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사회부 사건팀에서 일할 때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주저앉고 꼽을 수 있는 순간이 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사망자가 되어, 숫자로 치환돼버린 목숨들을 마주할 때. 그건 꼭 내가 그 현장에, 사건 사고가 발생한 그 시점에 가있지 않아도 마주할 수 있는 것이었다. 뒤늦게 현장 인근에서 발견한 CCTV나 수사기관이 언론에 공개한 여러 자료를 통해, 나는 마치 목격자라도 된 것처럼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겪어낼 수 있었다. 모자이크와 음성 변조 하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처참한 상황을.
그 중 유독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 것은 사망사고 뺑소니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이었다. 나는 기사를 쓰기 위해 노트북으로 그 영상을 보고 있었다. 가해 차량은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가해 차량이 조금 더 속도를 낼수록, 횡단보도를 건너던 20대 여성은 점점 더 화면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운데도 운전자가 피해자를 못 봤다고?' 눈에 뭐가 씌인 게 아니라면 못 볼 수가 없을 정도로, 그녀는 차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녀가 입은 레깅스의 디자인과 귀에 낀 무선 이어폰이 선명하게 보이고, 심지어는 그녀의 입가에 띈 미소까지 훤히 다 보일 정도로.
그녀는 사고 1초 전, 생긋 웃으며 엄마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엄마, 나 잠깐 운동 다녀올게!"
그녀가 엄마를 생각하며 미소를 지은 바로 그 순간. 쿵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뒤, 그녀는 10m 떨어진 인도 바로 옆 도로에 마네킹처럼 털썩 쓰러졌다. 너무나 평온했던 1초 전의 상황이 한낮의 꿈이라도 됐던 것처럼. 그렇게 그녀는 맥없이 쓰러졌다. 한 생명이 위태롭게 꺼져가고 있었다.
가해자는 차를 멈췄다. 그리고는 10초 쯤 지나, 다시 차를 움직였다. 피해자를 향해서 움직인 게 아니라, 쓰러진 그녀를 지나쳐서 다른 차선으로 움직였다. 그리고는 다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드라이브를 했다. 그래서 블랙박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평온한 주행 영상을 보여줬다. 그게 내가 봤던 그 영상 중에서 가장 잔인한 장면이었다. 사고 직후에 펼쳐진 바로 그 영상. 가해자가 찰나의 면피를 위해, 남의 목숨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유유히 드라이브를 즐겼던 그 장면.
만약 그가 며칠이면 다 탄로가 날 '회피'에 쓴 10초를, 119에 전화하고 응급조치를 하는 '상식'에 썼다면 어땠을까. 그는 귀한 생명을 구하는 건 물론, 그 자신도 더 낮은 수위의 죗값을 치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상식적이지 못했고, 그래서 피해자에게 가장 소중한 골든타임까지 놓치게 했다. 그것은 그가 스스로 자초한, 두 번째의 중대한 범죄였다. 결국 피해자는 뒤늦게 행인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흘 뒤 숨을 거뒀고, 가해자는 특가법상 도주치사 혐의라는 무거운 죄목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처참하고 잔인한 순간은, 사건 사고가 벌어진 그 찰나의 순간보다 그 다음에 펼쳐진 순간이 훨씬 더 끔찍할 때가 많다. 그리고 그 각양각색의 끔찍한 장면은 대개 몰상식해보이는 몇몇 행동으로부터 시작되는데, 그 행동은 맥락은 달라도 늘 똑같은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거나 남의 이해는 돌아보지 않는, 이기심이라는 공통분모를. 이 흔해빠진 마음 하나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여러 선의들을 무력하게 만들고 이미 벌어진 참사를 더 끔찍한 지옥으로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