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한 권력 구조를 직시하는 일
보는 것과 찍는 것
영화사의 초기 마이브리지가 종식한 건 달리는 말이 속보나 습보를 하는 동안 네 발굽이 모두 지면에 떨어지는 순간이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었다. 말이 달리는 찰나의 순간을 인간의 눈으로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했고, 이 한계는 자연히 논쟁을 발생시켰다. 그런 면에서 마이브리지가 달리는 말을 12컷 안에 담는 일에 성공한 일은 카메라가 눈이라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사례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하자면 마이브리지가 찍은 12컷은 ‘보는 일’과 ‘찍는 일’은 명확히 다름을 공표한 사례였다.
조던 필은 <놉>의 초반 마이브리지의 영화를 무심히 제시한다. 한 가지 의문을 제시할 수 있을 테다. ‘할리우드 외곽에서 촬영용 말을 기르는 헤이우드 남매’를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굳이 마이브리지의 영화를 보여줌으로써 말이라는 상징을 설명해야 했을까? 친절하게도 영화는 마이브리지의 영화를 보여주고, 에메랄드(케케 파머)의 입을 빌려 마이브리지가 영화사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 설명한다. 생각해보면 조던 필은 무심하게 영화의 방향을 툭툭 던져놓았었고, 이번 <놉>에서는 영화가 ‘보는 것’과 ‘찍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영화사에 남은 무수한 감독들은 ‘보는 것’과 ‘찍는 것’ 사이를 맴돌았다. 이를 테면, 지가 베르토프는 ‘키노-아이’를 강조하며 불완전한 우리의 눈을 카메라로 대체했고, 장 엡스타인은 현실을 영화의 이미지로 시적인 변형을 가했다. 2022년의 조던 필은 <놉>에서 영화사를 새로 써 내려가는 것 같다.
첫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건 조던 필이 그간 보여주었던 흑인 인권에 대한 분명한 문제의식이었다. <겟 아웃>과 <어스> 모두 흑인이라는 배경을 떠나 생각할 수 없는 작품이었고, 그것은 분명 <놉>에서도 이어진다. 에메랄드는 마이브리지의 영화 속 말을 타고 있는 기수는 흑인임을, 영화사의 효시에는 이름이 지워진 흑인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OJ와 에메랄드가 목숨을 걸고 외계 생명체의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것은 그것만이 자본주의 사회의 질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러한 문제의식을 배제하고자 한다. 이는 <겟 아웃>에서 보여준 조던 필의 관심사가 <어스>에서 점차 넓어지더니, <놉>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열었기 때문이다. 나는 <겟 아웃>은 흑인 인권 문제라는 현상을 다뤘다면, <놉>은 그것을 계속하게 하는 권력에 대해 다룬다고 믿는다.
길들이기의 문제
<놉>에서는 말과 침팬지가 등장하는데, 그중 말이 마이브리지를 연상시킨다면 침팬지는 자연히 <킹콩>을 떠올리게 한다. 1933년 할리우드라는 산업은 킹콩을 ‘길들였고’, 마침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위에서 킹콩을 포효하게 했다. 할리우드라는 자본은 스펙타클을 위해 어떤 것도 길들일 수 있는 곳이었고, 자본은 스펙타클을 우러러보는 관객들에서 나왔다.
주프(스티븐 연)는 어릴 적 고디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데, 고디는 자본이 길들인 줄 알았던 대상이자, 자신을 길들이는 인간에게 처절한 복수를 가하는 존재이다. 조던 필은 우리가 경탄을 아끼지 않았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위의 킹콩을 TV쇼 녹화를 위한 세트장으로 옮겨놓았다. TV쇼의 인기는 자본으로 치환되었을 것이고, 그 자본은 고디를 길들이게 했다. 그리고 조던 필은 고디가 인류에게 유혈이 낭자한 복수를 가하게 함으로써 할리우드가 길들였던 대상이 오늘날에는 조금씩 삐걱거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타인의 주목을 끌게 하는 행위는 그 사람의 권력을 나타내고, 권력은 자본으로 치환된다. 영화에서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주프이다. 주프는 할리우드를 축소해놓은 것 같은 테마파크를 운영하는데,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하는 쇼를 펼침으로써 돈을 번다. 주프는 스스로를 일종의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듯하는데, 그가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은 이목을 끄는 권력을 상실했을 때이다. 늘 그렇듯 주프는 쇼를 펼쳤지만, 관객들은 주프보다는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외계 생명체에 눈을 뺏겨버리고, 주프마저 하늘을 우러러보는 순간 주프와 관객은 평등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외계 생명체는 이목을 잡아끈다는 점에서, 압도적인 권력을 지닌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길들여지는 줄 알았으나 결국에는 우리의 목숨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TV쇼의 고디를 닮았고, 어딘가 삐걱거리는 오늘날의 할리우드를 닮았다(적어도 조던 필은 그렇게 생각할 테다). 영화의 홍보문구처럼 그것은 우리 위에 있다. 거대하고, 주목받길 바라고, 미쳤다.
영화의 후반부 OJ와 에메랄드가 외계 생명체를 길들이고, 그것의 사진을 찍으려 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영화사를 새로 정립하려는 것만 같다. 여기에서 조던 필이 내세운 규칙은 단연 “절대 그것을 쳐다보지 않고, 현혹되지 않는 것”이다. 불평등한 권력 구조에 현혹되지 않은 채 그것을 담아내는 일. 에메랄드가 마침내 필름 카메라로 찍었을 때 그것은 목숨을 잃고, OJ는 서부극의 카우보이처럼 우리 앞에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