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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Jun 18. 2020

동성애자/트랜스젠더 직원 차별금지

보수성향 판사에 의한 진보적 판결

조지아 주에 거주하는 제랄드 보스톡은 지방정부 공무원으로 아동복지 운동가로 일하고 있었다. 그의 지도하에 해당 지방정부는 탁월한 업무 성과로 전국적 규모의 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가 공무원으로 일한 지 약 10년이 지나고, 보스톡은 게이 소프트볼 야구팀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역의 유명 인사들이 그의 성 정체성에 대해 비난하기 시작했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공무원으로서 "어울리지 않은" 행동을 근거로 해고됐다.

<제랄드 보스톡, 출처: advocate.com>


뉴욕에 거주했던 도널드 잘다는 스카이다이빙 강사로 일하고 일했다. 그는 게이였는데, 초심자와 동반 스카이 다이빙을 하면서 몸을 밀착시키는 과정에서 여성 고객을 안심시키기 위해 "저는 게이예요"라고 말했다가, 해당 여성 고객이 이를 남자 친구에게 알렸고, 남자 친구는 회사에 이를 알렸다. 도널드 잘다는 며칠 뒤에 해고됐다. 

<도널드 잘다, 출처: http://www.newnownext.com>


미시간에 거주했던 에이미 스테판스는 한 장례식장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녀가 처음 취업했을 때는 "남성"이었지만, 근무한 지 2년이 지난 후 그녀는 심각한 외로움과 절망으로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결국 그녀는 성 불쾌감(gender dysphoria)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고, "여성"으로 살 것을 권유받았다. 그녀가 회사에 근무한 지 6년 차가 되었을 때, 그녀는 상사에게 자신은 이제부터 "여성으로서 일하며 살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장례식장은 그녀에게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그녀를 해고했다.

<에이미 스테판즈, 출처: npr.org & Paul Sancya/AP>


이들은 미국의 각기 다른 지역에서,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성소수자였다는 것이다. 제랄드 보스톡과 도널드 잘다는 게이였으며, 에이미 스테판스는 트랜스젠더였다. 이들은 바로 성소수자라는 사실 때문에 직장에서 해고됐고, 전부 이는 "시민 권리법(Civil Rights Act of 1964)" 위반이라며 소를 제기했다.


이들의 사건은 연방 제2, 제6, 제11항 소 법원에서 각각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 연방 대법원이 이 사건을 듣게 되었고, 바로 미국 시간상 어제인 2020년 6월 15일, "단지 어떤 개인이 게이나 트랜스젠더라는 이유 때문에 고용주로부터 해고를 당했다면 이는 시민 권리법 7장에 위배된다"라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이들 세 명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의 대표적인 반 차별금지법인 시민 권리법 7장에서는 "고용주가 특정 개인의 인종, 피부색, 종교, 성, 출신 국가를 바탕으로 채용을 거부하거나 해고하는 것은 불법이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 구절을 둘러싼 주된 쟁점은 바로 "성 정체성을 근거로 직원을 해고한 것이 시민 권리법 7장에 있는 '성 차별금지'에 해당되는지 여부"이다.


미 연방대법원은 이에 대해 6대 3 다수의 의견으로 "그렇다"라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놀라운 점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 6명 중 2명이 공화당 대통령으로부터 지명된, 이른바 "보수적" 대법관이라고 알려진 로버츠 대법원장과 닐 고서치 대법관이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닐 고서치 대법관은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이다. 두 번째는 심지어 이러한 닐 고서치 대법관이 다수 의견을 집필했다는 점이다. 트럼프가 집권하는 동안 두 명의 대법관이 은퇴(및 서거)하는 바람에 연방대법원 법관 구성이 5대 4로 보수 쪽으로 기울었다는 해석이 많았는데, 이번 판결로 인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전망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나는 이번 사건 전까지는 닐 고서치 대법관이 쓴 판결문을 읽어본 적이 없었는데, 내가 좋아했던 스칼리아 대법관의 공석을 이어받아서 그런지 그와 문체나 논지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굳이 비교하자면, 고서치 대법관의 문체가 조금 더 읽고 쉽게 읽히고 직설적이며, 스칼리아 쪽은 더 위트 있지만 조금 더 젠체하는 느낌이 있었다. 참고로 이번 고서치의 판결문은 마치 교사가 학생에게 차근차근 말로 설명하듯이, 예시도 풍부하게 들어서 난이도 자체는 높지 않다.


고서치 대법관은 논지는 "텍스트 중심주의(textualism)"에 근거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성문법의 법 조문의 쓰인 글자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텍스트 중심주의의 반대말은 "의도 중심주의(intentionalism)"이다. 의도 중심주의의 경우에는 입법자의 당시 의도를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입법 철자 관련 기록을 통해 당시 정책입안자들이 어떤 의도로 해당 법안을 통과했는지 여부를 중요시 따진다.


이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세부 논리를 따른다.


1. "성 차별"이라는 뜻은 동일한 조건의 직원 A와 B 둘을 놓고 봤을 때, 한 직원을 다른 직원보다 "성별"만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이다.

 

2. 위 1을 바탕으로, 동일한 조건을 가진 두 명의 직원 A와 B가 모두 "남성에게 끌린다"라고 가정했을 때, A라는 직원이 남자(즉, 동성애자)이고, B라는 직원이 여성(이성애자 혹은 양성애자)이라는 이유로 A를 차별하는 것은 그가 남자라는 이유 즉, "성별"을 근거로 차별한 것이다.


3. 위 1과 2를 바탕으로, 동일한 조건을 가진 두 명의 직원 C와 D, 즉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성성을 택한 C라는 직원(트랜스젠더)과 여성으로 태어나 여성성을 택한 D라는 직원이 있을 때, C를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경우, 둘 다 결과적으로 여성성을 택했지만(동일한 행위), C가 "생물학적 성이 남자라는 이유"(즉, 성별을 근거)로 차별한 것이다.


4. 결국, 위 2과 3을 근거로, "동성애자 혹은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은 '성별'을 이유로 차별한 것과 마찬가지다"라는 결론이 성립한다.


이러한 결론과 더불어 연방대법원은 성소수자 차별금지에 관한 세 가지 원칙을 재확인했다. 


첫째, 고용주가 차별행위를 무엇으로 명명하든, 차별행위는 차별행위이다. 예를 들어, 여자가 남자보다 기대수명이 길다는 이유로 (즉, 은퇴 후 남자보다 연금을 더 오래 받을 것이므로) 은퇴자금에 더 많은 돈을 저축하도록 한 고용주의 행위가 성 차별이라는 판례가 있다. 이는 '형평성'의 가면을 쓴 성차별이나 마찬가지다.

 

둘째, 성차별이 성립되기 위한 조건으로, 성별이 유일한 혹은 주된 이유일 필요는 없다. 즉, 성별 외에도 다른 합법한 사유로 차별을 하더라도, 성별이 포함되는 순간 성차별이 된다.


셋째, 성 차별은 한 개인을 차별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성립된다. 다시 말하면, 고용주가 "나는 게이라면 남자든 여자든 똑같이 차별하며, 트랜스젠더도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로 성별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차별한다"라는 주장은 (1) 시민 권리법이 보호하는 권리는 그룹이 아닌 개개인이며, (2) 성 정체성 기반 차별은 필연적으로 성 차별을 포함하기 때문에 시민 권리법 위반이 된다.


이번 판결로 인해 위 세 사건의 소송 당사자들이 구제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앞으로도 수많은 성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성 정체성을 근거로 직장에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게 될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이미 위 소송의 당사자들 두 명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도널드 잘다는 스카이다이빙 강사 자리를 잃은 후, 베이스 점핑이라는 위험한 스포츠에 몰두했다고 한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스카이다이빙보다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만큼 낙하산을 펼칠 시간도 짧고, 중간에 나무나 절벽 등 장애물에 부딪칠 위험이 높은만큼 위험한 스포츠였는데, 결국 도널드 잘다는 그렇게 2014년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된다.


그런데 잘다는 이미 몇 개월 전에 부당해고로 뉴욕 연방법원에서 사건이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그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그의 유지를 받들어 끝까지 소송을 진행했고, 결국 연방대법원에서 승소하게 되었다. "그가 이 자리에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가 이렇게까지 멀리 올 수 있을지 몰랐을 거예요" "자신의 사건이 이렇게 성 소수자를 위한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을 알면 참 기뻐했을 거예요"라고 그의 가족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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