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화석

기록과 기억 사이

by 슈리엘 아샬라크

모든 것이 빛으로 기록되는 시대

우리는 죽어서도 썩지 않는 육신이 되었다

지우개 없는 연필로 쓰인 삶의 기록들

클릭 한 번에 소환되는 과거는

현재의 발목을 잡는 덫이다


망각이 금지된 시대라 잊힐 권리는 짓밟힌다

우리는 용서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잊히지 못해 매일 다시 처형당한다

서버의 구석진 곳에 박제된 그날의 고통은

다시 한번 삭제를 거부당한 채 꺼내진다


우리의 머리는 텅 빈 광장이 되어가고

기계가 뱉어내는 데이터의 배설물을

지식이라 믿으며 허기를 채운다

기록은 영원하나 기억은 장례식을 하고

그 기록을 찾은 이의 뜨거운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역사는 디지털 화석 속에 갇혀있고

데이터화된 기록은 그것의 양분이다

우리네 삶은 기록인가, 위조인가


검은 유리창 위로 눈물 한 방울 떨어져도

0과 1 사이에는 결코 젖지 않는 자리가 있다

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