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모몬 Jul 16. 2024

호텔방 미스테리

지난 주 방콕 출장에서, 호텔방에 들어섰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체크인을 한 뒤, 방에 짐을 두고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갔다 왔을 때 방이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내가 호텔방에 처음 들어갔을 땐, TV가 켜있었고, 호텔 이용 안내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저녁을 먹고 다시 호텔방에 들어갔을 땐, TV가 꺼져 있었다. 내가 끄고 나갔던 걸까, 아니면, 자동으로 시간이 지나면 꺼지는 거였을까,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이 되었다. 나는 회의가 6시쯤 끝났고, 다른 동료들은 한 시간 정도 회의에 더 참석해야 했다. 회의장에서 호텔은 걸어서 5분 거리였다. 나는 일단 호텔로 돌아갔다. 호텔은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잠시 누워 쉬었다. 한 시간쯤 지나, 오늘 예정된 저녁식사 장소로 향했다. 우리의 카운터파트와 동료들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을 때, 나는 또 한 번 내 기억을 더듬어봐야 했다. 분명 잠시 쉬러 호텔방에 왔을 땐, 욕실의 블라인드도 열려있고, 침실 쪽 커튼은 얇은 리넨커튼만 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내가 손을 씻고 수건을 사용해서 수건을 분명 흐트러트려 놨었다. 그런데 저녁을 먹고 돌아와 보니 블라인드는 닫혀있고, 암막커튼이 쳐져있고, 수건은 모두 제자리였다. 거기에 TV의 각도가 침대 쪽을 향하게 바뀌어 있었다. 전날엔 내 기억을 확신할 수 없었지만, 이날 내가 수건을 흩트려 놓은 건 분명했다. 호텔방에 무슨 일이 생긴 거였을까?


다음날 동료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비슷한 일을 겪었다며, 긴가민가 했다고 말했다. 그랬다. 그 호텔은 두 번이나 호텔방을 정리해 주는 곳이었다. 낮에는 호텔을 깔끔하게 정리한 후, 낮에 사용하는 모드(블라인드를 열고, 리넨 커튼만 치고, TV는 소파를 향하고)로 준비해 두었고, 저녁즈음 다시 호텔방을 저녁 모드(블라인드를 닫고, 암막 커튼을 치고, TV는 침대를 향하고)로 바꾸어 두는 모양이었다. 호텔이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걸 알게 되어서 미스테리는 풀렸다.


그런데 참 신기한 점은, 나를 포함해 동료들 모두, 방금 전까지 있었던 공간에 대한 기억을 확신하지 못했다는 거다. 첫날밤, TV를 끄지 않고 켜진 상태 그대로 저녁을 먹었던 것 같았지만, 다시 돌아와 꺼진 TV를 발견했을 때, 나는 '내가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끄고 나갔던 걸까?'라고 생각했었다. 두 번째날, 흐트러트린 수건, 열린 블라인드, 리넨커튼에 대해서는 확신의 강도가 더 높아졌을 뿐, 100% 확신할 순 없었다. 내가 나도 모르게 수건을 정리했고, 블라인드를 닫고, 암막 커튼을 쳤을 확률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었다. 왜냐면, 우리는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습관적으로 많은 행동을 한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이란 참 이상하다. 불과 몇 시간 전 일도 확신할 수 없다니. 가끔 내가 중요한 사건을 목격한다면 제대로 진술할 수 있을지 상상을 해보곤 한다. 나는 아마도 뭔가 일이 일어났다는 느낌정도만 갖고 있지 않을까? 그럼 그 사건의 관계자는 나에게 제대로 말해보라며 채근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마도 내가 전달할 수 있는 최선은 그 느낌 정도일 것 같다. 우리의 뇌는 수많은 정보를 걸러내고, 때로는 왜곡하며, 우리가 기억하는 대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