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허슬하며 트렌드에 맞춰 스스로를 증명하기
개인적으로 힙합을 라이트하게 좋아한다. 에픽하이, 크러쉬, 지코, 자이언티, 로꼬 등등 좋아하는 가수들 노래 챙겨 듣고, 쇼미 무대 챙겨보고 딱 그 정도로 라이트하게 좋아한다.
스타트업, 그것도 초기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며 느낀 건데 힙합과 초기 스타트업의 구성원, 초기 스타트업 자체가 유사한 점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힙합과 스타트업을 엮어서 가볍게 써본다.
I started from the bottom 이제 집 지을 차례
떨어져도 상관없어 그냥 Show me the money
바비 - 연결고리, 힙합
힙합 곡 가사 중에는 'Started from bottom'이라는 문구가 자주 등장한다. 뒤에 'to the top'을 붙이는 경우도 많고.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밑바닥에서 지금의 위치까지 노력을 통해 올라왔다는 것을 강조하는 문구다.
마찬가지로, 스타트업 특히 초기 스타트업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뭔가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적당한 무언가를 만드는 게 아니라, 신예가 힙합 씬의 핫한 아티스트로 떠오르듯 시장을 뒤집을 만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
스타트업의 구성원 역시 어느 훗날에 'Started from bottom'을 외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경력이 많은 게 아니라면 처음에는 지식도 없고 경험도 없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초기 스타트업에는 뭔가를 잘 알려줄 사수가 없을 확률이 매우 매우 높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것은 구글링하고 잘한 것들, 잘 못한 것들에 대해서 회고를 해나가면서 성장해야 한다.
성공한 힙합 뮤지션들의 started from the bottom이 더 멋있는 이유는 가난, 주변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끝끝내 큰 성취를 이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열악한 환경에 대해서 불만만 갖기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을 하면서 한 단계씩 나아가야 한다. * 물론 부당한 대우에 적극적으로 맞설 수도 있어야 한다.
명반 내래서 냈던 정규
랩부터 잘하래서 보여주고 증명했더니
이젠 벌고 오래 돈부터
쿤디판다 - 뿌리
또 힙합 노래 가사 중에서 많이 나오는 단어 중 하나가 '증명'이다. 유래는 잘 모르겠다. 다만, 힙합 뮤지션들은 자신의 노래와 앨범, 스킬을 통해 계속해서 실력과 커리어를 증명하려고 한다. 앨범 안내지만 실력 있는 뮤지션들에게 "쇼미 나와서 증명해라"라는 밈 아닌 밈이 있을 정도이니.
여기서 핵심은 뮤지션들이 자신 본업의 성과물인 노래와 앨범을 통해 실력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당연하다. 인스타나 말로 '나 아직 잘해', '나 아직 잘 나가' 해봐야 아무도 실력을 인정해주지 않으니까. 오히려 허세로 취급하기만 할 뿐이다.
스타트업도 끊임없이 성과로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이 성과는 숫자로 표현되는, 매출, 이익, 성장률 등이어야 한다. 아무리 '어디 VC랑 친해서 투자받을 가능성이 높다', '누가 우리를 좋게 본다' 해봐야 실제로 숫자로 찍히는 성과가 없는 한은 다 무용지물이다. 아무리 VC가 회사를 좋게 보고, 회사와 친해도 계약서 쓰기 전까지는 모른다. 비즈니스 세계는 진짜 피도 눈물도 없어서 어떤 일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트업은 자체적인 노력으로 숫자로 표현될 수 있는 성과를 계속해서 만들며, 조직과 비즈니스의 가치, 실력을 계속해서 증명해 나가야 한다.
구성원 역시 자신 업무의 성과로 계속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회사가 Series A, B를 받았다고, 회사의 구성원이 크게 늘어나서 초기 멤버로 합류한 자신이 팀 리드가 되었다고, 회사가 성장했다고, 자신의 가치가 저절로 올라가지 않는다. 회사의 성장과 구성원 개인의 성장은 명백히 다르다. 회사가 성장한다고 구성원 개인이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회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개개인 구성원 역시 성장하고 성과를 만들어 내며 가치를 증명했겠지만, 과거의 성과에 갇혀있어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새로운, 더 좋은 성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Welcome to the jungle
이 늪지대에서 난 20년째 우상향 한 아마존 주식 같아
개코 - 논해
다른 음악 장르들 보다 힙합이 조금 더 트렌드에 민감한 것 같다. 그래서 누가 트렌드를 주도하냐, 누가 가장 트렌디하냐 이런 말들이 많이 나온다. 한때는 AOMG와 일리네어가 가장 트렌디했고, 그 후에는 지코, 딘, 크러쉬가 속한 Fanxy Child가 그랬다. 가장 최근에는 누가 제일 트렌디한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모든 음악이 그렇겠지만 힙합이라는 장르 내에서도 트렌드는 정말 빠르게 변한다.
그리고 이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 속된 말로 '퇴물'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트렌드에 뒤쳐지면 씬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건 순식간이다. 그런 면에서 20년째 트렌디함과 실력을 유지하는 개코는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유명한 반면교사로는 원썬이 있고.
스타트업도 계속 트렌드에 맞춰서 변해야 한다. 과거의 성공만 믿고 안주하다가는 서서히 몰락하기 십상이다. 재능 있고, 야망 있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다. 또 지식과 기술에 대한 장벽도 정말 낮아졌다. 약간의 노력만 들이면 구글링을 통해 유용한 지식을 다 찾아볼 수 있고, 노코드 툴도 빠른 속도로 발전해 코드를 몰라도 웹사이트, 앱을 만들 수 있다.
즉, 매일 새로운 경쟁자가 생겨나고, 언제든 우리 조직보다 더 빠르게 더 큰 성취를 이뤄낼 수 있는 스타트업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타트업은 약간의 성공에 안주하지 말고, 가장 최신의 지식과 기술 트렌드를 습득하며 새로운 성장 동력과 성공 공식을 찾아내야 한다.
스타트업 구성원 역시 계속해서 트렌드에 맞춰서 자신의 역량과 스킬을 길러야 한다. 개발자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공부하듯, 다른 직군들도 계속해서 공부하며 트렌드를 쫓아야 한다. 디자이너의 경우, 최신 디자인 트렌드, 피그마와 같은 디자인 툴에 대한 학습을 계속해야 하며, 마케터 같은 경우 디지털 마케팅에 사용하는 Amplitude 같은 마케팅 툴 스킬, 그리고 이론적인 데이터 분석법 등을 계속해서 익혀나가야 한다. 영업 직군은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서 적절한 제안을 하고, 딜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고객들의 트렌드, 세일즈 기술, 심리학 등을 계속해서 학습해 나가야 한다.
트렌드에 맞춰 지속적으로 학습하지 않는다면, 실력 없는 시니어 그리고 실력 없는 리더가 될 수밖에 없다. 실력이 없는 경우 리더에 올라갈 수 있을지 조차 잘 모르겠다. 리더의 핵심 역량은 실력보다는 구성원을 다루는 역량이지만, 실력이 없다면 절대 구성원을 잘 다룰 수 없다. 실력이 없다면 구성원들에게 신뢰를 얻기도 힘들고, 신뢰를 잃는다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강력한 팀을 이룰 수 없다.
인생은 한방 원룸으로 부족해
건물 살 돈 있을 때까지 난 hustle
박재범 - Don't try me
힙합에서 말하는 Started from bottom, Testify, Trend 이 모든 것을 이뤄내려면 적당히 해선 안된다. Hustle 해야만 이뤄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많은 곡들에서 자신이 이룬 것들과 함께 자신의 노력, 즉 Hustle을 강조한다. 그리고 아티스트가 Hustle 해서 많은 작업물을 내놓으면 세간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물론 퀄리티가 높다는 전제 하에. 이처럼 힙합에서 말하는 자신이 이뤄낸 것들은 Hustle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
스타트업 역시 말할 것도 없이 멈추지 않고 Hustle 해야 한다. 스타트업은 진짜 더 이상은 이렇게 못살겠다 싶을 정도로 Hustle이 필요하다. 참고로 이런 스타트업 Hustle의 과정을 제일 잘 볼 수 있는 책 중 하나가 크래프톤 웨이다. 시장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뛰어난 경쟁자가 나와 선두를 차지하고,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 또한 이미 경쟁이 심한 시장이거나, 대기업이 있다면 경쟁과 생존은 더욱 치열해진다. 적당히 해서는 살아남기도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트업은 똑똑하게 Hustle 해야 한다.
스타트업의 Hustle은 구성원들의 Hustle로 이뤄진다. 구성원들이 스스로 Hustle하지 않으면, 스타트업은 절대 Hustle 하며 성장할 수 없다. 그리고 이 구성원들의 Hustle을 유지하는 동기는 외부의 압력이 아닌, 구성원들 내부로부터 나와야 한다. 리더는 단순히 구성원들에게 Hustle 하라고 압박을 넣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내부의 동기를 이끌어 내야 하는 것이고.
'이 회사를 IPO 시키고 돈방석에 앉겠다', '여기에서 성과를 내고 더 큰 회사로 이직하겠다', '조직을 키워서 리드가 되겠다', '여기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스타트업을 하겠다', '어느 회사에서 일하든 상관없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 등 어떤 동기든 좋다. 구성원들이 Hustle 할 수 있는 동기는 구성원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고, 외부 압력에 의한 Hustle은 오래가지 못한다.
I hate my haters, obviously
이럴 땐 센스형이 부러워, 적이 없으니
에픽하이 - Born Hater
또 힙합 노래 주제 중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Haters다. 그리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아는 Haters 관련 곡은 에픽하이 Born Haters가 아닐까 싶다. Haters에 관한 곡을 들어보면 어떤 건 진짜 Haters에게 화나서 그런 것 같고, 어떤 것은 쉐도우 복싱 같고 그렇다. 아무튼 Haters에 관한 노래의 핵심 메시지는 '많은 Haters들의 시기, 질투, 방해에도 나는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 잘하고 잘 나간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찬가지로 스타트업에게도 여기저기 Haters가 있다. 다만 이 Haters는 악플러나 진짜로 회사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스타트업이 맞닥뜨리는 여러 문제다. 생각대로 사업이 성장하면 정말 좋겠지만, 그럴 일은 없다. 사업의 성장을 방해하는 여러 문제, 즉 Haters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Haters는 법적 규제나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자신의 잘못된 선택이 될 수도 있고, 신규 아이템의 실패가 될 수도 있다. 세상에 100개의 스타트업이 있다면, 각자 다른 100개의 문제를 겪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스타트업은 이 Haters과 싸워서 끝끝내 이겨내야 한다. 성공한, 성장한 모든 스타트업은 수없이 많은 문제들과 싸워서 이겨낸 결과물이다.
구성원들 역시 Haters들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 구성원은 개인인 만큼, 이들의 Haters는 능력도 없으면서 비난하는 상사, 뒷담화 하는 동료, 대드는 후배가 될 수도 있다. 흔히 말하는 사내 정치질, 낙하산이 될 수도 있고. 이런 Hater들과 싸워서 이겨내야 한다. 진짜로 큰소리치고 주먹다짐하면서 싸우라는 게 아니라, 실력과 성과로 입 다물게 하면 된다. 꼭 그 회사 안에서만 버틸 필요는 없다. 더 좋은 곳으로 더 좋은 대우받으면서 떠나면 그게 이기는 것이다.
그리고 구성원들이 싸워서 이겨야 할 Haters들이 또 있다. 이 Haters들은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 안에 있다. '이 정도만 하면 되겠지', '대충 하지 뭐', '나는 잘했으니까 더 노력할 필요 없어', '내 의견만 옳은 의견이고 다른 의견은 다 틀려'와 같은 게으름, 거만, 오만, 편협함, 타성 등이다. 이런 내면의 Haters들과 싸워야 성장하며 더 큰 성취를 이뤄내는 게 가능하다.
위에서 말한 5가지 이외에도, 힙합과 스타트업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아마 더 많을 것 같다. 그래도 저 5가지로도 힙합과 스타트업에서 가장 중요한 마인드셋을 쭉 살펴보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스타트업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두 미란이와 머쉬베놈처럼 언젠가 꼭 VVS 하길 바란다.
* 참고로 각 주제를 더 잘 나타내는 가사들이 훨씬 많지만, 지금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노래들의 가사로 글을 써서 최근 노래, 특히 쇼미 노래가 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