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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솔아 Dec 30. 2021

재의 시간

나는 이제서야 유년을 마무리하고 있다.


습관처럼 올 한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게임밖에 한 게 없네'라고 생각했다.


나를 실제로 아는 모든 사람이 내가 게임에 열중해 있다는 걸 알 만큼 나는 올 한해 인생을 다 바친 것처럼 게임을 했다.


해가 끝나기 한 두 달 전부터 나는 농담처럼 "올 한해는 로스트아크(게임) 밖에 한 게 없어요"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혹자는 어떤 것에 푹 빠져 지내는 내 모습이 멋있어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나는 오히려 생소함을 느꼈다.


듣는 사람이 재미있길 바라며 말한 "올 한 해 로스트아크 밖에 한 게 없어요."라는 표현은 사실 자학개그나 다름없는 표현이다.


나는 은연중 내 말을 들은 상대방이 나를 '한심하다'라고 생각하길 바랐고, 그 한심함에 픽하고 웃음이 터지길 바랐다.


내 생각과 다른 상대의 반응을 보면서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게임을 하는 나를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건 오직 나뿐이라고.


올 한해 나는 정말 열심히 게임을 했고, 그 누구보다 열렬히 자신을 한심해했다.



/



'올해 한 게 뭐가 있지?'라는 질문에 나는 당당하게 '로스트아크'를 쓴다. 그 외엔 머리가 안개 낀 것처럼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조급해진 마음에 캘린더를 열어 내가 뭘 해왔는지 체크한다. 지난날을 확인해보니 내가 잠깐 기억해내지 못했을 뿐 이뤄낸 게 참 많다. 회사에서 승진도 하고, 부모를 떠나 독립도 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했다.


나는 나의 2021년이 캘린더를 뒤져야만 정리되는 해라는 사실에 불안함을 느꼈다. 캘린더를 뒤지지 않아도 생각나는 중요한 일이 고작 게임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지난날의 나는 어땠는가?


매일 일정을 계획하고 기록하평가 했다. 일하는 시간 외에도 직무 공부를 하거나, 영어 공부를 했다.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나'라는 토양에 온갖 좋다는 비료를 쏟아부었다. 나는 내가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일상을 그저 '살아가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나를 '성장시키는' 사람이었다.


연말에는 내가 이뤄낸 것들을 목록으로 정리하며 '올해도 잘 살았군!' 뿌듯해했다. 가끔 캘린더를 뒤적이기도 했지만 대략 어떤 달에 무엇을 했는지 머리로 기억했다.  올 한해뿐만 아니라 그 전년도에 무엇을 했는지, 언제 무엇을 했는지 다 꿰고 있었다. 나는 나의 시간을 내 손안에 쥐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내가 올 한해 내가 밟아온 삶의 궤적을 기억하지 못했다. 승진하기 위해 겪었던 마음고생과 부모님께 독립하면서 느꼈던 다채로운 감정들을 잊어버렸다. 본능적으로 이러면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토록 중요한 사건들을 두고 고작 '게임'으로 올 한해를 정리할 수 없었다.


<올 한해 한 일>에 서둘러 '승진'과 '독립'이란 키워드를 채워 넣었다. 가벼워야 하는 마음이 계속 무겁다.


왜?


내가 예전과 다르게 살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 삶의 방식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 같았으니까.



/



상담 선생님은 이런 내 말을 듣고 질문했다.


"언제가 심적으로 더 편한가요? (과거와 현재 중) 어디가 더 자유로워요?"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나는 한때 내가 우월감을 느꼈던 부분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삶을 살고 있다.


나는 내가 요즘 그냥 '살아간다'고 느낀다.  내 시간을 관리하지 않고, 그저 출퇴근과 게임을 반복적으로 할 뿐이다.


하지만  동시에 '현재를 살고 있다'라고 느낀다.


그리고 '현재를 산다'는 건, 우습게도 과거에 내가 생각했던 가장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현재를 산다'는 것은 내가 살면서 느끼는 감정과 그 순간의 상황을 음미하고 감사해하는 삶이었다.


이를 위해 나는 무던히 애를 썼다. 자기계발을 하면서 얻는 성취감은 가장 '현재'를 짜릿하게 느끼는 수단이었고, 감사일기를 쓰며 내가 겪은 사소한 순간을 기억하려 했다.


그렇게 애를 썼던 과거에도 '현재를 산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중인 요즘 내가 정말 현재에 머물러 있음을 느끼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와 현재 중 심적으로 편한 건 지금이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게임에만 열중하면 되니까.


해야 할 일이 빼곡했던 과거보다 게임만 하는 현재가 표면적으로는 더 자유롭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자유라는 단어로 표현해도 되는 걸까?


나는 '열심히' 살지 않는 지금의 삶에 불안을 느낀다.


감히, 이 삶의 방식에 편안을 느낄 수 없다.



/



선생님은 '아무것도 안 했다'라고 표현한 올 한해를 내가 정말 많이 성장하는 해로 바라봤다고 말씀해주셨다.


독립이라는 시도도 사실은 굉장히 큰일이고 승진 또한 회사생활 3~4년 차를 무사히 넘어가면서 성과를 낸 것 아니냐고 말씀하셨다.


그건 나도 인정하는 성과라서 '그렇죠'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선생님은 자신이 좋아한다는 하나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재의 시간.


과거 어느 부족사회에서는 성인식이 끝난 후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막사를 지었다고 했다.

추우니까 난로도 갖다 놓고, 개인마다 쓸 수 있는 침상도 두고.

막사가 준비되면 막 성인식이 끝난 청소년을 그 안에 몰아넣는다고 했다.

그리고 겨우내 먹을 것을 계속 갖다준다고 했다.

아이들은 그 속에서 어른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으며 아무런 제재와 요구도 없이 겨울을 난다.

겨울은 추우니 계속 나무를 떼게 되는데, 할 일도 없이 막사 안에서 살다 보면 몸이 늘어질 대로 늘어지고 게을러져서 종국에는 나무를 떼서 나오는 재조차도 치우지 않고 계속 쌓이게 된다고.

그러다 새봄이 오고 그 겨울이 끝나면, 비로소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사회의 일원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아이들이 보낸 '재의 시간'은 유아기의 흔적을 태우고 성인으로 나아가기 전 꼭 필요한 변화의 시간이라고 하셨다.


사람은 스스로 열심히 해서 내가 나를 만드는 게 아니라 삶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성장하며 변하는 것이라고.


어쩌면 내가 게임을 하는 것은 나도 모르는 마음속의 복작복작한 것들을 이 시간을 통해 태워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야 '아, 나는 지금 재의 시간 위에 서 있구나.' 깨닫는다.



/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시간이 언제예요?"라는 질문에 나는 "아주 오래전이요."라고 답했다.


아주 오래전, 시간을 생각하지 않고 뛰놀던 아주 어린 시절.


나는 쉴 틈 없이 달려왔다.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대학생에서 대학원생으로, 그리고 바로 회사 됐다.


여행을 가기도 했고 휴가를 쓰면서 가끔 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인생에서 유년을 끝내는 '재의 시간'은 없었다.


나이는 서른이지만 나의 유년은 아직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침표를 제대로 찍은 적이 없으니까.


내가 상담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 선생님은 내 얼굴이 아주 앳되어 보였다고 말씀하셨다. 옛날에는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 되게 강했는데 지금은 성숙한 느낌이 든다고 하셨다. 당사자인 나는 잘 모를 거라고 하셨지만.


내 얼굴의 변화가 내가 뭔가를 애써서 변화시키려고 했던 시간 속에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라고 생각하는 시간 속에서 일어났다.



나는 재의 시간 위에 서 있다.

나는 이제서야 유년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 지독하게 한가하고 불안한 시간이 지나면, 나는 마침내 비로소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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