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을까? 올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작년 가을쯤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교보에서 고전도서 200권을 e북으로 50년간 대여했다. 아마도 엄청나게 말도 안 되는 싼 가격이었을 거다. 가격이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10만 원쯤 되었을 것 같다. 이 200권을 대여한 순간에도 내가 이 책을 읽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주 낮은 수준의 기대는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너무 심심해진 어느 날 몇 권쯤 읽지 않을까? 하는 그런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어쩌면 그 긴긴 50년이란 시간 동안 내가 이 책들을 대여했다는 걸 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어쩌면 펼쳐보기도 안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오늘 무슨 바람이 불어 200권의 목록을 보다 체호프의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다운로드하고 첫 번째 이야기인 “굽은 거울”을 읽었다. 내가 체호프의 모든 글을 읽었던 건 아니지만 집에 있는 책들과 이 단편집에 있는 글들이 반쯤은 겹치는 듯 보였다. 오랜만에 읽은 체호프의 글은 재미있었다. 늘 이렇게 짧은 글도 어떻게 이렇게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 낼까 너무도 신기하다.
막상 뭐든 하기 전이 가장 어렵고 해 보면 재미가 있고 나름 할만해진다. 200권 중 한 권, 그 한 권에서도 단편 한 편을 읽었는데, 난 이제 이 200권을 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분 걸까 생각해 보니 연말이고 새해가 다가온다. 이 시기에 나는 아주 조금 행동력이 높아지고, 아주 조금 진취적이 되고, 아주 조금 용기가 생긴다.
시간이 초와 분, 시, 그리고 날과 주, 달, 그리고 해까지 구분 없이 흐르면 어떨까? 이 세상 어딘가에는 밤이기만 하거나 낮이기만 한 그런 곳이 있지 않을까? 내가 그런 곳에 있다면 오늘 같이 문득 체호프를 읽어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