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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균 미국변호사 Jun 13. 2020

존버 정신

요즘 유행어(사실 요즘이라고 하기 어려운 게 꽤 오랫동안 쓰여 왔던 말이라)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존버가 사람 이름인 줄 아는 분도 계실 텐데, 속된 말로 "존X 버티기"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왠지 요즘 들어 이 "존버"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된다.


미국 같은 경우에는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삶에 영향을 미친 지 거의 3개월째 접어들고 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교외에서 구멍가게 수준의 작은 로펌을 운영하고 있는 나도 코로나 사태를 벗어날 수 없었는데, 당장 법원이 닫아서 재판을 못 나가니 이미 수임받은 사건들도 종결되지 않았고, 새로운 사건 수임도 크게 줄어들어 어려움을 겪게 됐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어차피 개업 초기라서 많은 투자를 하지 않아서 고정 사무실도 없고 직원도 없다 보니 크게 돈 나갈 일이 없었는데, 그래도 최소한의 업무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고정비 지출이 만만치 않아서 요즘은 계속 적자를 보고 있다. 그나마 CARES Act 때문에 나 같은 자영업자들도 실업급여를 신청해서 받아오곤 있었는데, 웬일인지 약속된 만큼의 금액은 들어오고 있지 않아서 이마저도 사실상 별로 도움이 안 되고 있다.


그래서 요새는 거의 일이 없어 사실상 "존버"정신이 필요한 때가 됐다.


덕분에 요새 하는 일은 대부분 저술활동, 법 공부, 운동으로 귀결된다. 저술활동이야 책을 쓰는 건 아니고, 매주 라디오 방송에 나갈 대본을 작성하고, 블로그 포스팅 쓰는 일이 전부인데,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원래 글 쓰는 것이 적성이라 어렵진 않은데, 그냥 일자체가 시간이 많이 소모된다. 


법 공부는 그동안 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했던 새로운 법 분야인 연방 정부조달법 및 연방 화이트칼라 형사법을 실컷 공부하고 있다. 기회 되는 대로 여기에 관해서도 포스팅을 많이 남기려고 하는데, 아직 그럴만한 지식의 수준이 쌓이지 않아서 미루고만 있다. 어느 정도 임계점이 넘으면 이 분야에 대해서도 계속 쓸 예정이다.


운동은 근 3개월 동안 집에 갇혀 지내면서 체중이 약 10파운드가 넘어서 기록을 경신하고 있기에,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정신 차려 운동을 시작했다. 원래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테니스를 치는 것으로 체중 유지가 되곤 했는데, 나이가 이제 30대 중반이라 그런지 신진대사가 예전만 하지 못한 것 같다. 현재 몸무게에서 딱 15파운드 정도 빼면 군 시절의 이상적인 몸무게가 될 것 같은데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일단은 무조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집 근처 학교에서 2마일씩 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현재 6일 연속 실패하지 않고 있다. 최소 30일, 이후는 100일 정도 목표를 잡고 있는데, 생각보다 몸이 무거워져서 그런지 무릎이나 발이 아프다. 빨리 적응되었으면 좋겠다.


예전에 어떤 법 분야를 해야 하는 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었다. 그 고민 중에 하나가 "기계로 대체되지 않을 변호사의 고유한 핵심 업무"란 무엇인가 생각을 하다가 결국 법정 변론은 아무리 대체화가 이루어지더라도 변호사의 핵심 역량이기 때문에 결코 대체되지 않을 것이며, 만약에 만약에 대체되더라도 가장 늦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왜냐면 특히 배심원 재판은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마주 보고 얼굴 표정을 살피며, 분위기를 느끼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 필요한 일인데, 아무리 기계가 발달하더라도 사람의 감정과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지고 나서 가장 먼저 금지된 것이 바로 이러한 배심원 재판이었다. 당연히 사람이 많이 보이고 직접 대면이 필요한 일이다 보니, 가장 먼저 금지된 것이다. 덕분에 나는 쫄쫄이 굶고 있다. (물론 비유적인 표현이다. 다행히 아내가 열심히 돈 잘 벌어다줘서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I love you, J!) 아내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대기업 IT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한 지 10년이 다돼가는데, 코로나 사건이 터지고 나서 오히려 일이 늘어났다. 아무래도 연방정부 공무원들이 의뢰인이라 그런지 이럴 때일수록 할 일이 많아지는 것 같다.


사실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형사 사건과 더불어 연방정부 조달법을 공부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고 힘들더라도 연방정부는 항상 돈을 쓰기 때문이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경제 위기에 둔감한 지역을 꼽으라면 바로 연방정부 중에서도 돈을 가장 많이 쓰는 미 국방부(펜타곤)가 위치한 알링턴 카운티 및 주변 노던 버지니아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연방 조달법을 잘 배워서 써먹을 수만 있다면 먹고 사는 데는 지장 없을까라는 참으로 소시민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Criminal Defense가 참으로 고귀하고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우선 먹고는 살아야 뭘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연방 조달법도 절대 쉽지가 않다. 연방 조달규정만 해도 2천 페이지가 넘고, 국방부를 포함한 각 기관마다 추가 조달규정이 또 있다. 다른 분야도 그렇겠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끝이 없다고 드는 법 분야는 이게 처음인 것 같다.


결론은? 그냥 "존버"하고 있다. 이 또한 언젠가 지나가겠지. 사실 어떻게 보면, 법정 못 나가는 거 빼곤, 혼자 글 쓰고 공부하고, 운동하는 최적의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집안일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실은 존버 기간이 좀 빨리 끝났으면 하는 작은 바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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