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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vertheless Jun 21. 2020

고독을 즐기라는데.

그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주말의 토요일


아침보단 늦고 점심보단 이른


10시 45분


별일이 없다면 보통 이즈음에 눈이 떠진다. 눈꺼풀의 무거움에서 해방된 느낌, 멍하니 천장에 초점 없는 눈을 고정한다. 그렇게 10분쯤 흘렀을까 2 중창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이 오른쪽 미간을 뜨끈하게 달구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제야 조금 정신이 드는 듯하다.


하품을 시원하게 한번 하곤 습관적으로 충전기를 꽂아둔 채 잠든 핸드폰을 들어 눈앞에 들이밀지만 역시. 아니 오늘도 어김없이 메시지 하나 와있진 않다. 뭐 익숙하다.


스마트폰이라는 제품은 그저 내게 간헐적으로 몇 가지 앱을 켜주는 도구로 전락한 채 혹시 몰라 들고 다니는 호신용 벽돌이 된 지가 오래이니 말이다. 그래도 이 벽돌은 내게 많은 정보를 주기에 잠깐의 웹서핑으로 잠시 디지털 세상에 나를 연결해본다.


재밌어 보이는 것들 / 참신해 보이는 것들 / 공감이 가는 것들 / 꿀띱 혹은 리뷰 들을 스크롤하다 보면 평일의 알람 소리와는 다른 소리가 몸뚱이를 움직이게 끔 유도한다.


꼬르르르. 아침도 점심도 아닌 무언가를 만들어 먹을 시간인 듯하다. 대충 이불을 정리하고 냉장고 앞으로 가 들어있는 몇몇의 재료들을 확인하고 만들 수 있는 몇 가지 요리 중 가장 당기는 무언가를 머릿속으로 요리한 뒤



라면을 끓인다.

보글보글 (역시 주말은 짜파게티 요리사다.)



후다닥 만들어진 면이 붇기 전 해야 할 의식인 태블릿을 밥상 한편에 배치한 뒤 유튜브를 반찬 삼아 식사를 하자. 5초 광고를 시작으로 빈틈없는 영상의 오디오 소리, 옆 옆 집의 공사 소리, 그 속을 파고든 가끔의 새소리, 쩝쩝대는 나의 되새김질 소리가 섞인다. 모든 게 적당해서 꽤 즐길만하다.


 15분 남짓한 식사시간이 끝나면 어느덧 시계 시침은 12를 가리키고 있지만 분침이 곧 그 위치를 바꿀 듯 말 듯 하다. 한 것도 없는 하루의 해는 이미 중천이다.


..


잔잔한 노래의 재생 버튼을 누르고 방안의 구석에 다시 자릴 잡았다. 누운 것도 그렇다고 앉은 것도 아닌 자세로 뭉개져 다시 멍하니 천장을 보다 보면 덩그러니 이 순간을 감싸며 영화 “내부자들”의 이경영 대사가 떠오른다.


"존나 고독하구만."


평화로운 듯  여유롭게 널부러져 있는 기분을 즐기면서도 문뜩 이 느낌이 섞여 들어온다.


고독이라는 감정은 어디서 오는가.


.

.

.


매번 바쁘다고 말할 뿐인 동성친구들

조만간 보자고 말할 뿐인 이성친구들


스크롤 세 번이면 끝나는 연락처 함을 열심히 둘러봐도


어디 연락할 곳은 없다.


"심심함"

"외로움"

"쓸쓸함"

"말하고 싶음"


뭐 그런 감정들이 고독을 부추기는 듯하다.


역시 집에만 있으면 꿀꿀하니 밖으로 나가자.  약속은 없지만 외출을 위해 곧장 화장실로 가 대충이지만 꼼꼼한 느낌으로 세신을 한 뒤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온몸에 수건을 튕기며 상쾌함을 만끽한다. 그리곤 서랍을 열어 뽀송한 속옷을 입는 찰나 다시 생각이 스친다. ( 역시 혼자 나가봐야 어딜 가든 시끄럽기만 할 거야.. 집에 있을까..)


이유와 명목이 옅은 외출은 루틴처럼 다시 스스로를 속옷만 입은 채 방바닥으로 인도한다. 10분, 20분, 30분 무의미한 핸드폰 화면의 스크롤이 멈칫한다. 앞선 감정이 다시 감싼다.


"존나 고독하구만"


그래 나가기로 한 거 나가자. 양말을 신자. 티셔츠까지는 입는다. 너무 속력을 냈을까 집이 더운 걸까 좀 전에 느끼던 상쾌함은 온데간데없이 송골송골 찝찝한 땀이 맺히고 있다. (역시 그만둘까. 넷플릭스나 볼까.)


하지만 딱히 보고 싶은 게 없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기에 바지까지 입는데 성공한 나는 거울 앞에 서서 뭔가를 잊은 기분으로 그 안을 들여다본다. 선크림도 발랐는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이를 닦지 않았다.


이미 화장실 바닥은 물 천지. 한쪽 양말만 벗은 뒤 칫솔과 치약을 구조해 쓱싹 구취를 제거한 뒤 다시 상쾌함을 얻었다. 하지만 야만스러운 행동으로 샤워 후 방바닥에 설치한 지뢰 같은 물방울이 한쪽만 신겨진 양말 한가운데로 스며들어 촉촉한 듯 찝찝하게 엄지발가락 밑을 적셔논다.  적당히 찝찝해서 기분도 적당히 찝찝하다.


(역시 나가지 않는 게 좋겠다.. ) 아냐 찰싹. 셀프로 따귀를 때리고 이 정도는 금방 마르니까 위로한 뒤 뜨끈한 운동화 속에 발을 욱여넣는다. 티눈이 난 것 같은 애매한 촉감의 왼발. 빠르게 현관문을 열고 모험의 시작한 오른발의 선봉에 마지못해 두 다리가 문밖을 나섰다. 드디어 결심으로부터 두 시간 만에 나오는대는 성공했다.


하지만 갈 곳은 없다.


노트북과 책 한 권은 챙겼으니 (무겁지만 혹시 모르니까 ) 카페로 가자. 따릉이를 타고 미끄러지듯 당도한 홍대 부근의 자주 가는 몇몇 개의 카페 중 순간 끌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인지라 사람이 많다. 혼자 온 것이 왜인지 눈치가 보여 디저트도 하나 추가해 주문을 마친 뒤 구석자리에 앉았다. 밖의 열기와는 달리 서늘할 정도로 에어컨을 틀어놓은 실내. 눈앞에 서로가 서로를 더듬으며 온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즐비하다.


비빌 곳이 없어 갈 곳 없는 내 두 팔을 엑스자로 교차해 온도를 높여본다. 주변의 온도는 높아지는데 오히려 내 온도는 내려가는 듯 시리다.


부럽.. 존나 고독하구만… 타이밍에 맞춰 이 문장을 자연스럽게 읊조린다. (역시 괜히 나왔어.. )라고 생각은 해본 뒤 나왔으니 머리를 푹 박은 채 챙겨 온 노트북에 이 감정을 정리해보기로 한다.

.

.


보고 싶은 친구들에게 연락하고 싶기도 하고,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지만 모두 어딜 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감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외롭거나 심심해서 만나려는 감정이 작용한 작위스러운 만남 혹은 자연스러운 만남조차도 그저 일회성의 쾌락만이 지배하는 무의미한 시간이 돼버릴 것 같아 쉽게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저 모순적이다.)


경험을 통해 실행했던 선행학습들이 그것을 막아서선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대답을 내 안에 남길뿐.


빨리빨리, 순간에 비치는 겉모습으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어필해야 하는 인싸력 배틀의 관계망 속의 표현법 또한 미숙한 나는 그곳과도 단절 아닌 단절을 행하고 은둔하며 살아가지만 그게 불편하지도 안 불편하지도 않은 기분이라 뭐가 맞는지를 여전히 모르겠을 뿐이다.


관계의 깊이 혹은 단계를 밟아 친밀감을 형성하는 방법을 잊은 채 오늘도 나는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익숙함을 기피하고 격파하고 싶지만.. 음 뭐 그렇다.


절제라는 단어를 핑계 삼아 설렘이라는 감정을 발현시키는 순간을 없앤 지루한 일상의 반복. 간혹 연결되는 간헐적인 만남도 막상 내 안의 공허함을 채우기엔 역부족이지만 그걸로도 감지덕지다. (가끔 챙겨주는 이들에겐 늘 감사하다.) 그렇게 스스로 만든 자발적 고립의 환경. 이곳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여전히 정해진 듯 정해지지 않은 채 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다.


알콩달콩한 주변의 모습들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이것은 시샘인가, 질투인가.


지금 이 순간 이 공간은 하나이지만 나만이 외딴섬에 고립된 듯 단절되어 불협화음을 내는 듯하다. 다만 이 꿀꿀한 감정의 화살을 그들에게 겨냥할 필요는 없다. 그들 또한 깊은 관계가 되기까지 겪은 과정이 있고 용기 있는 표현과 행동을 통해 만들어낸 결실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으니 말이다.


"관계"라는 게 얼마나 어렵고 고결한 일인지를 말이다. 그들을 존중한다. 어려운 일을 해낸 그들이 영원하진 않겠지만 영원할 순간은 남기고 있지 않은가.


그저 지나간 찰나의 것들에서 솔직하게 말하지도, 표현하지도 않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을 뿐이었던 소심한 행동들로 알콩달콩한 관계도 삼삼오오 모여 왁자지껄한 관계도 만들지 못하고 있음을 누구보다 내자신이 잘 알고 있기도 하니까 말이다.


내뱉지 못하고 내 안에서 빙글빙글 돌기만 했던 전하지 못한 말들이 너무도 많은 것 같다. 보고 싶은 이들도 있고 부탁하고 싶은 것들도 있지만 새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나는 여전한 듯하다.


그저 대화가 고프다.


집중이 어느 정도 깨지고 나니 해는 뉘엿뉘엿 누운 자세가 됐고, 허기짐 또한 어김없이 찾아왔다. 저녁은 집에 가서 먹어야겠다. 빈 잔과 접시를 반납하고 따릉이를 타고 양화대교를 넘는다. 오늘은 평소에 쉽사리 볼 수 없는 분홍과 주황색을 섞어 만든 멋진 석양이 대교를 짐어삼켰다. 가히 장관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서서 붉어진 세상을 바라본다. 저무는 석양이 혼자 보기 아까울 뿐이지만 여전히 전화할 곳 메시지 하나 보낼 용기도 없다.



존나 고독하구만..



고독이란 무엇인가.



금세 해가 지고 어둠이 완연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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