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과 마법의 난무하는 모험의 세계로...
저도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미국 버지니아에서 개인 변호사(solo practitioner)로 개업하게 되는 날 말이죠. 로스쿨을 졸업하고 이제 거의 3년이 다돼가는 시점에서 개업이라는 또 다른 사건(?)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제가 개업을 결정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1. 변호사라는 직업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습니다.
제 생각에 변호사라는 직업의 가장 큰 장점은 자신의 소신과 의지대로 의뢰인과 사건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변호사와 자주 비교되는 의사조차도 이런 자율성이 주어지진 않습니다. 개인 변호사는 언제든지 잠재적 의뢰인과 대화를 해보고 사건 개요를 들어 본 후에 수임 여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의사는 그렇지 못합니다. (환자가 병원에 왔는데 의사가 환자를 만나본 후에 진료나 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 참 이상하겠죠)
또한 변호사 개업에는 많은 자본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미국 개인 변호사는 집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종종 의뢰인과의 상담이 있을 때만 시간 단위로 공유되는 사무실(shared office) 혹은 공공장소(법원 면담실 등)를 활용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사무실 임대비용이라든지 직원 고용의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물론 의사처럼 비싼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결정 과정에서 돈보다 다른 요소들을 더 중요하게 고려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서비스 제공의 주체이자 가장 큰 자산은 바로 저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2. 저는 호기심이 많고 도전 정신이 강한 편입니다.
어떻게 보면 미국 로스쿨을 선택하게 된 계기도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과 어느 정도의 호승심 때문이었습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혹은 "얼마나 잘할 수 있을까?"라든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스스로의 한계점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제가 주변에서 자주 들었던 부정적인 말들("너는 지방대 출신이라 안돼, 유학 경험이 없어서 안돼, 원어민이 아니라서 안돼")라는 말들을 직접 부딪쳐보면서 극복하다 보니 이제는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느낀 점은 "생각보다 할만하네"였습니다. 다들 로스쿨 1학년이 죽을 만큼 힘들다고 겁주곤 했는데, 막상 해보니 고3 생활/육군훈련소 생활보다 "할만하네"라고 느꼈고, 원어민이 아니면 법정에서 변론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곤 했지만, 막상 초임 영어교사 시절에 수십 명의 학생들 앞에서 처음 수업하면서 덜덜 떨던 것보단 "할만하네"라고 느꼈습니다. 어떻게 보면 진부한 말이지만 제가 두려워했던 건 실제 그 상황보다, 누군가가 저에게 주입시켜놓은 "두려움" 그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날아오르다가 언젠가는 이카루스처럼 태양에 데어서 날개가 추락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은 한 없이 높이 올라가 보고 싶다는 게 제 소망입니다. 본인이 얼마나 높이 올라갈지도 모른 채 위험하다고 저공비행만 하는 건 올바른 삶의 자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일단 제 한계를 알고 나면 그때는 보다 겸손하고 현실적이 되겠죠.
3. 아직 미국이 기회의 땅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것이 미국이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만큼 선진국이면서도 계층이동의 기회가 주어지는 나라는 별로 없기 때문이죠. 물론 내부적으로도 여전히 인종갈등이나 차별 문제, 정지 양극화 등 여러 문제가 있는 사회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말인 즉 아직도 발전의 가능성과 기회가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죠.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제 생활신조 "Where there's a will, there's a way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덕분이었습니다. 일단 목표와 의지가 있다면 길은 알아서 생긴다는 신념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와 더불어 "Be the change you want to see in the world (세상이 변하길 원하면 네가 먼저 그 변화가 되어라)"라는 말이 제 두 번째 생활신조가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짧게나마 5년간 미국에 생활하면서 겪었던 불편하고, 아쉽고, 심지어는 분노했던 것들을 바꾸고 싶습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저는 학창 시절 검과 마법이 나오는 판타지 소설을 참 좋아했습니다. 저는 특히 이영도 작가의 "드래건 라자"를 참 좋아했습니다. (여담으로 교포인 제 아내는 해리포터를 참 좋아합니다. 자라온 문화환경의 차이겠죠) 거기에 보면 마법사가 나옵니다. 마법사는 세상에 고루 퍼져있는, 보이지 않는 "마나"라는 존재를 이용해서 바람을 일으키고, 불덩이를 소환하고, 시간을 멈춥니다. 저는 가끔 변호사가 우리 세계의 마법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법과 규제는 우리 생활 곳곳에 "마나"처럼 스며들어 있지만 정작 그것이 불과 바람처럼 우리 생활에 뛰어드는 일은 변호사가 있어야 가능한 것처럼 말이죠.
잠깐 방향이 새긴 했지만, 저는 아직도 판타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검과 마법이 난무하고 용과 몬스터가 출몰하는 그런 곳 말이죠. 그래서 그런지 저는 모험과 도전을 찾아다니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는 제 모험기(?)에 대해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