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려고 시작한 게 아니었는데...
휴직하고 첫날.
매일 6시면 스르륵 자동으로 일어나는 아내에게, 일찍 깨워달라고 했다.
앞으로 남은 휴직 100일 동안,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였다.
이왕이면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소중한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다.
아내가 양평에 맛있는 소바식당을 알아놨다고 해서, 우중충한 날씨에 갈까 말까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가고 싶을 때 가보자! 하고 양평으로 출발했다.
양평으로 향하는 내내 아내는 조잘조잘했고
간간히 이야기하는 옆모습을 보면서,
'우리 역시 이런 시간이 필요했구나. 쉬기로 하길 잘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식당에 오픈 시간 좀 넘어 도착했더니, 주차장에 차들이 이미 많았다.
가게 안에도, 테라스에도 손님이 가득해서 문 앞에 줄을 서고 기다리다가 너무 더워진 날씨에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혹시 얼마나 기다리면 될까요?" 하고 사장님께 물어보니,
"기다리시는 손님이 많아서 한 시간 이상 기다리셔야 할 것 같아요."
"요 며칠 이런데 제가 겪어보니까(?), 오픈런하면 오히려 더 대기가 길어요.
아침 드시고 오셨으면 잠깐 드라이브라도 다녀오시면 그때는 한가할 거예요."
라고 대답해 주셨다.
그리고 한 마디 더 하신 말씀이,
"이러려고 시작한 게 아니었는데..."
계속 밖에 서있기엔, 날이 너무 더워서 일단 가게를 나와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무작정 떠났다.
아내랑 사장님의 "이러려고 시작한 게 아니었는데..."는 어떤 의미였을까? 추측해 봤다.
그 사정을 직접 물어보진 못했지만,
"손님이 너무 많아서 힘들어서 그러셨던 걸까?"
"드라마 심야식당처럼 소소하게 단골들이 찾아와 이야기 나누며 여유 있게 식사하는 공간을 꿈꾸셨을까?"
"땀 뻘뻘 흘리고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고 미안하셨던 걸까?"
...
"아저씨가 행복해야, 소바도 맛있을 텐데"
"다시 갔는데 자리는 있어도, 아저씨가 안 행복하면 어떻게 하지?"
인생은 역시 마음처럼 되지 않는구나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문득, 휴직기간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며
아깝게 쓰지(?) 않으려고 신경 썼던 게 생각나고
휴직 중인 하루나, 일을 하던 하루나 똑같은 시간이고, 똑같은 하루였을 텐데 왜 그리 허투루 보내고
이 짧은 3개월만 그리 아껴가며 보내려고 했을까? 생각이 들었다.
24시간 출근 않고 내 맘대로 보낼 수 있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해야 하는 일 하고, 남은 시간 쪼개서 휴식하던 평범한 나날들도 소중했던 시간이었는데 그때는 다 놓치고,
휴직이라는 시간에서야 알아채고 알차게 채우려고 노력했던 걸까 하고...
아내가, 출발하면서 용문사 계곡을 찾아봤었다고 그리 가자고 해서 20~30분 정도 걸려 도착했다.
휴가철이라 주차장에 차들이 많았는데, 용문사가 워낙 크고 넓어서 그런지 사람들로 복잡하진 않았다.
주차장에서부터 계곡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입구 넘어 조금 들어가니 바로 계곡이 나왔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접는 의자도 가져올 걸 했는데, 평평한 돌이 많아서,
일단 양발부터 벗고 발을 담갔다.
"양평에 이렇게 좋은 데가 있었구나! 다음에는 의자랑 읽을 책이랑 간식도 가져오자!" 이야기했다.
주차장을 향해 걸어가는데, "와, 최근 여름 중에 제일 좋았어! 계곡 와서 좋았어! "
계곡을 좋아하는데 계속 장마라서 못 왔다며 에너지 충전된 아내가 이야기했다.
신난 얼굴이 활짝 웃고 있었다.
1시~2시 즈음이면 오히려 한가할 거라는, 사장님의 이야기에 기대를 걸고 식당으로 향했다.
도착한 식당에는 주차장에 차가 가득 있었다.
식당 밖에는 아까보다 사람들이 더 많았다!?!
사장님이 얼굴 기억하시고
"다시 오셨구나... 아 오늘은 이상하네요. 한참 기다리셔야 할 것 같아요."라고 난색을... ㅠ_ㅠ
그래도 테라스에 선풍기 앞 의자가 비어있어서, 앉아서 기다리기로 하고 아내가 주문하러 들어갔는데...
원래 먹고 싶던 메뉴가 다 품절되고, 주문 가능한 메뉴는 하나만 남아있었다. 앜
다음엔 진짜 오픈 30분 전에는 와서 기다려야겠다.
다시 차를 타고.... 돈가스 집을 찾아 맛있게 먹고 행복한 하루가 되었습니다.
하고 글을 끝내면 좋겠지만, 돈가스 집은 실패였다.
그래도 계곡이 좋았다며,
식당이 붐볐던 탓에 용문사 계곡도 알게 되고,
발 담그고 힐링도 하고 좋았다며, 오히려 러키빅키!! 이야기했다.
"원래 이러려고 시작했던 게 아니었는데..."에 대한 추가 토론을 하며 집으로 왔다.
장마가 끝났다고 TV에 나왔는데도 비는 내렸다가 왔다가 내렸다가 왔다가 했다.
애매하게 왔으면 차가 더 더러워졌을 텐데, 시원하게 내려서 -_- 다행이었다.
분명히 우리는 점심을 먹었는데... -_- 서운했던 맛에 위장도 서운했는지...
둘 다 배가 고파와서 우리 동네 맛빵 산딸기 바게트를 사서 집에 왔다.
돈가스에 실망했던 위장에 선물을...
얼마 전, 팀 동료 해리 집들이 때 요아정(요구르트아이스크림의 정석 나만 몰랐나!!!)을 첨 먹어봤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해리가 주문했던 화면을 찍어왔었다.
마침 우리 동네에도 요아정이 있었다. 야호!
신나서 똑같이 주문하려고 했는데,
아니 이럴 수가!!!
우리 동네에는 딸기팝팝세트가 없다!!!
아무래도 딸기팝팝세트는 요구르트아이스크림의 정석 개포점 점주님이 개발하신 스페셜 조합인 듯?
이 일기는 요아정이나 딸기팝팝세트로부터 아무런 혜택도 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딸기팝팝세트 후기 블로그를 검색해서
딸기팝팝세트 = 초코쉘 + 딸기팝팝 + 딸기, 그래놀라라는 공식을 발견!
그대로 주문해서 올림픽 경기 보면서, 냠냠 맛있게 먹었다.
빨래 돌리고, 건조하고, 양궁도 보고... 계곡 좋았다고 이야기하고 그렇게 하루가 갔다.
아내는 잠들고, 인터넷 하고, 그동안 어질러져 방치됐던 드롭박스 디렉터리 들 정리하다가
어떤 스샷을 하나 발견하고, '아! 휴직일기!' 생각나서, 오늘을 정리해 본다.
먹고 싶었던 소바는 못 먹었지만, 덕분에 계곡에 가서 시원하고 좋았다.
무엇보다 발 담그고 활짝 웃었던 아내 모습이 좋았다. 오랜만에 정말 활기 있어 보이고...
차만 타면 잠들던 아내가,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들을 조잘조잘 가고 오는 내내 했던 것도 좋았다.
매일매일 공부를 해야지.
알차고 의미 있게 보내야지.
절대 퍼져서 보내는 하루는 없게 해야지.
기록하고, 회고하면 허투루 보내지 않겠지? 생각하면서 처음 휴직일기를 쓰기로 결심했었는데,
운 좋게 첫날 알아버렸다.
쉬는 하루가 소중한 만큼, 일하는 하루도 소중하고,
그러니까 매일매일 좀 더 웃고, 좀 더 즐겁게 잘 살아야 한다고...
그리고, 마지막.
아 휴직일기 써야지! 하고 생각나게 했던 그 스샷 이미지.
어쩌면, 나도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이러려고 시작했던 게 아니었는데...
쉬는 동안, 모처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생각해 보려고 했는데
이미 7년 전에 나는 알고 있었네 그답을... 하고 생각하면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