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정리하며 드는 생각 (1) 업무의 임팩트
지금 회사에서도, 이전 회사에서도 딱히 사수가 없어서 일을 만들어서 하는 게 어느 정도 습관이 됐다. 첫 회사에서는 사수 같은 사람과 상사도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사수 역할을 하지는 않아서, 회사 생활 내내 사수 없이 일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가끔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또는 내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을 때, 사수가 있었다면 혹은 더 경험이 많은 사람이 옆에 있었다면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상황에 대한 한탄이나 불만이 아니라, '나보다 더 경험 많은 사람이면 지금 이 순간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내가 겪는 시행착오가 더 줄어들었을까?'라고 생각하는 정도이다.
그 생각의 끝은 나보다 경험이 많다고 항상 올바른 답을 내고, 가장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니, 그냥 내가 옳다고 생각한 일을 하자는 결론이 났다. 누군가에겐 합리화이고 누군가에겐 좋은 마인드셋일 거다. 저 생각에 매몰되어봤자 되는 건 없으니, 좀 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무튼 본론으로 들어가서, 스스로 일을 선택하고, 실행해야 하는 입장에서 일에 대해 스스로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정리해봤다. 특히 특정 프로젝트나 업무가 끝나고 일정 정리를 할 때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한다. 일을 주도하고 리딩해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프로젝트나 업무가 끝나고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또 여러 일 간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가장 많이 떠올리는 질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임팩트란 어떤 업무의 결과물을 통해, 조직과 프로덕트, 비즈니스를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는 특정한 영향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조직에서 하는 모든 일은 특정한 임팩트를 내야 한다. 어떤 일을 했는데 임팩트가 없다면, 그냥 소위 말해 삽질한 것이다. 취미로 하는 일은 임팩트가 없고 삽질을 해도 괜찮다. 그러나 조직에서 하는 일은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
물론, 임팩트를 찾아가는 와중에 잘못된 방법으로 중간에 삽질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삽질은 괜찮다. 임팩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의 삽질이니까. 다만 업무의 결과물이 조직과 프로덕트,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모르며 예상되는 임팩트가 없는데도 무작정 하는, 그 자체로 삽질인 업무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데이터 분석을 예로 든다면, 특정한 퍼널을 개선하기 위해서 데이터를 본다거나, 프로덕트의 특정 부분 혹은 KPI를 높이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데이터 분석을 하는 것과 무작정 어떤 인사이트와 액션이 나오겠지 하면서 엑셀을 돌리는 것은 정말 천지차이다.
전자의 과정에서 데이터 툴이나, 함수, 쿼리를 다루지 못해 시간이 조금 걸리는 방법으로 하는 것은 시행착오이다. 조금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결국에는 목적을 가지고 임팩트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일이다. 반면 후자의 방식은 업무를 아무리 잘해도, '그래서 뭐?'라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일이 가져오는 임팩트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정 업무가 임팩트가 있을지 없을지를 고민했다면, 그다음에는 그 업무가 어떤 임팩트를 가져오는지 역시도 고려해야 한다. 쉽게 생각하면 된다. 시간, 비용, 체력, 집중력 등 모든 리소스는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한정된 리소스 내에서 가장 비즈니스와 프로덕트에 가장 큰 임팩트를 가져올 수 있는 업무를 선정하고 이를 빠르게 실행해야 한다.
물론 처음에는 큰 임팩트를 가져오는 일을 찾기가 어렵다. 이걸 잘 찾는 것도 실력이다. 큰 임팩트를 가져오는 일을 정확하게 찾기 위해서는 비즈니스와 프로덕트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이 방향으로 더 빠르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금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를 이해해야 한다. 단편적으로 자신이 하는 일만 보면 어떤 업무가 큰 임팩트를 가져올지 판단하기 힘들다.
만약 비즈니스와 프로덕트에 큰 임팩트를 가져올 수 있는 일을 찾았는데 내 능력으로는 안된다? 그렇다면 그 일을 더 작은 단위로 쪼개서 그 일과 관련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임팩트가 큰 일을 하면 된다.
비즈니스와 프로덕트에 큰 임팩트를 가져올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일단 전혀 모르겠으면 프로덕트와 비즈니스의 목적, 방향성에 대해서 먼저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만약 여러 가지 일을 골랐는데 그중에서 어떤 게 더 큰 임팩트를 낼 것인지 예상이 잘 안 된다면, 우선순위를 어떻게든 정해서 빠르게 실행하는 게 좋다. 만약 어떤 일을 해보니까, 다른 일을 하는 게 더 큰 임팩트를 낼 거 같다면? 하던 업무를 다음에 다시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마무리하고, 다른 업무를 하면 된다.
처음에는 내가 세운 우선순위가 올바른지 아닌지 실제로 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실제로 업무를 하면서 우선순위도 바꿔보고, 이 업무에서 다른 업무로 바꾸기도 하면서 우선순위 선정 능력을 기르면 된다. 다음에 똑같은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된다. 우선순위 고민만 한다고 나중에 우선순위를 더 잘 가려낼 수 없다.
일을 통해 임팩트를 낸다고 하더라도, 그 임팩트는 비즈니스와 프로덕트에 중요한 것이어야 한다. 비즈니스와 프로덕트에 중요하지 않은 임팩트를 내는 업무는 오히려 삽질에 가깝다. 특정 업무의 임팩트가 중요한지 알기 위해서는 현재 비즈니스와 프로덕트의 최우선 목표와 미션을 알아야 한다.
정말 단순하게 말하면 비즈니스, 프로덕트의 KPI에 가장 큰 긍정적인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업무를 해야 한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을 수 있다. 한 커머스 비즈니스에서 회원들의 마이 페이지 체류 시간을 상승시키기 위해 UX, UI 개선을 했고, 그 결과 마이 페이지에서의 체류 시간이 3배 늘어났다고 해보자. 마이 페이지 체류 시간을 3배 늘린 건 큰 임팩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마이 페이지 체류 시간 증가가 과연 비즈니스와 프로덕트의 KPI에 어떤 임팩트를 줄까? 마이 페이지 체류시간이 전환율 혹은 전환 건수와 양의 상관관계를 갖고 있을까? 갖고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즉, 마이 페이지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한 개선을 하기 전, KPI, 프로덕트, 비즈니스와의 연관성을 먼저 확인했어야 했다. 연관성이 있다면 잘된 일이지만, 연관성이 없다면 단순히 삽질을 한 것뿐이다.
마이 페이지의 UI, UX를 개선하는 대신 장바구니, 회원가입 퍼널을 개선했다면 KPI에 더 크게 기여할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이건 극단적인 예시이긴 하지만, 특정 업무의 결과로 만드는 임팩트가 정말 비즈니스와 프로덕트에 중요한 임팩트인지 일을 하기 전 꼭 생각해 봐야 한다.
바로 위의 질문과 비슷한 질문이다. 업무를 하기 전 여러 업무 사이의 선후 관계를 잘 따져야 한다. 그래야 비즈니스와 프로덕트에 더 큰 임팩트를 빠르게 가져올 수 있다.
쉽게 커머스 비즈니스에 있는데, 해야 할 업무가 회원가입 퍼널 UI 개선, 회원 가입 시 프로모션 쿠폰 발송 기획 업무 있는 예시를 들 수 있다. 그리고 현재 회원가입 완료율은 50%라고 하자. 이때 두 업무 중 무슨 업무를 먼저 해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은 쉽게 내릴 수 있다. 회원가입 퍼널 UI를 개선하고, 그다음에 프로모션 쿠폰 발송 기획을 해야 한다. 회원가입 완료율이 50%인 상태에서 쿠폰을 주는 것과, 회원 가입 완료율을 80%까지 끌어올린 후에 쿠폰을 제공하는 것의 임팩트 차이는 크다. 일단 이탈하지 않고 회원 가입을 완료하는 고객들을 늘려야 더 많은 전환과 더 많은 매출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회원 가입 퍼널 UI 개선보다, 프로모션 쿠폰 발송 기획을 먼저 해야 한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이다. 이렇게 업무를 했을 때 더 큰 임팩트를 더 빠르게 가져올 수 있다는 걸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만 있으면 된다.
실제 현업에서의 업무 간 선후 관계는 이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따라서 어떻게 업무를 배치해야 더 큰 임팩트를 더 빠르게 가져올 수 있는지 생각하는 법을 계속해서 연습해야 한다. 가설을 세우고, 실제 업무들을 배치하고 진행하고, 완료하면 복기하면서 연습해 나가면 된다.
업무를 선정하고 배치할 때, 특히 일정 정리를 할 때 많이 하는 생각들을 정리해 봤다. 원래 실행과 관련된 생각들까지 글 하나에 정리하려고 했으나, 글이 길어진 관계로 실행과 관련된 생각들은 다음 글에 쓸 예정이다. 업무를 스스로 찾고, 실행하고, 리딩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