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그려준 '육아휴직맘'
AI가 앞당긴 '완전 무결'의 시대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의 그림, 보이시나요? 이 그림은 이틀 전 토요일자 중앙일보 1면에 실린 사진입니다. 텍스트를 입력하면 그에 따른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인공지능 시스템 미드저니(Midjourney)가 40초만에 그린 신라의 선덕여왕이라고 합니다. 여인의 모습을 보면 관 모양이나 화장도 그렇고, 얼핏 일본의 게이샤나 중국의 경극 배우 같기도 한데요. 선덕여왕과 비슷한지 여부를 떠나, 색감과 그림체 등 전체적인 느낌만 본다면 꽤 그럴듯 하지 않나요? 이 그림을 AI 작품이라고 누가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면 사람이 그린 걸로 착각할 정도로 꽤 섬세합니다.
AI 미드저니(Midjourney)가 40초만에 그린 선덕여왕. 중앙일보 문소영 기자. (링크는 하단에)
이 그림은 중앙일보 문소영 기자가 “선덕여왕, 한국의 고대왕국 신라의 여왕, 붉은 한복 의상과 신라 금관 착용, 아르누보 화가 알폰스 무하 스타일로”라는 문구를 영어로 입력하고 이 결과물을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미술을 모르는 미알못이긴 하지만, 과거 체코 프라하의 무하 박물관에서 그의 작품을 본 적이 있는 사람으로서는 '정말 무하 스타일로 그린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골똘히 바라보다, 문득 AI의 무궁무진해보이는 능력을 직접 시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실행에 옮겼습니다. Midjourney라는 앱을 찾아 휴대폰에 깔고서, 지금의 저를 형용하는 표현들을 입력했습니다. 처음에는 "바쁘고 지친데 아이와 함께해서 행복한, 휴직 중인 한국의 여기자"를 그려봐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래의 그림을 보여주더군요.
음... 현실적이긴 한데, 딱히 이렇다할 특징이 없어 밋밋해보이죠? 그래서 저는 외모지상주의를 가미해 "아름다운"이라는 표현을 추가해봤습니다. 그랬더니 몇 초도 안 되는 찰나에, 세상 리얼한 그림이 그려지더군요. (심장이 약한 분들은 주의해주세요.)
네... 아름답다고 하기에는 정신줄 놓은 듯한, 희번덕거리는 눈매와 풀어헤친 헤어스타일이 너무 사실적이어서 무서웠습니다. (육아 퇴근 후 제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그래서 남편이 나를 무서워하지는 않았나 스스로 되돌아보게 되더군요.) 그래서 저는 황급히 "아름다운"이라는 표현에다가 "아주"라는 부사를 추가해 다시 주문해봤습니다. 그랬더니 또 확 달라진 그림을 내놓더군요.
이번에는 덜 산만해보이는 젊은 엄마와 아기가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죠? 아기 눈도 짝짝이인데다가, 아기 입술에는 립스틱이 칠해져 있습니다. 'AI도 그리기 싫은 건 대충 그리나?' 순간 이런 생각도 들긴 했습니다만, 그보다는 화풍에 대한 정확한 요구사항을 입력하지 못한 제 탓이 크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그림들을 지인들에게 공유하며 웃다가도 마음 한구석은 사뭇 진지해졌습니다. 처음에 이 그림을 보고 웃었던 건 신라여왕의 그림 수준을 예상했던 제 기대에 한참 못미쳤기 때문인데, 사실 AI 작품이 사람의 기대에 못 미칠 일은 앞으로 그리 많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AI는, 사람이니까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는 '인간 화가'와는 달리, 그런 것들을 용납하지 않는 방향으로 프로그래밍 되고, 진화해나갈 테니까요. 마치 태어나자마자 인생 2회차, 3회차, 4회차로 업그레이드하며 살아가는 존재처럼 말이죠.
그런 AI가 인간의 웬만한 일을 모두 대체한다면, 그것은 단지 경기 중에 선수들이 바통 터치하듯 역할 교체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겁니다. 인간의 모든 행위 역시 과정이 아닌, 결과의 관점에서 비춰질 개연성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죠. AI는 분명 인간의 실수와 실패를 최소화하고, 모든 작업의 능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해갈 것이 자명하니,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인간도 그런 AI와 경쟁해야 하는 순간들을 매번 맞닥뜨려야 할테니까요.
누구나 AI와 경쟁하거나, 경쟁을 방관하는 등 나름의 방식으로 상생해야 하는 사회에서, 인간의 실수와 실패는 '전체의 생산성 향상에 방해가 되는 혐오의 대상'으로 여겨질지도 모릅니다. 한때는 아름다운 도전이기도 했던 누군가의 실수나 실패가, '비정상'이자 '핸디캡'으로 모두의 발목을 잡는 짐짝처럼 여겨질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명언도 말그대로 옛말이 되어, 어느 구석에다 표구해놓고 전시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실패가 성공을 향한 도전의 한 과정으로 여겨졌던 참 여유로웠던 시절이 우리에게 있긴 있었구나, 기념하며 말이죠.
물론 우린 지금도 인간의 실수를 줄이고 실패 확률을 낮추는 것, 종국에는 그 실수와 실패 과정 자체가 생략되는 것이 미덕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기술의 혜택을 오롯이 누리며 살고 있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AI 덕분에 힘든 일에서 벗어나 더 창의적인 일에 매진하고, 그래서 잦은 실수와 실패도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그런 넉넉한 품에서 살게 될 거라는 기대를 품기에는 아직은 좀 이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전히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사회적으로 풀어야 할 선결 과제가 산적해있기 때문이지요. 개인적으로 AI가 앞당길 '완전 무결' 시대의 편의성에는 기대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작 AI가 건넨 그림들을 보고 그저 웃고 넘길 수만은 없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 대문 사진 : 제이슨 M. 앨런이 AI인 미드저니 (Midjourney)를 통해 만든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이 작품은 콜로라도주 박람회의 연례 미술대회에서 1등 수상을 해 논란이 된 바 있다. (트위터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