 샤인머스캣의 달달함에 코 찡긋하며 야무지게 먹는 모습도 내게는 다 특권이자 선물 같은 시간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