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취미생활 (3)

그림을 그린다는 건

by 슈리엘 아샬라크


그림은 내 인생에서 언제나 말보다 앞서 있었다. 손끝은 거짓을 몰랐다. 연필을 쥔 순간,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선이 곧 마음이었고, 색이 곧 숨결이었다. 처음 그림을 ‘제대로 한 번 그려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재능에 대한 확신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사랑받고 싶다는 간절한 본능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눈에 내가 빛나는 존재로 비치기 위해서, 그들의 마음에 흔적 하나 남기고 싶어서.


그 욕망은 자만심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독이 발아한 작은 씨앗이었다. 남들이 나를 외면할수록, 나는 그림 속에서 얼굴을 만들었다. 사랑받지 못한 자리에서 사랑을 그렸다. 그림은, 내가 세상과 다시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처음 그린 대상은 어린 남동생이었다. 잠든 얼굴은 천사의 표정처럼 고요했고, 나는 그 고요를 깨우지 않으려 숨을 죽였다. 커다란 스케치북을 그의 얼굴 위에 대고, 조심스레 윤곽을 따냈다. 눈, 코, 입, 그리고 그 주위의 미세한 그림자까지 — 나는 마치 조각가처럼, 누군가의 얼굴을 새로 창조하고 있다는 희열에 휩싸였다.

‘나도 무언가를 똑같이 그릴 수 있구나.’

그 깨달음은 전율처럼 온몸을 훑었다. 그림을 다 마치자, 남동생의 얼굴이 종이 위에서 다시 숨 쉬는 것 같았다. 그때 느꼈던 기쁨은 아직도 내 삶의 첫 불꽃으로 남아 있다.


그림은 이후로도 나를 붙잡아 두었다. 아무리 세상이 어지럽고, 집안이 나를 이해하지 못해도, 그림만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학교에서조차 선생님들은 내게서 그 가능성을 보았다.

‘너는 내 수업시간에 그림을 그려도 된다’

그 말들은 내게 허락장이었다. 수업 중에 그림을 그려도 나무라지 않았다. 도망치듯 시작한 낙서는 어느새 나의 언어가 되었다. 나는 말 대신 그림으로 존재를 입증했다.


만화창작부는 늘 2학년이 되어서야 들어갔다. 그때마다 선배들이나 선생님은 ‘1학년 때 들어왔으면 장(長)을 시켰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그 말에 담긴 신뢰가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세상은 내게 긴 예술의 사다리를 내주지 않았다. 대학 문턱 앞에서 길은 끊겼고, 나는 스스로의 재능을 짊어진 채 방황했다.


하지만 그림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좁은 방 한편에서도, 빛이 드는 창가에서도, 나는 여전히 종이 위에 색을 입혔다. 기숙사가 아닌 월세방을 구했을 때는 처음으로 진짜 캔버스를 폈다. 그때의 떨림은 마치 나만의 작은 세계를 세우는 의식 같았다. 벽을 마주하며,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과 대면했다.


친구가 결혼했을 때도, 나의 첫 관심은 축하가 아니라 ‘그 집 벽의 여백’이었다. 그림을 걸 공간이 있느냐는 질문에 친구는 웃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그날, 그 벽을 떠올리며 아크릴 물감을 꺼냈다. 그려 넣은 것은 커다란 푸른 달이었다. 왠지 모르게 그날은 느낌이 강하게 왔다. 물감이 스며드는 소리, 붓끝의 떨림, 달의 경계가 퍼져가는 그 찰나 — 그건 내가 세상과 다시 화해하는 순간이었다.

> 표지로 쓰이기도 한, 친구 결혼선물인 푸른 달 그림


그림 속의 달은 바다 바로 위에 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명백한 실수였다. 달의 반영이 물 위에 비치는 게 아니라, 완전히 둥근 채로 떠 있었다. 하지만 그 어긋남이 나는 좋았다. 그건 현실의 달이 아니었고, 내가 바라던 세계의 달이었다. 달빛은 바다 위로 쏟아지고, 푸른 구름은 신비롭게 둘러섰다. 지구의 달이 아닌, 마음의 행성 위에서 달은 그렇게 떠 있었다.


그림은 약 네 시간 만에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그보다 더 잘 나온 아크릴 그림을 아직 그리지 못했다. 예술이란 때로, 무의식이 완벽히 작동한 어느 한순간의 기적이 아닐까. 그림이 나를 선택한 날, 나는 인간의 언어가 아닌 색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늘 냉혹했다. 캔버스에 담긴 세계를 부모님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림을 그릴수록 ‘쓸데없는 짓’이라는 한숨이 더 깊어졌다.

팔아야 했다. 만원 남짓한 돈으로 한 점의 그림을 넘길 때, 나는 마치 내 몸의 일부를 떼어내는 기분이었다. 그림이 팔려 나가는 건 작품의 완성이 아니라 이별의 통보였다. 그럼에도 버리지 못했다.


부모님은 정리를 좋아했다. 버리는 걸 잘하셨다. 내게 소중한 것들이 그들에게는 짐이었다. 그래서 남은 그림들이, 어쩌면 더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림은 미완으로 남아, 시간의 안쪽에서 천천히 숙성된다. 손대지 않아도, 언젠가 그 위에 나의 삶이 다시 덧칠될 것이다.


그림을 그리며 나는 배웠다. 예술은 완성이 아니라 계속 살아 있으려는 몸부림이라는 걸.

완성된 순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미완의 상태로 계속 숨 쉬며 우리를 다시 부른다는 것을.


언젠가, 집이라는 단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날이 온다면 나는 그때 미완의 그림들을 다시 꺼낼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지금의 나를 얹을 것이다. 그림은 나를 증명할 것이고, 나는 그림을 증명할 것이다.


그날의 나를 믿는다. 언제나처럼, 붓은 나의 언어이고, 캔버스는 나의 고독이다. 세상이 내게서 등을 돌릴 때조차, 나는 그림 속에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