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즐긴다는 건
인간이 언어를 가지기 전부터 소리를 냈다는 기록이 있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를 모방했고, 새가 지저귀는 리듬을 따라 울었다. 이 원시적인 소리는 점차 박자와 선율을 띠며, 공동체를 묶는 언어로 자라났다. 전쟁이 시작되면 북소리가 울려 퍼졌고, 아이가 태어나면 어머니의 자장가가 흘렀다. 죽음을 맞이한 이의 곁에는 애도의 노래가 흐르곤 했다.
인류의 역사는 곧 음악의 역사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 사실을 막연히 느꼈다. 설명하기 힘든 끌림, 가슴 깊은 곳을 울리는 알 수 없는 떨림이 있었다. 그것은 삶이 내게 건네는 또 하나의 언어였고, 나는 그 언어에 귀 기울이고 싶었다. 호흡과 맥박, 그 안에서 솟아나는 리듬이 이미 음악의 원형이었을 것이다. 어릴 적 만화영화를 따라 부르던 기억, 길가에 울려 퍼지던 가요 한 소절이 저절로 입가에 맴돌던 순간은, 본능이 우리 안에서 잠들어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작은 증거였다.
나는 그런 본능을 사랑했다. 친구들이 최신 가요를 따라 부를 때도, 나는 오히려 클래식에 마음을 주었다. 오페라의 숨 가쁜 아리아, 뮤지컬 무대에서 터져 나오는 화려한 합창은 내게 더없이 큰 즐거움이었다. 다른 이들과는 취향이 달랐을 뿐,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같았다. 그 마음은 어쩌면 나를 지탱해 온 힘이었다.
피아노와 리코더의 시간
어릴 적, ‘뭐라도 하나 배워야 한다’는 부모님의 권유로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되었을 때, 나는 재능보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손가락은 느리고, 악보를 읽는 눈은 굼뜨고, 리듬을 맞추는 감각은 남들보다 떨어졌지만, 연주하고 싶다는 열망만큼은 누구보다 강했다. 그러나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못했다. 결국 피아노는 중도에 그만두어야 했고, 건반 위에서 흘러나오는 꿈같은 소리를 뒤로한 채 학원을 떠났다.
그 대신 내 손에 들어온 것은 작은 리코더였다. 학교 음악시간에 처음 만난 이 작은 플라스틱 악기는 놀랍게도 내 상상력의 가장 좋은 벗이 되어 주었다. 악보가 없어도, 머릿속에 맴도는 선율을 곧장 불어낼 수 있었다. 드라마에서 흘러나오던 낯선 중국 노래를 단 한 번 듣고, 시험시간에 리코더로 연주해 내자 선생님은 놀라움과 함께 웃음을 지어 주셨다.
악보라는 낯선 지도
초등학교 어느 날, 음악 교과서를 깜빡 두고 와 뒤에 서 있어야 했던 일이 있었다. 나는 장난스럽게, 머릿속에 있는 아무 음표나 기호를 이어 붙여 괴상한 악보를 만들었다. 형식만 흉내 낸 낙서였지만, 음악선생님은 그 속에서 작은 가능성을 보셨는지, 그날부터 내게 따로 숙제를 내주셨다. 악보를 베껴 오라는 숙제였다. 내 손으로 선과 점을 따라 긋다 보면, 그저 선율의 껍데기였던 음표들이 언젠가 내 가슴속 음악과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자랐다. 선생님은 결국 사정상 학교를 떠나셨지만, 그때 내게 남겨진 작은 불씨는 오랫동안 꺼지지 않았다.
“너는 뭐라도 될 아이란다.” 선생님이 남긴 그 한마디는, 지금도 내 귀 속에 음악처럼 울린다. 음악은 그렇게 내게 단순한 과목이 아니라, 나 자신을 믿게 하는 또 하나의 길이 되었다. 행복만이 아니라 사랑과 용기를 준 존재가 되었다.
회사와 악기, 늦은 배움의 기쁨
첫 직장에 들어가자 나는 잃었던 피아노를 다시 붙잡고 싶었다. 야근과 회식으로 지친 몸이었지만, 마음은 늘 건반을 갈망했다. 그래서 퇴근길에 작은 피아노 학원에 들렀다. 성인반 수업은 언제나 활기가 넘쳤다. 실력 있는 사람들이 앞장서 연주하면, 우리는 술잔을 기울이며 그 소리를 귀로 마셨다. 연주회라는 이름의 작은 축제는 음악이 사람들을 얼마나 단단히 묶어주는지 보여 주었다. 나는 내 실력이 부족해도, 내가 좋아하는 곡의 악보를 무조건 뽑아 갔다. 내 손에 과분한 곡이라도, 건반 위에서 만나는 순간 나는 살아 있음을 느꼈다. 내가 가져간 악보가 선생님을 통해서 또는 나를 통해 연주되면, 반드시 사람들이 곡 이름과 악보를 물었다. 그만큼 내가 좋아한 곡들은 다른 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바이올린 동호회에 가입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현의 떨림이 내 몸을 흔드는 순간, 나는 음악이라는 거대한 강물 속에 잠긴 한 방울이었다. 거기에는 경쟁도, 순위도 없었다. 오직 함께 울고 웃는 공명만이 있었다. 음악은 나를 다시 아이로, 다시 꿈꾸는 사람으로 되돌려 놓았다.
삶과 음악, 그리고 숨결
이제 나는 깨닫는다. 내 삶은 언제나 음악과 닮아 있었다는 것을. 하루하루가 하나의 악장이고, 매 순간이 리듬이었다. 어떤 날은 아침 햇살처럼 잔잔한 선율이 흐르고, 어떤 날은 먹구름 낀 하늘처럼 비장한 곡조가 이어졌다. 슬픔은 느린 단조(短調)로 스며들었고, 사랑은 격렬한 포르테로 터져 나왔다. 기쁨은 늘 가볍게 반짝였고, 분노는 불협화음으로 치솟았다.
음악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었고, 세상과 이어주는 다리였다. 나는 음악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하지만 고요한 순간마다, 머릿속에서는 언제나 어떤 곡이 흘러나온다. 길을 걸을 때, 버스를 탈 때, 일하고 있을 때, 누군가를 만날 때, 홀로 방 안에 앉아 있을 때, 삶은 마치 나만의 교향곡처럼 이어졌다. 그리고 그 음악이 내게는 가장 큰 위로였다.
음악을 사랑한다는 것
음악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삶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실패와 상처, 기쁨과 환희, 모든 것이 악보의 음표처럼 얽혀 내 존재를 연주한다. 나는 이제 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건, 내 안에서 어떤 음악이든 계속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슬기로운 취미생활. 음악은 내게 행복을 주었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었다. 음악은 고독 속에서도 나를 지켜 주었고, 무대 위가 아니어도 내 삶을 무대처럼 빛나게 했다.
음악이 남긴 선물
돌아보면 음악은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 피아노 학원에서의 좌절, 리코더의 발견, 선생님의 칭찬, 성인이 되어 다시 찾은 건반과 활—그 모든 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삶이 무너질 것 같을 때 음악은 내 안에서 작은 등불이 되었다. 외로운 밤, 이어폰 속 선율은 내 마음을 끌어안았다. 힘겨운 하루 끝, 건반 앞에 앉아 한 소절을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음악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마음의 울음을 대신했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를 건네주었다.
다시, 음악을 말하다
나는 확신한다. 음악은 매우 슬기로운 취미다. 그것은 여가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이유다. 음악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이어 주었고, 타인과의 마음을 나누게 했다.
삶은 음악처럼 흐르고, 음악은 삶처럼 우리를 흔든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나는 여전히 배운다.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고, 멈추어 서기도 하며, 결국은 다시 노래한다.
나의 삶을 가장 오래 빛내 준 것, 나를 버티게 해 준 것, 앞으로도 나와 함께할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음악이다.
나는 믿는다. 인간은 음악을 즐기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나의 삶은, 그 증거 중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