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목 앞둔 식당이 요리사를 교체했다면

'전달'의 무게감

by 아삼삼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어느 유명 식당이 대목을 앞두고 요리사 두 명을 바꾼 데 이어, 메인 쉐프까지 교체할 거란 소문이 파다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손님들은 무슨 생각을 가장 먼저 떠올릴까요? 이런 저런 생각 떠올릴 수 있지만, 저라면 이 생각이 제일 저 날 것 같습니다.'저 식당에 뭔가 문제가 있긴 있나보다' 하는 생각이요.

오늘 아침, 저는 현실에서 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문희 대통령실 외교비서관이 이미 교체됐고, 김성한 안보실장은 바뀔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는, 어제자와 오늘자 기사를 보고서요. 김성한 실장은 한국의 외교 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이고, 이문희 비서관은 외교 정책의 실무 책임자입니다. 두 사람 모두 현 정부의 외교 정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죠. 그런데 하필이면 이들 두 사람이 한미 정상회담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 각각 교체설과 교체 소식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한일 정상회담을 일주일여 앞뒀던 시점엔 김일범 의전비서관이 이미 체됐는데, 그것까지 감안한다면 앞서 예를 든 식당과 비슷한 상황이 된 셈이죠.

대통령실은 '이상 기류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김성한 안보실장의 교체설은 전혀 사실 무근이라는 반응이고요. 다른 두 비서관의 경우는 교체된 것은 맞지만 각각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는 설명입니다. 김일범 비서관은 지난 1년간 격무에 시달려 사퇴했고, 이문희 비서관은 외교부 차원의 인사 시기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순환 근무를 하게 된 것이라는 게 대통령실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일각에선 또다른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미국 측이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 일정과 관련해서 몇 가지 안을 제안했는데, 그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일정이라는 건 블랙핑크와 레이디 가가의 합동 공연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죠. 이 이야기의 주체는 보도한 언론에 따라, 때론 대통령실 관계자가 되기도 하고 여권 관계자가 되기도 합니다. 과연 익명 뒤에 숨은 그들의 이야기가 실일까요?


인사권자인 대통령이나 아님 그에게 일정 권한을 위임받은 누군가가 확인해주지 않는 이상, 그게 진실인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상급 주요 일정과 관련한 미측 입장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게 사실이라면, 그것은 핵심 실무자를 교체할 만큼의 문책 요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상대국의 의사를 우리 내부에 잘 전달하고, 마찬가지로 우리 의견도 상대국에 잘 전달해야 하는 기본적인 역할을 담당자들이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는 뜻이 되니까요. 특히, 전달해야 했던 메시지가 얼마나 중요하느냐에 따라 그 책임의 무게감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전달을 제대로 못한', 혹은 '전달을 제대로 안한' 인사들은 과거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옛 일본 외교관인데요.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에 한쪽 눈을 실명했던, 노무라 기치사부로 주미 일본대사입니다. 노무라 대사는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을 시작했던 당일에 '대미각서'를 미국 측에 전달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은 인물입니다. 그는 당초 일본의 공격이 개시되기 20분 전에 그 각서를 미 국무부에 전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공격 후 1시간이 지나서야 각서를 전달하고 말았습니다. 대사관의 부주의 탓이었죠.


진주만 공격이 일어나기 전 코델 헐 미국 국무장관과 함께 한 노무라 주미 일본대사(왼쪽)와 구루스 사부로 특사. Mainicni Shinbun /『毎日新聞』. 1941/11/17.


심지어 그가 뒤늦게 전달한 일본의 대미각서는 무력 사용이나 선전 포고가 담기지 않은, 그저 교섭을 중단하겠다는 메시지만 담겨 있었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그는 제대로 된 선전포고를 미국에 전달하지 못할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개전조약을 준수하지 못한, 엄중한 국제법 위반의 책임을 안게 됐습니다. "'선전포고'를 하지 않은 일본의 비겁한 공격이 미국의 분노를 샀고, 이는 3년 8개월 후 미국이 주저하지 않고 핵무기를 사용한 이유의 하나가 됐다." 국제법 전문가인 이창위 교수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무라 대사 외에 '전달을 제대로 못한' 인물은 또 있습니다. 1951년 한국 외교부의 이름 모를 한 직원데요. 당시 한국은 미국을 향해 '샌프란시스코 대일강화조약에 우리도 서명국으로 껴달라'고 통사정을 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야 한국 입장에선 일본의 식민 지배 책임을 제대로 물을 수 있기 때문이었죠. 미 국무부는 당시 일본과 강화조약 체결을 한창 서두르던 때여서, 초안이 작성되자마자 한국 정부를 포함한 다른 국가 외교관들에게 이 문서를 건네주며 '조속히 검토 의견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그 문서는 항공편으로 한국 외교부에 도착하는 데만 7일이 걸린데다, 그걸 받은 외교부 직원이 고스란히 책상 서랍에만 넣어둔 바람에 한국 정부는 그 문서의 존재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초대 법제처장인 유진오 박사가 당시 일본 신문에 보도된 관련 기사를 읽고 장면 총리에게 사실관계를 문의하면서 그 문서의 존재가 비로소 드러나게 되죠. 그 때부터 한국 정부는 부랴부랴 검토 의견을 작성해서 미국에 보냈지만, 그 때는 이미 미국으로부터 초안을 받은지 한 달 이상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조약 문안에 한국 정부의 생각이 반영될 여지가 그만큼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미국이 조약 서명국 참가를 원하는 한국 입장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할 수도 있는 상황이 초래되고 말았다." 한일 과거사 전문가인 유의상 교수는 저서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한국이 대일강화조약의 서명국이 될 수 없었던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론 미국과 영국 등 다른 연합국의 반대와 당시 국제정세의 변화 영향이 컸고, 언론과 정치계의 무책임한 태도에서 비롯된 여론의 무관심도 한 몫 했지만, 전달을 제때 하지 못한 그 직원의 부주의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말입니다.


외교관에게 있어서 '전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입니다. 개인간에도 서로의 의도를 제대로 전해주지 않으면 사달이 날 수 있는데, 하물며 국가간에는 오죽할까요. 최근 대통령실 비서관들의 교체가 실제 전달을 제대로 못한 문책성 인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외교에서 갖는 '전달'의 무게감을 떠올리게 해서 부족하지만 졸필로 정리해봤습니다.


※ 참고 : 이창위, 『토착왜구와 죽창부대의 사이에서 -국제법과 국제정치로 본 한일관계사』, 박영사, 2023.

유의상, 일제침탈사연구총서 보론 49,『한일 과거사 문제의 어제와 오늘 - 식민 지배와 전쟁 동원에 대한 일본의 책임』, 동북아역사재단, 2022.


※ 대문 사진 : 대통령실 홈페이지의 '용산시대' 참고. https://www.president.go.kr/yongsan_office/open_office


※ 노무라 대사 사진 : Mainicni Shinbun /『毎日新聞』- http://www.jacar.go.jp/nichibei/popup/pop_29.html , https://juanignacioweb.wordpress.com/2018/04/02/la-ii-guerra-mundial-parte-5a-1941-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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