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팔 거면 왜 사는 거야?
중간자(中間子) 기록보부상
= 책 넣을 공간이 부족해서 이제 책탑을 만들었어
- 책을 쌓기만 하고 읽기는 해?
= 응. 나는 쌓았다가 읽어
= 책탑이 삼면이 되어서 곧 무너질 것 같은 상황이 되었어. 정말 정리해야 하는데 팔러 가야지
- 책을 팔 거면 왜 사는 거야
= 책을 팔아서 순장용 책을 사려고
알다시피 [순장]은 어떤 죽음을 뒤따라 다른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강제로 죽여서 주된 시체와 함께 묻는 장례 습속이지만 요즘 쓰는 말로는
[나 죽을 때 같이 묻어줘야 는 것]들을 순장용 물품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걸 책으로 할 생각이다.
책을 사기 위해 책을 파는데 책을 판 돈으로 책을 산다 할 때 책 판돈보다 더 돈을 내고 책을 산다. 그렇게 책을 원 없이 사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나의 현실 도피일지도 모른다.
현실도피 책은 남들에게 대단해 보일 수도 있고 나의 지적 욕망도 채울 수 있다.
그리고 책을 산다고 말하면 다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기에 난 좀 멋진 사람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책을 사기 위해서 정해둔 카드 한도는 벌써 넘어가 버렸고 지금 산 책 보다 더 읽고 싶은 책을 위해서라면 지금 책을 팔아야 한다.
책을 파는 이유를 정리한다면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책을 둘 공간이 없기 때문이며
세 번째 이유는 책을 또 사기 위함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친구네 집에 가서 같이 놀다가도 책을 읽었던 아이였다. 친구네 어머니가 내가 책 읽는 속도를 보시고 우리 아이가 아직 시작도 안 한 책을 혼자 다 읽었다면서 자신의 아이가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오지 말라는 말도 하셨었다.
책만 너무나도 읽고 싶었다.
책을 사서 읽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친구네 집에 있던 세계명작동화나 안데르센 전집 그 외 먼 나라 이웃나라 같은 유명 전집들을 사서 집에 두고 읽을 수는 없었다.
우리 집이 전집을 구매해 내 방에 두기에는 풍족하지는 않았던 어린 날이었다.
나의 선물은 무조건 책으로 통일했다.
생일이나 축하받을 일이 있다면 무조건 책으로 받았다.
아예 순번을 정해서 책을 사다 달라고 부탁도 했었다. 그렇게 아이는 어른이 되었고 돈을 벌게 된다면 원하는 대로 책을 사서 읽겠다는 결심을 했고 그 결과가 현재 책탑으로 나오게 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어린 시절 책을 읽고 싶었고 책을 갖고 싶었다. 책을 너무 읽어서 아부지나 어무이에게 책이 찢기고 버려지는 일도 겪었기에 어린 시절의 나의 책 모으기는 시도할 수 없었던 영역이었으나 성인이 되면서 부모님도 나의 책사랑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만화책을 모으기 시작했고, 만화책에서 소설책 그러다가 에세이와 관심 있는 모든 책들을 사기 시작했다.
책탑을 쌓았고 현재는 책을 사기 위해 책을 파는 상황까지 되었다. 끊을 수 없는 현실도피와 함께 과시욕이 되어가고 있는 내 책탑은 무너질 것처럼 위태롭다.
현재 내 책은 내 방 삼면을 둘러쌓은 책탑상태로 나는 뱀파이어 자세로 누워 자야 하는 상태다.
부동의 자세로 삼면의 책들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며 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