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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Zhu Oct 09. 2019

보통인 줄 착각한 마음에 위로를

영화 [벌새]를 보았다.

어릴 적, 숨겨야만 하는 사정은 우리 집에만 있는 줄 알았다. 초 중 고를 한 동네서 보내다 대학을 시작으로 관계 맺는 사람들의 범위는 갑자기 부채 펴듯 넓어졌는데, 그러면서 아주 조금씩 알게 됐다. 형태와 정도는 다르지만 ‘문제’라는 게 있는 가정이 꽤 많았다. 그리고 좀 더 시간이 지나서는, 아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경우의 수가 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나처럼 ‘말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었겠다 생각했다. 자기 집이 제일 답답한 친구들이 어릴 적 내 동네에도 있었을지 모르겠다고.



은희의 집, 1002호를 보여주던 카메라는 조금씩 멀어져 902호를 함께, 그리고 복도식 아파트 전체로 줌 아웃했다. 영화 [벌새]는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여럿이나 오프닝을 마무리하는 이 장면이 나는 가장 자주 생각난다. 앞으로 은희를 보여주겠지만 그것은 여러 세대 중 한 집, 1002호네 아이의 이야기라는 지시, 어쩌면 902호에도 비슷한 아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 아파트 저 많은 가구의 공통된 사정이니 결국 개인이 아닌 사회를 떠올려 달라는 요청처럼 느껴졌다.



1994년 나는 고1이었다. 은희보다 수희와 또래인데 둘이 겪은 세상이 2,3년 터울로 크게 달랐던 것 같진 않으니 동년배라 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그때의 나와 은희를 비교했는데 사실 은희는 나와 겹치는 부분이 적었다. 남자 형제가 없는 나는 때리는 오빠가 은희, 지숙의 공통된, 그러니까 그 시대 보편적인, 고통이라는 사실을 몰랐었다.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는 은희 아빠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했던 우리 아빠보다 낮지 않은가 생각했는데 우리 아빠는 (아마도 처지를 알고) 가장의 권위를 내세우지는 않았다. 남자 친구나 나를 따르는 여자 또래는 없었고 특별히 단짝을 이뤄 다니지도 않아서, 굳이 영화에서 이입할 이를 찾는다면 엑스트라 5 정도 되는, 존재감 없는 친구가 나였다.


그래서인지 그 시대를 살았으면서도 많이 낯설었다. 은희의 저 얼굴이 그때 여중생을 대표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건 이십오 년 세월이 채운 망각일까, 나의 경험과 정확히 겹치지 않은 데서 오는 무지일까. 착각이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내 역할, 엑스트라 5의 자리에서 보면 은희의 상황은 지극히 ‘정상’ 같았다. 대치동 아파트에 살고 부모는 상가에서 떡집을 한다. 고등학생 언니와 공부 잘하는 오빠가 있다. 방과 후 학원을 다니고 학원 친구와 단짝이다. 학교에 마중 오는 남자 친구도 있다. 어디에도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러니 나는 그녀의 얼굴을 살피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 그러했나 보다. 들여다봐야 보이는 것을 안 본 채 없다 했고 내 마음이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지도 몰랐거나 입을 닫았다. 그래서 서로 다 보통인 줄 착각했나 보다.


오빠가 때렸다고 용기 내 일렀는데 ‘그만 싸워라’라는 훈계가 돌아왔고 함께 겪은 언니는 거들지 않고 자포자기다. 남자 친구에게 먼저 키스하자고 할 만큼 마음을 주었는데 연락이 닿지 않고 다시 찾아온 그를 타박 없이 받아주었는데 자신을 버려두고 갔다. 가족보다도 자신이 좋다던 후배에게 드디어 마음을 냈는데 때가 이미 지났다고 한다. 동질감을 가졌던 친구는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을 했고 둘 사이 동질감이 절대적이지 않다고 한다. (은희에겐 배신이지만, 지숙이 은희 부모에 대해 문방구 아저씨에게 말해 버리는 장면에서 ‘쟨 어떻게 저럴 수 있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중2 여학생이 그 상황에서 할 가장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을 것이다. 후에 이 사건에 대해서 둘은 화해한다. 이도 또한 너무 자연스럽다.) 이쯤 되니 관객인 내가 먼저 손을 들겠다. 수희의 포기가 이해된다. 뭐든지 반복되면 다 그런 줄 착각한다. 마음이 닿지 않는 것이 보통이 된다. 그 시대 우리는 그랬나 보다.


다행히 은희는 영지를 만났다. 영지는 적극적인 간섭을 하지 않는다. 그저 묻고 듣고 함께 차를 마시고 (은희, 지숙에겐 충격이었을 수도 있는 가사의) 민중가요를 불러준다. 그뿐이나 마음이 닿고 거기 마음을 두어도 되겠다고 안심한다. 영지가 은희에게 하는 조언 중 관객들이 가장 큰 의미를 두는 것은 “맞서 싸워”인 것 같다. 물론 은희의 성장에 큰 동력인 것은 맞으나 소심한 나는 진짜 더 맞을 수도 있으니까 혹시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다 싶어 일 순위로 ‘손가락 움직이기’를 들겠다.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영지가 이제 없는, 은희에게는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은희는 손가락을 움직인다. 영지의 말처럼 삶이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도 손가락이 움직여진다.


영지가 다행이었다면 은희 엄마는 내내 답답했다. 식탁에서의 방관적 침묵, 은희에게 감자전을 먹으라고 하면서도 고개는 전혀 돌리지 않는 시선, 귀 밑이 아프다는 딸에게 병원에 가라고 말은 하지만 이내 파스 붙여 달라고 등을 돌리는 행동, 아빠가 수희를 혼내는 중 조명 스탠드를 휘두를 만큼 격렬히 맞서더니 다음 날 아무 일 없다는 듯 티브이를 보는 건조한 태도까지 ‘엄마’에 대한 기대를 모두 배반했다. 급기야 밖에서 만난 엄마를 은희는 애타게 부르는데 돌아보지 않는다. 김보라 감독은 은희가 아래층에서의 소동을 엄마에게 말하지 않는 오프닝은 은희와 엄마 사이의 심연을 보여주고 후반부에 가서 감자전을 먹는 은희를 바라보는 엄마로 희망을 남겨준 채 영화를 닫고자 했다고 했다. 은희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집 밖 장면은 엄마가 고된 노동으로 돌보지 못했던 자기와의 만남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듣고 보니 엄마는 또 한 명의 피해자였다. 쪼그려 옆으로 누운 엄마의 올이 나간 스타킹이 아프다. 엄마가 은희에게 시선을 주기 시작했듯 한 뼘 성장한 은희도 엄마를 봐주기를 바란다.


1994년을 배경 삼은 이유라고 했듯 [벌새]에서 가장 큰 사건은 성수대교 붕괴사고이다. 그리고 늘 함께 소환되는 기억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다. 피해자가 아니어서, 유가족이 아니어서, 좀 멀게라도 아는 사람 중 관련된 사람이 없어서, 그러니까 나는 뉴스로만 본 사고여서 자주 둔감해진다. 그러다 이렇게 책이나 영화 등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희생자가 아닌 우리 모두는 ‘살아남은 자’라고, 잊지 않고 거저 받은 삶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이다. 성수대교 사고를 다루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영화를 보기 전 영지가 사고의 희생자일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현관을 여는 영지 엄마의 의상이 검은 색인 것을 보고서야 알아채고는 적잖이 충격이었다. 다리가 끊어졌듯 은희는 이제 완전히 희망이 끊기는 것일까 걱정이 됐다. 앞서 은희가 빈 집에서 큰 동작으로 뛰는 장면이 있었다. 은희의 감정이 표출되는 장면 중 하나여서 반가우면서도 나는 층간 소음으로 제재를 받게 될까 마음을 졸였는데 초인종의 실체는 아래층 사람이 아니라 영지의 소포였다. 이때의 안도감과, 영지의 편지 내용으로 영지 없이 남은 은희를 안심하게 하는 마음이 연결되었다. (소포와 함께 편지가 도착한 것이 나오지만 편지의 내용은 은희가 영지의 죽음을 안 뒤에서야 관객에게 공개된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정상'의 규정이 안일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모양이었든 각자의 마음이 평온하지 않았으나 다 그런 줄 알아 무심했다. 그리고 한편 바로 떠오르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영지 같은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영지가 되어 주기도 하면서 지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수학여행을 가는 은희가 운동장에 서서 주변 아이들을 가만히 둘러보는 엔딩에 대해 김보라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영화를 만들 때 항상 ‘삶은 계속된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라고 했다. 은희를 통해 모두의 삶에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말해 주는 듯하여 따뜻한 엔딩이었다.



2019.09.30 @Lotte Cinema World Tower

여러 영화제에서의 수상으로 먼저 화제가 된 터라 개봉을 기다렸었다. 그러나 정작 개봉 후에는 도통 시간이 나질 않았다. 독립 영화라 개봉관과 회차가 많지 않아 더 기회가 없었다. 추석이 지난 후에는 으레 상영이 끝났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김보라 감독 인터뷰에서 장기 흥행 중이라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9월의 마지막 날은 어떤 사정에 의해 특별한 볼일이 없음에도 조퇴를 하게 되었고 그렇게 놓치지 않고 영화 [벌새]를 극장에서 볼 수 있었다. 게다가 그날 내가 본 회차는 GV였다. GV에는 김보라 감독과 [벌새]의 장면을 입은 노래, [넌 아름다워]를, (영화를 위해 만든 곡처럼 가사가 어울리는데 영화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만들어진 후 나중에 콜라보한 것이라니 더 놀랍다.) 발표한 가수 이상은이 나왔다. 영화 GV는 처음이었는데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감독을 통해 직접 듣고, 또 그 영화를 인상 깊게 본 예술가의 소감을 들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겨우 잡은 관람이었는데 GV인 데다 이상은이라니, 마지막으로 이상은의 신규 앨범 발매를 축하하며 팬클럽에서 준비한 작은 선물까지, 운이 아주 텄던 날이었다. 그리고 그날 영화 [벌새]는 아테네 영화제 각본상을 추가하며 26관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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