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솔아 Apr 05. 2020

만성 질환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

억울함을 다르게 바라보기


얼마 전 가슴에 혹이 생겨 조직검사를 했다. 아직 서른이 못되었는데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조직검사다. 검사 결과를 들어보니 암은 아니지만 가만히 놔둘 경우 위험한 혹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아 제거 수술을 해야 한단다. 크기가 큰 편은 아니라서 지금 당장 할 건지, 아니면 좀 더 추적 검사를 하고 몇 개월 뒤 할 건지 나보고 결정하라고 해서 일단은 다음에 한다고 했다.

집에 와서 엄마에게 전하니 '지금 하지 왜 그랬어!'라고 하셨다.

조직 검사를 하고 난 후 아물어 가는 상처에 또다시 굵은 바늘을 꽂아 얼기설기 얽혀가는 살 조직을 꿰뚫기 싫었다. 누울 때마다 가슴에 납덩이를 올려놓은 것 같고 팔도 제대로 못 들어 올리는(특히 샤워할 때 불편하다) 검사 후 이 삼일. 욱신거리는 상처 때문에 움츠리고 다니느라 어깨가 결리고 상처가 덧날까 봐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운동도 못하는 회복기 2주일. 그 끔찍스러운 기간을 연장하라니. 게다가 내 오래된 기억에 따르면 조직 검사보다 제거 수술 후의 고통이 더 컸다.

물론 제거 수술을 몇 개월 후로 미뤄둔다고 해서 그때 바로 혹을 제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애초에 검사 후 한 달 이내에 수술할게 아니라면 초음파 검사, 조직 검사, 제거 수술의 순서로 절차가 진행되기에 지금 내가 느끼는 끔찍스러운 기분을 그때 그대로 다시 느껴야 한다.(심지어 실제로 수술까지 해야 한다!) 조삼모사인 꼴이지만 더 이상 아프기 싫어 다음 기회로 미뤘다. 요즘 회사 일이 바쁜데 수술로 저하될 컨디션이 내키지 않기도 했다. 4개월 후 바쁜 게 잠시 일단락되면 그때 수술해야지.



올해 혹 제거 수술을 하면 나는 대략 30년 동안 세 번의 혹 제거 수술을 한 사람이 된다.
여성의 2차 성징이 13~15세쯤 오는 걸 고려하면 어림잡아 15년 동안 3번, 5년에 1번이라는 수치가 나온다.

동년배 여성 중 유의미하게 많은 횟수일까?
세 번째 조직 검사를 하고 나서야 드는 의문이다.

유의미하게 많은 숫자라면 내 몸이 다른 사람과 확실히 다른 거니 우울하고, 흔한 증상이라면 왜 내 주위엔 가슴에 혹이 있어서 제거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는 건지 의문이다. 부위가 '유방'이라서 굳이 말을 안 꺼내는 걸까? 아니면 혹이 있는데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해서 그냥 살아가는 건지...


조직 검사로 생긴 상처가 덜 여물었을 때에는 또다시 혹 제거 수술을 할 생각에 억울하고 화가 났다.
'대체 왜 내 몸만 이러지?'
'너무 일찍 혹이 있다는 사실을 안 거 같다. 차라리 몰랐으면 수술도 지금보다 훨씬 덜 하고 아프지도 않았을 텐데.'

상처가 아물고 또 한 번의 수술을 미뤄둔 지금 피해의식은 좀 잠잠해졌다.

대신 '인간이 살면서 꾸준히 치료하는 질병은 결국 내가 '인지'한 질병뿐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 몸 하나에 여러 이상 증상이 존재하더라도 이상이 있다는 걸 모르면 그냥 그렇게 사는 거고, 운 좋게 인지하면 그 뒤로는 인지한 몇 개의 증상만을 추적 관찰하여 치료하며 사는 것뿐이라고. 건강검진으로 찾아낼 수 없는* 질병을 이미 하나 알고 관리하는 나는, 내 안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이상 증상 중 하나를 발견한 거니 억울한 게 아니라 운이 좋다고 볼 수도 있겠구나.

가슴에 혹이 잘생기는 체질에 대한 억울함을 애써 긍정하는 느낌도 들지만 계속 억울해하는 것도 나만 손해니 대신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스스로에게 너무 객관적이면 오히려 우울해지니까. 좋은 게 좋은 거다!



*가슴의 혹을 검사하는 유방암 국가검진은 만 40세 이상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사설 건강검진에 포함되어 있어도 내 나이 대(2030) 여성은 주로 다른 검사로 교체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받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타인의 질병, 나의 질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