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듦으로써의 풍요.
학창 시절 맞벌이셨던 부모님.
내가 집에서 할 수 있는 요리는
단 두 개였다.
“계란 볶음밥”과 “계란 넣은 라면”
이것들이 질릴 쯤이면 가끔 반찬을 해놓고 출근하셨던 어머니 / 퇴근하시며 가끔 무언가 사 가지고 돌어오셨던 아버지
그렇게 끼니는 때우는 것. 살기 위해 먹는 수준의“맛”이 결부된 식사는 양념 맛으로 범벅돼있었고, 식중독을 엄폐하던 모교의 급식 맛.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곧 잘 요리하는 것을 즐긴다.
많은 플랫폼을 통해 소개된 요리 과정은 즐거움을 일깨워주었고 이제 할 수 있는 요리는 100가지가 넘는다. 맛도 곧 잘 내며 괜찮다. 대접한 요리는 다들 맛있게 먹어주기에 감사 할 따름이다.
기본을 배우고 사용하는 방법이 익숙해진 지금. 예전과는 달리 요리를 통해 만들어낸 한 끼의 식사가 얼마나 가치 있는 순간을 내포하는지를 이해중이다.
그렇게 한 끼를 때우기보단 한 끼를 즐기게 되었고,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함께 식사하는 사람과의 대화의 질 또한 풍요로워졌다.
그렇게 매 끼니 식사를 준비해주신 어머니의 정성과 수고스러움을 이해하고, 좀 더 건강한 한 끼를 위해 구매하시는 신선한 재료 선택법, 재료 손질법, 노하우를 배우고 익히며 그 노고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차린 밥상으로 식사를 대접해본다.흐뭇하다.
또 다른 한편으로 식당에서 먹는 식사 속에선 대접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를 배우게 됐고 맛집이라 불리어지는 식당들의 수고스러움 또한 이해해보려 한다. 맛을 음미하며, 재료를 분석하고 식당을 관찰해본다.
물론 진정 맛있는 맛집 / 그럴싸한 맛집도 / 거짓뿐인 맛집도 존재하지만
모든 것을 사 먹는 행위가 아닌 직접 해 먹는 행위를 통해 얻은 깨달음 덕분에 해석이 가능해졌다. 타인을 이해하는 영역을 넓혀가며 주변에 풍요로움을 찾아 발품을 뛴다.
오늘 저녁도 밥을 짓고 찌개를 끓이고 반찬을 준비한다. 작지만 풍요로운 순간을 만들어본다.
여전히 좋아하는 계란 볶음밥과 계란 들어간 라면을 통해 시작한 요리를 떠올리며
당신의 식탁 또한 해 먹는 즐거움을 통한 작은 변화로 시작해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어 가보길 제안 해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