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취미생활 (4)

무언가 만든다는 건

by 슈리엘 아샬라크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냈을 때의 기쁨을 아는 사람은, 이미 세상과 깊이 연결된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의 세계를 손끝으로 창조하는 법을 알고 있으며, 존재의 확신을 감각으로 느끼는 사람이다. 나는 내 손이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서 자주 위안을 얻었다. 종이 한 장, 금색 포장지 조각, 버려진 천 한 조각이 내 손을 거치면 어느새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처음으로 만든 건 초콜릿 포장 받침으로 만든 그랜드피아노였다. 친구들이 예쁘다고 했지만, 나에게 그것은 단순한 장식 이상의 것이었다. 한때 나의 마음이 닫혀 있던 시절, 그 작은 피아노를 만드는 동안만큼은 세상과 조용히 대화할 수 있었다. 완성된 피아노는 건반도 움직이지 않고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나에겐 그 어떤 악기보다 맑은 소리를 냈다.

‘만들어냈다’는 성취감, ‘내가 해낼 수 있다’는 희미한 믿음. 그 두 감정이 마음의 먼지를 털어주었다.

그 뒤로 나는 수없이 많은 것들을 만들었다. 천 조각을 이어 가방을 만들고, 실을 엮어 인형을 만들고, 흙을 반죽해 도자기를 빚었다. 내가 만든 것들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이었다. 비록 완벽하지 않아도, 그 안에는 내 시간과 체온, 그리고 집중이 담겨 있었다.


세상과 멀어졌다고 느껴질 때, 손끝의 촉감은 언제나 나를 현실로 이끌었다. 도자기를 만들던 시절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때 나는 손물레를 제대로 다룰 줄 몰랐다. 선생님은 엄격하지 않았지만, 기술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유약을 바르다 작품을 깨뜨리기도 했다. 가마에 예쁘게 굽지 못하셨다.(이건 전문가의 말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내게 기술보다 훨씬 큰 것을 가르쳤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 부서져도 다시 만들 수 있다는 것. 내가 빚은 그릇들은 울퉁불퉁했고, 화병의 몸은 약간 터져 있었지만 꽃을 꽂으면 이상하게도 금세 생기가 돌았다. 분청 흙으로 만든 화병은 유리병보다 오래 꽃을 살려주었다. 마치 흙이 꽃에게 속삭이듯,

“괜찮아, 나도 불완전하니까.”

그렇게 위로하는 것 같았다. 그때 깨달았다. 만드는 일은 세상과 닮아 있다. 손으로 빚는 흙의 질감은 사람과의 관계만큼이나 예측할 수 없다. 너무 세게 누르면 금이 가고, 너무 느슨하면 모양이 흐트러진다.

세상살이도 그렇다. 애정을 쏟되, 너무 조이지 않아야 한다. 만들어진 결과보다,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일. 그것이 내가 도자기 앞에서 배운 인생의 이치였다.


> 내가 만들었던 도자기 작품들


뜨개질을 배울 때는 다른 종류의 평화를 느꼈다. 털실 한 가닥이 손끝에서 얽히고 풀리며 가방이나 인형, 과일 모양 주머니가 되었다. 한 땀 한 땀 실을 엮는 동안 마음의 결도 함께 정리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명상은 뜨개질 속에 있었다. 어느 날은 밤새 코바늘과 일반 수놓는 바늘로 인형을 만들었다. 이른 새벽, 완성된 인형을 바라보며 이상한 눈물이 났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완성했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살게 했다. 인형에 말도 걸었다.

“안녕, 너 참 이쁜 아이구나!”

이후로 내가 만든 대부분의 것들은 내 곁에 남지 않았다. 누군가의 손에, 집에, 혹은 먼 도시로 흩어졌다. 그러나 나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결국 자신의 한 조각을 세상에 나누는 일이기 때문이다. 받은 사람은 잠시 그 물건을 통해 나를 기억하고, 나는 그 기억이 잠시 남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 기억은 오래가지 않아도 좋았다. 만들어진 물건이 사라져도, 그것을 만들던 순간의 집중과 기쁨은 내 안에서 오래 남았다.


> 내가 실로 만든 작품들


어느 날, 나는 수제 노트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종이 절단기를 사서, 색지와 실로 제본하고 표지를 골랐다. 세상에서 단 한 권뿐인 노트를 완성했을 때, 마치 시를 한 편 써낸 기분이었다. ‘수공예’라는 말속에는 ‘시간’과 ‘사유’가 함께 들어 있었다. 사람들은 내게 노트를 달라며 줄을 섰지만, 나는 쉽게 내주지 않았다. 그건 단순한 노트가 아니라, 나의 시간과 감정이 엮인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국 하나만 남기고 전부 선물로 나누었다. 내 손에서 떠났지만, 내 마음에서는 사라지지 않았다.


> 내가 만들었던 수제 노트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사람이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결국 나 자신을 빚는 일이다. 완성된 결과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만드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이다. 손끝으로 세상을 만질 때, 마음은 그 온도를 기억한다. 그 기억이 쌓여 결국 나를 만든다.


현대 사회는 너무 많은 것들을 자동화했다. 버튼 하나로 음악이 나오고, 한 번의 클릭으로 주문이 끝난다. 하지만 그 편리함 속에서 인간은 점점 ‘손의 기억’을 잃어간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어쩌면 잊힌 감각을 되찾는 일일지도 모른다. 흙의 차가움, 실의 부드러움, 가위가 종이를 가르는 소리, 납작한 스펀지의 감촉. 이 모든 감각이 우리를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든다.

무언가를 만들 때마다 나는 세상과 다시 연결된다. 고독 속에서도 손끝이 움직이면 마음은 살아난다. 그건 단지 취미가 아니라, 스스로를 구원하는 일이다. 남들은 그걸 ‘소질’이라 부르지만, 나는 ‘의지’라고 부르고 싶다.


잘하지 않아도 좋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손을 움직이는 그 순간, 나는 세상에 참여하고 있다.


도자기의 흙이 내 손에서 화병으로, 가방의 실이 인형으로, 노트의 종이가 기록으로 변해갈 때 나는 비로소 ‘살고 있다’는 실감을 얻는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만든 것들이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위로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손으로 만든 가장 큰 작품일 것이다.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건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쓰는 일처럼,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다’는 사실을 손끝으로 새기는 일이다.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소질이 없어도, 결과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그 순간, 당신은 이미 세상에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라고.


끊임없이 도전하라. 그것이 우리의 행복이며, 고독한 시간을 견디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